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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경 회화展   2003_1022 ▶ 2003_1028

강보경_大地_장지에 혼합재료_162×128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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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1022_수요일_05:0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자아 찾기와 그림 그리기_강보경의 대지(大地) ● 그림을 감상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그림의 가치는 완결된 형상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것이지만, 그림을 창작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단지 완결된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에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작가에게는 완결된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그림을 단순히 인간의 노동력에 의한 생산품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를 보다 더 큰 예술행위로 보고, 완결된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의 자족성이나 과정을 즐기는 가치관에서 나온다.

강보경_大地_장지에 혼합재료_120×159cm_2003

근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그림을 그림의 형식적 구조에 의해서 평가해야 된다는 사유를 암암리에 강요 받아왔다. 그림은 완성되는 순간부터 독립된 생명을 부여받으며 그 자신의 형식논리에 의하여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이전 동양적 사유의 전통에서는 그림의 품격과 인격을 나누어서 생각하지 않았으며, 인생경계와 예술경계를 나누어 생각하지 않았다. 전체적인 인생 역시 하나의 예술과정으로 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폭의 그림이 부분적으로 전체 인생을 대표할 수 있고, 삶이 곧 그림으로 표상 되어 나온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 인간의 삶이 매우 복합적이고 순간순간의 감정 기복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양태를 이룬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매 순간마다 느껴지는 감정 역시 진실이며, 그 순간의 표현 또한 진솔한 것이 된다.

강보경_大地_장지에 혼합재료_69×98cm_2003

강보경의 그림 그리기에는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를 통한 자신의 성찰이라는 의미가 매우 깊게 배어있다. 삶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한 폭의 그림이라는 결과물이 아니라,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며, 그림 그리기를 통하여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가는 것이다. 동시에 그림 그리기는 현실적 자아를 초월하여 절대적 자아와 만나게 하는 매체가 되기도 한다. ● 그는 장지(壯紙)에 아크릴을 바르고 지우고 덧씌우고 하는 과정을 즐긴다. 그에게 아크릴은 그가 아내로서 어머니로써의 삶 속에서 택한 최선의 재료다. 남편이 출근한 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집안 정리를 마친 다음에야 그림을 펼칠 수 있는 그는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에 빨리 말려서 그림을 말아놓을 수 있는 재료가 필요하고, 어디서나 다시 펼칠 수 있는 그렇게 여러 번 펴고 말아도 견딜 수 있는 재질의 화폭이 필요하다. 이렇게 선택된 재료가 장지와 아크릴이다.

강보경_大地_장지에 혼합재료_158×128cm_2003

아크릴이 도포된 장지는 마치 콩댐을 한 장판지처럼 단단해서 여러 번 문지르고 닦아내도 종이가 무르지 않는다. 강보경은 이 장지 위에 아크릴을 올리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장지위에 올라간 아크릴의 수없이 많이 중첩된 색깔은 화면에 깊이와 이야기 거리를 더한다. 강보경에게 아크릴을 지우고 닦아내는 행위는 마치 자아를 찾아가는 명상처럼 보인다. 어느 때는 지우고 닦아내는 일 자체에 몰두하여 자신을 잊는다. 이것은 명상이고 삼매(三昧)이다. 관계 속의 현실적 자아로부터 즉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로 또 누군가의 딸로 선생으로 학생으로서의 관계에서 벗어나 그 자신만이 존재하는 세계로의 몰입이다. 그 속에는 현실적 제약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있다. 그에게 있어서 그림은 드러난 결과물로써의 의미만이 아닌, 닦고 지우는 행위 모두 하나의 예술 활동이 된다.

강보경_大地_장지에 혼합재료_164×128cm_2003

강보경이 지우고 닦고 문지르며 찾아가는 세계는 저 끝없는 들판, 너른 대지(大地)이다. 또 그 땅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은 무한한 창조성의 근원으로서의 모성적 포근함과 안정성이다.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모든 것을 감싸 안으면서, 온갖 상대적 가치와 모순을 씻어주는 정화의 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한없는 자유의식이 내포된다. 장자(莊子)가 말하는 아무 것도 없는 넓은 들판(無何有之鄕)으로써 무한의 자유가 주어지는 공간이다. ● 강보경에게 이 들은 추수가 끝난 너른 풍요의 들판이거나, 아니면 그 땅 깊이 숨어든 안식의 공간이지만, 강보경의 들판은 현실적이거나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땅은 철저히 그의 가슴 속 형상으로만 드러나는 사유의 세계이다. 그의 세계는 그의 명상적 예술 행위 즉 지우고 닦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행위가 중첩되어 구성하는 순수 자유의 세계다. 그러므로 그에게서 그림은 자유로운 공간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만나는 장(場, field)이 된다. ■ 김백균

Vol.20031022b | 강보경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