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로의 발견

박윤영 개인展   2003_1016 ▶ 2003_1029

박윤영_ARTOMI_화선지에 수묵_65×50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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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1022_수요일_05:00pm

시공간 프로젝트 브레인 펙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우회로의 발견(...) 언젠가는 없어지겠지. (...) 모두 이 거미줄처럼 끊어지고 사라지겠지. 내 머리에는 흰머리가 나고 내 피부는 흙이 되겠지. 내 목소리는 사라지고 내 눈은 빛을 볼 수 없겠지. (박윤영) ● 박윤영의 작품들은 사라짐의 개념을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어 보인다. 아니 오히려 사라짐 때문에 작업이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짐에 대한 집착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박윤영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3년 뉴욕에 있는 작가 거주 프로그램인 Art Omi에 참가하는 작가로 그녀를 선정하면서이다. 그녀가 응모자 가운데 상대적으로 두드러져 보였던 이유는 젊은 세대 미술가들이 흔히 영향 받기 쉬운 코드화된 다양성에서 벗어나 독특하리만치 사적(私的)이며 생경한 언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었다.

박윤영_로고 산수 evian/volvic_족자에 채색_2003
박윤영_픽토그램 산수 I_족자에 채색_175×50cm_2003

마르셀 푸르스트가 말한 것처럼 재능 있는 작가는 언어 속에서 다른 언어를, 어느 면에서 자기만의 낯선 언어를 만들어 가는 자이다. 박윤영은 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했으나 그녀의 근작들은 동양화의 일반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과감한 파격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동양화도 서양화도 아닌 경계에서 파생하는 언어, 관습의 밭고랑 밖으로 벗어난 언어이다. 그것은 자신의 작업을 전적으로 새롭게 구성하는 시도지만 단순히 고의적인 형식 파괴의 방식은 아니다. 오히려 박윤영이 동양화를 대하는 자세는 전통적인 동양화에 요지부동으로 붙어있는 온갖 관습적 표현과 특권적 좌표들을 멀리하고 순수한 내재의 장을 자신 속에 경건하게 수용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미술이 반드시 도달해야 할 우회로를 찾아낸다. 모든 우회로는 창조적 관계를 이어가는 죽음의 생성이다. 사물에도 언어에도 직선은 없다. 미술은 재료적 표현 속에 존재하는 삶을 나타내기 위해 매번 창조된, 필요한 우회로의 전체이다.

박윤영_클리넥스 산수_티슈에 수묵_실물크기_2003

박윤영은 외할머니의 죽음 이후 깊은 고뇌 끝에 「장판몽유」 시리즈를 그렸고 '다른 것'으로 이행하고, '여성'이라는 우회로를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동양화가 김기창은 생전에 자신의 삶에 있어서나 예술 세계에 있어 가장 깊게 영향을 끼친 존재는 3명의 여성, 즉 할머니-어머니-아내였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이는 어떤 미술가가 어떤 여성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영향 관계나 식별 불가능성, 미분화의 지대 속에서 불안정한 자아를 형성해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간의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되고 아무리 많은 세대를 거쳐도 유전자 변형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독특한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모든 미토콘드리아는 모계를 통해서만 이어지므로 미토콘드리아 DNA를 거슬러 가면 인류의 공통 조상은 단 한명의 여인, '미토콘드리아 이브'를 만나게 된다. 박윤영의 작업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계기는 따라서 아빠-엄마-나라는 외디푸스 삼각형,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같은 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아니라 할머니-나-엄마의 미분화 지대였다. 그것은 마법의 세계로서, 오늘날 우리가 슈퍼마켓에 진열된 통조림처럼 일상의 객체로 전락하고 스스로 전락을 자초하기도 하지만 이따금 진정으로 이 마법 세계의 전언을 듣게 되는 순간 우리는 사랑을 진정으로 확인하게 된다. '나 아닌 것'을 향한 동일화의 거친 몸부림이 사랑의 에너지의 근원인 바, 우리는 사랑을 할 때 비로소 자신의 근원인 대상과의 그 충만한 일치를 경험한다.

