아트북스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4가 260번지 청도빌딩 6층 Tel. 02_927_6790(내선121)
1. 큐레이터? 처음엔 ^^, 알고 나면 ㅠㅠ ● 몇 년 전 어느 인기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은 큐레이터였다. 잘 조절된 조명, 우아한 실내, 벽에 걸린 '예술작품'들, 그 안에서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전시'라는 이벤트를 연출하는 큐레이터의 이미지는 물론 '허상'에 불과했지만 순식간에 선망의 대상으로 떴다. 그래서 대개는 상대방의 직업이 큐레이터라고 하면 "우아∼ 멋지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현직 큐레이터인 저자는 '이너 서클'이었기에 볼 수 있었고, 깨달았지만 바로 그래서 쉬 말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폭탄이라도 터뜨리듯이 거침없는 '말빨'로 직설적이고 신랄하게 풀어놓는다.
2. 그래, 난 그림을 모른다! ● 1부 1장, 그림을 모른다는 것의 정직함_ 저자는 대학에서 예술이론을 공부했고, 현장에서 수년간 그림을 껴안고 부대껴온 처지지만 '그림을 모른다'고 고백한다. 자신은 '그림을 모른다'는, '무식'의 고백과 '솔직함'의 미덕은 우리 미술계의 간단치 않은, 얼키고 설킨 문제들의 핵심을 에둘러 가지 않고 정면에서 찌르는 용기와 진솔함의 근거가 된다. 그림과는 전혀 상관없이 현학적이고 난해하기만 한 비평, 관객에 대한 배려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화랑의 무감각, 영화로 치면 감독과도 같은 전시의 총지휘자인 큐레이터를 온갖 잡무와 격무에 내모는 후진적인 행태들은 결국 관객과 미술관(한국 사람들과 미술문화)의 거리를 한없이 멀어지게 해 미술판 자체를 '지들만의' 좁은 바닥으로 만든다. 이것은 결국 한국 미술판이라는 허술한 (자신들의) 골문에 공을 차는 자살골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먹고살기도 힘든 판에 꼭 그림을 알아야 하나? 이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단호하다. "우리는 그림을 알아야 한다!!"
3. 왜 그림을 알아야 하지? ● 1부 2장, 그렇다면 우리는 그림을 알아야 하는가?_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은 밥만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라 문화적 인간이고, 예술(그림)은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해 필수적인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검은 황금이라는 석유가 콸콸 쏟아지는 중동의 산유국이 돈은 많겠지만, 문화적 역량·국가 브랜드 가치라는 차원에서 보면 프랑스나 독일과 견줄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향후 우리의 진로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게다가 고급 브랜드가 가지는 '아우라'는 단순한 투입 산출 개념으로는 어림할 수 없는 수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이로 미루어 미래는 문화의 시대이고, 브랜드 높은 일류 국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유명 패션 브랜드인 에르메스나 카르티에가 현대미술상을 제정해 유망한 작가들을 후원하는 것은 다 그런 맥락인 것이다. ● 문화가 죽어가는 도시를 되살린 가장 극적인 사례인 스페인 빌바오 시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보자. 빌바오 지방정부는 쇠락해가는 지방 도시에 불과하던 빌바오에 건축비만 물경 일억 달러를 투자해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립했다. 그 결과 한낱 지방 소도시에 불과하던 빌바오는 오로지 구겐하임 미술관 때문에 전세계에서 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고, 고용 효과는 물론이고 더불어 창출된 문화적 효용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2부 12장, 문화가 그 나라의 미래를 좌우한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강원도 탄광촌에 우리가 돈 들여 만들어놓은 것은 고작 카지노였다. 발상의 차이, 대안을 모색하는 고민의 깊이가 어떤 차이를 낳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4. 