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읽기

정상곤 회화展   2003_1014 ▶ 2003_1026

정상곤_현상_낙하산천에 컴퓨터 프린트_330×330cm_200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정상곤 홈페이지로 갑니다.

금산갤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02_735_6317

引用과 읽기 ● 쉽게 읽기_과거 정상곤은 주변의 하찮은 풀잎 자투리를 찾아내고, 이를 포토픽스를 통해서, 미시적인 부분까지 크게 확대하여 '다른 현상'을 보여주었다. 이 때 달라진 색채와 형태는 일상의 물체에 신비함을 부여하고, 그럼으로써, 일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작은 단서이었다. 이후 2001년에서 2003년 사이에 그는 멀티미디어 영상과 소리를 실험하며, 새로운 형태의 잡음과 잡영, 깨끗한 이미지 등 다양한 그림을 만들어 낸다.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서해 교전 사건이나,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장면을 디지털 프린트로 제시한다. 그의 작품 주제는 과거 비 사회적 내용에서부터 현실에 대한 '메시지로 전개된다. 그는 신문기사를 통하여, 한국의 분단상황에서 벌어지는 돌발 '사건'을 보여준다. 작품 「인용-west sea」에서는 thick 과 smoke란이 비워져 하얀 공간으로 제시되고, 이 글자들은 영상 공간 속에 옮겨진다. 작가는 여기서 문장의 위치에서 보여지는 의미를 제거하고, 영상 공간에 돌발적으로 옮겨 놓아 더욱 '전투행위'와 같이 단절적인 상황을 강조한다.

정상곤_인용-cruel의 text
정상곤_인용-cruel_캔버스에 컴퓨터 프린트_50×110cm_2003

작품, 「인용-cruel」 (2003)에서는, 경찰의 폭력 기사에 기초한다. 이 작품에서는 '사건의 인용'이라는 점이 중요해 보인다. 이 사건은 '현재의 사실의 결과'이며 사건의 '도래'나 '됨'(devenir)이라는 철학적 의미로서 '현재(現在)에만 일어나는 것을 설명한다. 이는 '동시성'에 기초하여 수집된 '기사'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비록 지난 '사건'이더라도 기사라는 특성상 '현재'의 의미가 강조된 글쓰기이다. 이러한 '현재의 글쓰기'는 한 순간에서 나오게 된다. 이 글쓰기의 구조와 연속성은 "사건 속에서 발생하며, 역사적인 관점의 기초"가 된다 (브로흐). "한 사건은 역사의 거품과 같이 덧없이 일어나는 것으로서, 시간적인 일련의 사건들의 관계 속에 놓여지며, 여러 다른 사회적 계층의 시간으로 보여진다 (푸코). 즉 이것은 계층적으로나 장소적으로 다른 상황으로서, 어떤 이는 알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는 차별성이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이렇게 기록된 사회적 리얼리티는 언론 매체의 직접성과 메시지의 직접성에 기초하여 보도된다. 이 직접성은 바로 사회적 유용성에 기초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 기사와 인용의 직접성에서부터, 예술이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유용성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회적 의미로는 완성될 수 없다는 모홀리 나기(Moholy-Nagy)의 생각을 거론한다. 작가의 인용은 사회적 메시지의 기호적 기능을 가지고 있으나, 단순하게 사회적 내용만이 아니라, 인용 자체에 대한 문제에도 관심이 있어 보인다.

정상곤_인용-West Sea의 text
정상곤_인용-West Sea_캔버스에 컴퓨터 프린트_50×110cm_2003

다시 읽기-引用 ● 일반적으로 인용은 과거의 주제를 다시 취하고 반복하는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다양한 변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유형으로는 패러디(parodie)나 모작이 있으며, 이는 과거 기존 텍스트의 새로운 이해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미리 존재하는 것으로 들어가는 것에서, 상호 연관된 일련의 연작과도 같다. 인용은 원본과 그것을 재현하는 것 사이에 형식을 개방한다. 열려진 관계는 이러한 원본과 작품과의 과정으로,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종적인 (allogene) 과정에서 보여지는 텍스트의 병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용은 한편으로는 기존 사건이나 예술작품에 기초하는 것으로서 창작자 개인의 특성을 '비 개성화'시킨다. 그러나 여기에는 단순한 비개성만이 아니라, 참고가 되는 원본과 창작 작품 사이의 관계에서 '놀이'가 있으며, 원본이 되는 창작의 내용을 해석하는 과정이 존재한다. 이러한 '개인적 해석' 놀이가 인용작업의 중요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인용은 작가에게서 사건과 작품 아니면 작품과 작품간의 다른 현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서 판화가 갖는 복수성과 복제성, 간접성에 부합한다. 푸쇠르(Henri Pousseur) 는 인용에 대해서, "창작의 종합적인(collective) 그물과 같은 조직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어떤 사건과 사실이 갖는 주변 상호적인 정황 속에서 연결되는 '역사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건에 내재하는 요소는 작가 개인적인 해석이 첨가될 수 있게 된다.