박윤영_까르띠에/Lmited edition I_카다록에 수묵_26×20cm_2003

「픽토그램 산수」 시리즈 가운데 한 작품 안에서 작가는 스스로 장님이 '되어' 지팡이로 땅을 짚고서 물소리 방향을 향해 서있다. 그리고 제발(題跋)에는 살아생전에 눈이 멀었던 할머니와 함께 했던 일들, 약속을 지키지 못해 심리적 상처(trauma)가 되었던 이야기들을 문자그림(pictogram)으로 그려 넣고 있다. 이는 트라우마를 푸는 행위라는 점에서 영가(靈駕)를 불러내는 주술적인 행위로 보이기도 하지만 태고이래 모든 살아있는 것, 피할 수 없이 죽는 모든 것을 그 머리 위에서 지켜온 죽음 그 자체, 죽음이라는 사건을 현재화하는 행위로 보인다. 과거에 죽었건, 미래의 일이건 죽음이라는 사건은 모든 각자가 제 스스로의 '탄생지'를 만들어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벽지 여자」는 벽지 위를 엎드려 떠내려가는 여러 명이 된 여자(들)를 그린 두루마리 그림이다. 바탕은 어떤 두께나 깊이를 포기한다. 오히려 작은 무늬들이 소용돌이를 형성하는 시뮬라크르이다. 바탕에 거의 스며들어가듯 가는 선으로 그려진 여인들 형태는 우측에서 좌측으로 갈수록 색이 엷어져 큰 화면에 유장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한없이 흐른다는 느낌을 받게 되며, 여인들은 벽지 속으로 잠기기보다는 표면을 미끄러지며 다른 쪽으로, 그림 바깥으로 사라져버릴 것 같다. 이처럼 물체적인 것에서 비물체적인 것으로의 변화는 경계선을 따라, 표면을 따라 이뤄진다. 「국화벽지」에서는 가을에 피는 노란 국화들이 죽은 살색의 벽지 위로 버섯처럼 피어오른다. 그것들은 떠가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이제 막 피면서 스스로 탄생지를 만드는 시들지 않는 꽃이다. 내 영혼의 눈은 / 빛 보다 환한 세상을 보며 / 내 목소리는 노래하겠지 / 내 피부는 살아나고 / 내 머리카락은 희어지지 않겠지

박윤영_Go Away_화선지에 채색_135×76cm_2003

박윤영의 로고 산수나 픽토그램 시리즈 일부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중국의 현대미술가 슈빙이 한자들을 알파벳으로 변형시킨 방식과 형태상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슈빙이 중국어를 알파벳으로 변환시켜 외국인에게 서예 체험을 유도하는 반면에 박윤영의 발상과 표현은 좀더 자유자재하고 익살맞고 예측불가능하다. 박윤영의 모든 작품은 표현을 기호의 요소로 바꾸어놓으며 그 변환 과정에 욕망 개념을 끼워넣는다. 여기서 욕망은 어떤 자아도 가르치지 않으므로 그녀의 그림들은 욕망의 가상적 실현을 나타내는 각본이 아니다. 오늘날 기호는 신체적이고, 분열적이고, 생산적이고, 능동적이고, 사회적이고, 현실적 생성의 힘으로 여겨지는 점에서 욕망의 소재지인 동시에 형세이다. 상품 브랜드(까르티에) 이미지에 미인도를 그려넣는가 하면, 천연수 에비앙과 볼빅의 팻병에 붙은 로고 디자인에 이미지로서의 이상향(Utopia) 산수를 차용하고, 기존의 픽토그램을 변형하거나 새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박윤영_Calligraphy Project_퍼포먼스_2003

픽토그램은 현대 문명의 에스페란토(Esperanto) 같은 것이다. 인구 이동과 교류가 빈번해짐으로 인해 국제 사회에서 세계 각국의 풍습·언어·문자의 차이는 인간 상호간의 의사 전달에 많은 장애와 불편을 주기 때문에 시각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픽토그램은 획기적인 발견이다. 쓰기와 그리기의 일치로서의 픽토그램이 오늘날 문화적으로 존속해 있는 영역은 바로 극동아시아의 서예다. Art Omi에서 박윤영은 픽토그램을 화선지에 대담하게 그린 드로잉 작품들을 제작했고 그 프로그램에 참가한 많은 외국인 작가, 비평가들에게 서예를 직접 해보는 기회를 오픈 스튜디오 작업을 제시하기도 했다. 화선지에 그린 픽토그램은 네온사인이나 전광판처럼 이미지 주변을 엷은 먹물로 번지게 하여 빛의 효과를 부여한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형광등, 네온사인, 번갯불 같은 것들은 우주의 99퍼센트를 차지하는 제4의 물질인 전기적 중성 상태, 플라즈마다. 작가는 자신의 시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남기고 있다. 단순한 천체 / 영역 위 경계면 / 모든 게 그립다 / 선 / 플라즈마이영철

Vol.20031016b | 박윤영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