우물 안과 우물 밖 ● 우리가 '우물 안에서' 온갖 잡무로 혹사당하는 큐레이터, 소통 따윈 아예 안중에도 없는 난삽한 비평, 타성에 젖은 작가와 미술관, 에로 비디오를 찍는 감독 마냥 컨셉도 아리송한 날림 전시로 그 모양 그 꼴로 세월을 보내는 동안 우물 밖 넓은 세상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저자는 자신의 직업상 참가한 아트페어의 경험을 통해 우물 밖 세상의 실상을 전한다. 한마디로 그들은 그림을 즐긴다. 전문가도, 전공자도, 그림을 사고파는 화상도 아니지만 일년 예산을 정해 온 가족이 오랫동안 의논한 다음 그림 한 점을 구입한다. 그들에게 한국에서처럼 전시 팜플렛에 자신도 모르는 글을 해설이랍시고 휘갈겨놓았다간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다음 날 찾아와, 이 말은 무슨 뜻이냐, 이게 한국에만 있는 재료라면 다른 나라 재료와는 뭐가 다르냐고 진지하게 묻는 어린 관객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혼쭐이 난다. 뿐인가? 너무도 오랫동안 작품을 감상한 후 당신네 부스가 최고라고 말해주거나, 그런 그림들을 가지고 나와서 자랑스럽겠다고 진심으로 부러워 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우물 안'에서의 우리 실상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림을 생활 속에서 늘 가까이 하지 않고서는 그런 관객의 반응이 나올 수 없고, 그런 관객들 앞에서 큐레이터나 화랑은 겸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2부 3장, 국제 아트페어, 문화 사교의 장_너희가 사교를 아느냐?) ● 앞으로 우리가 살아남아야 할 무대는 세계시장이다. 하지만 세계시장에서는 날림이나 부실이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그러자면 우리사회가 해야 할 일은 많다. 예를 들어보자. 백남준은 한국 작가가 아니다. 그는 한국인의 핏줄만 이어 받았지 '한국작가'라고 할 수가 없다. 일본에서 태어났고, 독일에서 재능을 인정받고 꽃피웠으며 미국에서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했다. 한국작가란 한국 미술계가 낳고, 한국 미술판에 의해 마케팅되고, 키워진 사람이다.(2부 6장, 백남준은 한국 작가가 아니다) 우리는 아직 그런 작가가 없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아직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독자적 역량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특히 우리나라 미술판은 더욱 그렇다.
5. 앙드레 김에게 배우자! ● 1부 13장, 앙드레 김에게 배워야 할 점_ 딴 나라 얘기를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고, 어디 가까운 곳에서 잘하는 사람, 우리가 보고 배울 이웃은 없나? 있다. 앙드레 김이다. 우리는 흔히 패션쇼라고 하면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선보이는 이벤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앙드레 김에게 자신의 패션쇼는 한바탕 오페라다. 의상과 음악, 미술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이다. 이를 위해 그가 투자하는 시간과 돈, 열정과 배려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의 집엔 항상 티비 다섯 대가 켜 있는데, 국내외 패션, 음악, 다큐 채널이 쉬지 않고 돌아간다. 또 웬만한 공연엔 늘 수십 장의 로열 좌석 티켓을 구매해 주한 외국 대사관 관계자들이나 그때그때 한국을 방문하는 명사들을 초대한다. 그는 수용자 입장에서 자신의 예술을 서비스하는 서비스맨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고, 고객관리와 브랜드 관리에 최선을 다하는 사려 깊은 매니저이다. 그 결과 로스엔젤레스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겼고, 한국에 있는 외국 정·재계 인사들과도 폭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해 문화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런데 과연 한국의 미술관 관장이나 큐레이터 중에 문화를 서비스한다는 마인드를 갖춘 이는 얼마나 될까? 제발 좀 앙드레 김에게 배우자!!!
