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3_1015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한국에 살기 3년 전 나는 12년 동안 여러 아시아의 지역을 여행했는데 그 중에서 인도를 가장 많이 방문했다. 인도는 나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나라로 나의 작업들은 대부분 그곳에서 이루어 졌다. ● 나의 여행은 일정한 계획 없이 이루어 졌는데 대개는 어느 한 장소에 오랫동안 머물며 그림을 그리곤 했다. 인도에서 나는 주로 거리로 향해져 있는 카페나 찻집에서 혹은,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광경들을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그곳은 언제나 여행자들과 그 지방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는데, 항상 뭔가 돌발적이고 이상한 일들로 가득 차곤 했다. 그러한 상황들은 자연스럽게 나의 그림에 밀접한 영향을 끼쳤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사람들은 종종 나의 자리로 와서 나의 그림을 지켜보거나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다가와 말을 걸곤 했다. 카페안과 거리는 항상 상인들과 거지들, 사두들, 음악가들, 아이들 그리고 동물들이 오고 가면서 주변을 그들만의 독특함으로 가득 채우곤 했다. 때때로 그곳은 그들의 음악과 사람들의 논쟁소리나 웃음 소리로 가득 차기도 했는데, 그러다 가끔 정전이라도 될라치면 단지 촛불이나 등불에 의존한 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 나는 자주 하루 종일 밤이 깊도록 그림을 그리곤 했다. 동시에 여러 가지 다른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한번은 흑단같이 긴 검은 머리에 강렬한 빛의 긴 붉은 옷을 입은 기인이 카페 안으로 들어선 순간 나는 강렬하게 그에게 빨려 들었고, 당시 흐린 색의 그림이 붉은 색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 한번은 예기치 않게 인도의 한 화가가 나를 향해 걸어 들어 왔는데, 그의 모습은 이 후 나의 두 그림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주변 분위기나 상황은 나의 작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여행 중에 많은 작품들이 완성 되어졌다. 사람들은 종종 나의 작품에 대해 보거나 묻곤 했는데, 어떤 이는 무심하게 보고 지나 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진지하게 보거나 또 다른 영감을 받기도 했다. 가끔 사람들은 그들이 내 그림을 보고 느낀점들을 말하기도 했는데, 미처 나 자신이 의식하지 못했던 깊은 의미나 상징 등에 대해서 이해나 도움을 주고 받기도 했다. 게다가 사람들은 나의 그림을 통해 자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말해주곤 했는데, 그것은 또한 나의 지나온 삶을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림은 다른 이들과 나 자신을 - 그것이 비록 짧은 만남이었을지라도 서로 오랫동안 알아온 벗들처럼- 서로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였다. 나는 사람들과 특히, 다수의 경우엔 더 더욱이나 서로 소통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그림은 나 자신과 다른 이들 사이의 소통의 장벽을 제거할 수 있는 중요한 방식이 되어주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새롭고도 매우 강렬한 경험이었다. 돌이켜보건대,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인해 초기의 어둡고 혼란스러운, 강렬한 에너지들로 가득 찬 나의 작품들을 더욱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점차 작품들이 새롭고 밝아져 갈 수 있었다. ● 이번 전시 작품들은 그 동안 여행 중 거리에서 이루어진 많은 드로잉 중 몇 점과 수채화로 그렸던 작품들을 기초로 해서 유화로 작업한 것과 이번에 새롭게 작업한 것들로 준비되었다 ■ 버몬트 리차드 존
매일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옷을 벗고 목욕을 한다. 때론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어쩜 노인도 있었을 것이다. 욕실은 가장 은밀하면서도 원초적인 곳이다. 그곳에선 매일 똑같은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그리곤 우린 서서히 달라져 가는 우리 삶의 모습을 변해가는 우리의 몸을 통해 깨닫게 된다. 그 문을 경계로 일상의 시작과 끝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 낡은 욕실 문이 있다. 밖에서 보면 보기 좋은 그 문의 안쪽은 실상 그 동안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반복된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듯 거친 나무 결을 그대로 드러낸 상처 입은 모습이다. 어느날 나는 칠이 벗겨지고 벌건 상체기를 그대로 드러낸 까칠한 그 문을 보고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모습을 느꼈다. 저 문을 통해 하루를 열고 닫았을 사람들, 저 문이 보고 들었을 사람들의 일상의 파편들… 나는 그 비밀을 알고 싶었다. 저 문을 통해 우리들의 일상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그것을 나의 작업으로 풀어 내고 싶었다.
나는 매일 그 문에 종이 테잎을 붙였다. 그리곤 주문을 외듯 종이 위를 긁고 또 긁은 후 떼어 냈다. 그 동안 그 문이 겪고 보아 왔을 모든 사실을 다 말해줄 때까지……그래서 결국엔 우리 일상의 끝이 무언지 알게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렇게 해서 거둬들인 종이에는 주문처럼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나무 가시들이 가득 박혀 있었다. 그 종이들은 잘게 찢겨 조각난 이야기를 맞춰가듯 캔버스나 종이 위에 다시 서로 이어 붙여 갔다. 나는 이러한 반복된 작업을 통해 그 문의 비밀에 다가서고 싶었다. ● 거기엔 깊게 패 이도록 난 자국을 그저 물길 한번으로 지워 낸 그런 풍경들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또다시 깊게 자국을 만들게 하고 싶어지는… 그 황량한 뻘 밭 같은 곳에 사랑을 심고 생활을 심는 알몸뚱이의 우리가 있었다.
그저 물길 한번이면 쓱 하고 지워질 우리의 일상이지만 오늘도 열심히 하루를 심는 것. 단지 지워질 자국을 또 남기고 또 지워내며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러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일상의 변화 한 가운데에 우리의 삶은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 장의령
Vol.20031015a | 장의령_버몬트 리차드 존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