정상곤_인용-염색_캔버스에 컴퓨터 프린트_50×100cm_2003

작가의 주변에 대한 반응은 무엇인가?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적 수용인가? 필자는 우선, 철학적으로 사건에 대한 생각을 거론하고 싶다. 사건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으로는 'sumbebekos' 라고 하여, '함께 가기'를 뜻한다. 이 '함께 가기'라는 개념은 모더니즘 예술과 달리 '현실을 거론하는 미술외적 내용'을 부가하는 지금의 예술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 '부가'는 실체에 덧붙여지는 현실이다. 이러한 사건은 그 자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체 속에서 존재' (Gilson)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바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동시대적인 실체 속에 존재하는 사건을 제시한다. 그가 보는 실제 '사건'은 서해교전과 같은 시사적인 문제와 폭력진압에서는 비뚤어진 '힘'이 암시된 사건을 설명하면서도, 그 사건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어 냉담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적극적으로 현실 주제를 차용하면서도, 그 주제에 거리를 두는 냉담한 이중성이 존재한다. 그의 일상은 실제의 일상성, 즉 존재의 '평균적' 양태(하이데거)로서, 본질적 양태와 비본질적 양태가 공존하며, 사건이 변질되어 제시된다.

정상곤_인용-비만_캔버스에 컴퓨터 프린트_50×100cm_2003

더 깊이 읽기 ● 이러한 인용에 대해서 작가 정상곤은 '문화 읽기'나 '사회 읽기'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토도로브의 '읽기가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생각난다. 읽기라는 관람자의 태도가 작가의 창작 태도로 들어오는 이중성을 갖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읽기에서, 롤랑바르트의 lexie (읽기-어휘)를 연관해 볼 수 있다. 이것은 몇 개의 단어나 문장을 포함하는 것으로 문법적인 측면에 편리함이 있기 때문에 중요시된다. 이 "lexie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좋은 문법적인 장소이기도 하며, 경험적인 차원을 가지고 코노테이션 (공시 - 단어의 확장적 의미 connatation)의 정도에 종속된다. 여기서 이것은 텍스트의 순간들(les moments de texte)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된다" (Roland Barthes, S/Z). 이러한 읽기는 감상의 보편적인 단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것은 나레이션의 구조에서 고유한 단어의 구조에서 만이 아니라, 시간적인 구조를 희생하며 제시된 세계의 상징적인 읽기를 포함하기도 한다. 이러한 저널 텍스트는 그에 있어서 '순수하게 읽기 위한 텍스트가 아니라, 의미를 완성하며 재구성하는 '한정적이고 복합적인 읽기를 위한 텍스트'(롤랑 바르트)가 된다. 정상곤의 텍스트 읽기는 다다이스트 식의 '무한정적 복합적인 텍스트 읽기'가 아니라, 제시된 텍스트를 완성하기도 한다.

정상곤_남양주 프로젝트_2003년 5월 24일부터 3일간 북한강에서…_2003

그의 읽기는 현실 기사에 작가의 해석을 '부가'하면서 전개되는 반면, 그의 작품 구성은 이와는 다르게 조형요소들을 '감'하면서 전개된다. 예를 들어, 작품 「현상」은 낙하산으로 사용하는 천 위에 인쇄하고, 흐르는 물에 몇 일 동안 노출하여, 탈색시킴으로써, 시간에 따라 이미지를 '감'(減)해 나간다. 다른 작품 「인용-물」에서는 일상적인 화면으로 보이나 색상을 rgb 모드 중 한 색상을 빼어, 달라진 풍경을 표현한다. 다른 경우에 그는 뿌연 장면을 연출하여, 선명함을 '제거한 부정'을 제시하고, 인덱스로서의 기능을 저하시킨다. 이러한 다양한 '감산' 방법은 일종의 '감'(privation)하는 부정이다. 이러한 감산의 판화는 또한 원판이 투사된 전이로서 원형으로 더해지는 방식이며, 그 재현 방식은 감하는 방법으로 대조된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감'(privation)하는 방식에 대해서, "우연적인 사건과 실체 사이의 구별하는 양태를 지시하는 것으로서 존재론적인 과정"으로 설명한다. 작가 정상곤은 '감함'에 따라서, 사건과 실체의 구별을 찾아 나가며, 존재적인 과정으로 재형성시켜 나간다. ■ 강태성

Vol.20031018a | 정상곤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