6. 열정과 냉소, 진지함과 발랄함 ● 저자는 자신의 직업인 큐레이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게 지워진 임무가 작가와 대중 사이를 이어주는 거간꾼 역할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본다. 큐레이터들, 비평가들을 비롯하여 실질적으로 작가와 대중의 틈에서 크고 작은 일을 하는 우린 그 거간꾼으로서의 직무를 팽개치고 있지 않은가?" ● 한국 미술판에 대한 직설적이고 신랄하며, 열정적인 저자의 비판은 이러한 자기 반성에서 시작된 것이다. 미술은 '자기 표현'이라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에 상응하는 것이고 보면 미술감상과 미술문화는 자연스럽게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들어야 하고, 그로 인해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어야 한다. 삶과 유리된, 대중과 유리된 미술이란 공허한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하고, 그럴 경우 우리 문화의 성숙과 삶의 질 향상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여전히 '그림'이 남의 동네 일로 여겨지는 독자에게 저자가 남긴 한마디는…… / 왜 그림을 알아야 하냐고?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가?(에필로그) ■ 아트북스
차례 ● 프롤로그: 어느 큐레이터의 고백 / 제1부 한국에서 큐레이터로 산다는 것 / 01 그림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정직함 / 02 그렇다면 우리는 그림을 알아야 하는가? / 03 나는 미술의 문외한 / 04 화랑에서 '소위' 큐레이터로 일한다는 것 / 05 큐레이터가 뭐죠?_큐레이터는 영화감독이다 / 06 큐레이터 vs 코디네이터 / 07 이론가와 화가_니들이 그림에 대해 뭘 아는데? / 08 현학적인 비평문_나는 니가 뻥치는 걸 알고 있다 / 09 지적사기 / 10 무엇이 평론가를 만드는가? / 11 어느 미술잡지가 터뜨린 폭탄 / 12 미술이 외면받는 이유 / 13 앙드레 김에게서 배워야 할 점 / 14 예술은 사기다 / 15 그림에 대한 감 잡기 / 16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요제프 보이스의 작품을 사고 싶은 맘은 들지 않는다 / 17 그의 저축법 / 18 청담미술제_우리 화랑계의 현실 / 제2부 세상은 넓고 팔 그림은 많다 / 01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라 / 02 국제 아트페어_세상은 넓고 팔 그림은 많다 / 03 국제아트페어, 문화 사교의 장_너희가 사교를 아느냐? / 04 온 가족이 함께 하는 미술품 수집 / 05 작가가 커야 화랑이 큰다 / 06 백남준은 한국 작가가 아니다 / 07 화랑이 커야 작가가 큰다 / 08 앤디 워홀의 여자친구, 제인 이야기 / 09 런던 어느 화랑에서의 프라이빗 뷰 / 10 국가 브랜드 가치_'메이드 인 코리아'의 가치는? / 11 왜 문화에 돈 쓰냐고? 성공하기 싫은가? / 12 문화가 그 나라의 미래를 좌우한다 / 13 어느 도시의 자화상_예술 마케팅의 도시 뉴욕 / 14 공유와 소유_그림은 비싸야 한다 / 15 한국 미술이 절대 발전할 수 없는 이유_당신의 허영심이 필요합니다 / 16 그들이 사는 법 / 17 멋진 여자 페기 / 18 미술엔 왜 '대박'이 없는가? / 19 내가 싫어하는 작가들 / 20 프로가 된다는 것 / 21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 에필로그: 여전히 난 그림을 모른다
지은이 박파랑 ● 그림에 별 관심도 없는 주제에 미술대학에 들어가서 맘 고생만 엄청 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조금씩 미술에 대한 감을 잡아가고 있는 현직 큐레이터이다. ● 197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청담동에 있는 화랑에서 실무를 시작하여 몇 군데의 화랑을 전전했다. 그러던 중에 화랑 큐레이터보다 미술관 큐레이터를 더 알아준다는 후배의 말에 충격을 받아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의 학예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 원체 아는 게 짧아서 좀더 배워볼 마음으로 들어간 대학원에서도 예술학이라는 공부를 하였으나, 일에 치여 겨우 수료한 정도이다. 그나마 내 이름 석자가 적힌 논문 하나 건질 날은 요원해 보인다.
Vol.20031025b | 어떤 그림 좋아하세요?_ 어느 불량 큐레이터의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