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작가 강용면_김용식_김택상_박현주_장선영 정종미_지니서_홍장오_황수경
갤러리 상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9번지 Tel. 02_730_0030
Ⅰ. 미술에 있어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제 진부하게 되었다. '아름다움', 즉 '美'에 대한 정의 자체도 해석하기 마련이어서 단어에 대한 규정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크게 나누면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판단을 할 때 '감각적인 쾌快'인 형식적인 영역과 '의미 추구'라는 내용적 측면 두 가지로 나누어 기준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강조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미술 작품의 지향점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기초적인 조형 훈련이 습득되지 않은 기술적으로 미숙한 상태는 논외로 한다. ● 앞서 '진부하게 된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미술에 있어 주된 가치를 내용적 측면에 두고서 '아름다움'을 감각적 쾌에 불과한 것으로 한정했을 때의 상태이다. ● 미술이 정치와 철학과 사회학이나 심리학적 주제들과 긴밀해지면서 형식미의 측면이 도외시되는 현상을 말한 것이다. 장인적인 태도로서의 미술가상(美術家像)에 대한 비하도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겠다. 비대해진 두뇌에 가냘픈 육체를 한 인간을 떠올리게 된다.
'색色'이란 요소는 광범위한 담론을 이끌어 낼만큼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것이다. 미술에 있어 색이 강조된 것은 서양미술사에 한정하자면 근대에 들어서였다. 그 영향력이 전 지구적으로 파급되었으므로 일반화 시켜 언급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 『춤추는 색』展은 이러한 '색'의 속성에 집중하여 제작된 작품들을 제시함으로써 '시각적 쾌'를 강조한 미술에 대한 중요성을 되새겨 보고자 하였다. 형식미를 충족시키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작품들을 통해 그것이 '의미 추구'와도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아니, 미술에 있어 형식과 내용, 그 둘은 인간 존재가 분리할 수 없는 정신과 육체로 되어있듯이 일체가 됨으로서만 빛을 발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출품작의 면모를 살펴보면 색과 재료의 연마를 통해 빛을 느끼게 하는 작품_김용식·박현주, 자연의 오묘한 색감을 재해석 한 작품_정종미·김택상·황수경, 강렬한 원색의 대비를 통해 심상의 즐거움을 꾀한 작품_강용면, 그밖에 선과 색의 연구_지니서, 재기발랄하고 은밀한 색의 감수성을 엿보고자 한 작품_홍장오, 색과 물감의 움직임을 통해 밝혀지는 존재에 관한 통찰_장선영 등이다. ● 완성된 상태가 매우 감각적이고 절제되어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작가가 재료를 깊이 있게 만남으로서 가능한 것이다. 그리는 행위가 배제된 작품들은 도공이 흙을 어루만지고 고열의 가마에 넣어 굽듯이 정성스럽게 제작된다. 아크릴물감, 템페라, 나무, 천, 물, 종이, 플라스틱 재료, 심지어 콩즙과 꽃잎이나 감잎의 즙에 이르기까지 재료가 가진 색을 드러내고 배치하는 과정들이 매우 섬세하면서도 사려 깊게 이루어진다. 최대한 재료의 물성이 존중되고 작가는 오히려 재료의 성질에 맞추어 물 흐르듯이 따르는 것처럼 여겨진다. ● 김택상은 자신을 '나는 감각주의자입니다'라고 표현했다. 색채의 유희가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전체 작가들을 대변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한 감각주의자에 불과한 것일까? 작품의 과정을 살펴보면 자연과 일상과 사람에 대한 존중이 배어 나온다. 적절한 균형감각과 기다림, 때로는 변화를 이끌어 내는 개혁과 창조 등.. 작가는 재료와 화면과의 실제적인 만남을 그렇게 몸으로 하고 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감각은 풍부한 감각이다. 이것이 미술에 있어서 '시각적 쾌'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 재료에 대한 실제적인 친화, 정제된 감각으로 빚어진 색채의 유희는 단순한 감각적 쾌락만을 제공하지 않는다. 상징화되어 전달되는 의미, 언어 이전에 심상을 향해 부딪치는 자극과 울림. 작가의 물리적 행위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은 시각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인간의 의식과 감성을 자극한다. '시각적 쾌'는 이렇게 '정신적 쾌'로 이어지고, 그렇게 될 때야만 '시각적 쾌'가 완전해질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실제로는 아름답지도 못한 것이며, 진실하기만 한 것은 정작 진실하지도 못한 것이다, 적어도 미술에 있어서는.
Ⅱ. 추상미술이 현대미술의 중요한 영역으로 떠오른 지 백 여 년이 지나고 있다. 동양에서는 서체에서의 필획과 여백이 주는 미감을 따라 명명(命名)과 상관없이 추상(抽象)의 전통은 있어왔다. ● '색'을 주제로 한 전시이기에 강용면의 작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이 추상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단순하고 딱딱한 성격의 작품에서 부드럽고 유연한 느낌의 작품까지 외부 대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형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야기를 전하지 않고 나아가 작품 안에 구체적인 인간의 역사는 없다. 반인간적(反人間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비인간적(非人間的)이라고 할 수 있다. ● 추상미술의 낯섦은 이 지점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본다. 사회와 언어에 익숙한 문명인이 사회를 반영하지 않고 언어처럼 이해되지 않는 이미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인간을 포함하고 자연도 포함한 우주적인 세계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일상을 사는 데는 우주적 관점에 대한 인지여부가 큰 변수로 작용하지는 않지만, 존재의 근원이나 사물의 원리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다 보면 가장 미세한 차원이나 가장 거시적인 차원을 만나게 된다. 그곳은 곧 추상의 세계이다. 작품이 새롭거나 멋있어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추상화 앞에서의 가슴 뜀은 바로 우주적 차원의 존재의 세계와 조우하는 순간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형상이 드러나지 않는 작품을 통하여 장식품으로부터의 미적 쾌락의 차원을 넘은 새로운 감성을 체험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작가가 의식과 감성의 차원에서 추상의 세계를 익히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일차적으로는 색채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지만 작품들은 감각적 쾌락만을 충족시키는 한계를 넘어선다고 보고 있다. 작품들이 상징하는 내용과 모티브를 뛰어넘어 우주적 영성을 내포하는 그런 진실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인간 속에 내재하고 인간을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초월하기도 하는 비인간적인 서늘한 세계. 언뜻 그 세계를 펼쳐 보이는 작품으로 추상의 아름다움을 기대하는 것이다.
20여 년이 넘도록 색채의 세계와 긴밀히 교감한 장선영은 '완전하지 않은 색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색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무색의 빛으로부터 비롯되어 수 만 가지 색채로 사물을 밝히는 색의 메타포. 온갖 다양한 현상과 존재는 근본에 있어 한가지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 춤추는 색. / 춤추는 존재. / 우주적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봄으로서 어떤 자유로움 누리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이 진실에 대한 것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 신혜영
Vol.20031018b | 춤추는 색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