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적인 쾌감 및 감정의 이탈

이동식 회화展   2003_1008 ▶ 2003_1014

이동식_太陽鳥의 讚歌_종이에 혼합재료_54×46cm_2003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예술가가 남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술창작이란 궁극적으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 하나를 완성하는 일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예술가에게는 때로 전혀 엉뚱한 발상과 그를 현실화하려는 도전의식이 필요하다. 물론 기존의 것과 다르다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적인 가치를 생산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성 문제 이전에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사실은 아주 중요하다. ● 청사 이동식은 예술가로서의 기질을 타고났다. 전통회화를 하면서도 순수추상은 물론이려니와 오브제작업까지 넘나들었다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새로운 표현에 대한 도전과 열정은 특별하다. 실제로 전통회화 분야에만 국한해 보더라도 수묵산수에서부터 화조 인물 풍속 영모 절지 문인화 등 막히는 데가 없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그에게는 그림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다. 다시 말해 어떤 하나의 표현양식이나 형식에 갇혀 있지 않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그는 자유자재하다. 이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오직 스스로의 신념 및 확신의 결과이다. 어쩌면 그 만큼 작가로서의 기질이 강하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른다.

이동식_太陽鳥의 讚歌_종이에 혼합재료_62×51cm_2003

이와 같은 작가적인 면모는 작품에 그대로 반영된다. 적어도 그림에 관한 한 금기가 없는 듯싶다. 어떤 형식적인 틀을 거부하는 다양한 형태묘사기법은 물론이려니와 수묵과 화려한 원색을 거침없이 혼용하는 대담한 색채구사방식은 가히 파격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방식은 부단히 탐구하는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즉, 창작의 윤리성에 충실하다는 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작이란 자신의 작업을 포함하여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를 부단히 꿈꾸고 탐색하는 과정의 연속이어야 한다. 그가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시험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작가적인 열정의 소산이다. 무릇 창작열이 뜨거운 작가라면 외적으로는 호기심 어린 시각으로 끊임없이 세상을 탐색하고 내적으로는 조형적인 변화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대한 작가적인 이미지는 이에 합당하다.

이동식_愛泉_종이에 혼합재료_70×70cm_2003

이전의 추상작업과 상관없이 한국화에만 전념하는 최근의 경향은 여전히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준다. 양식상으로는 산수화 풍속화 화조화 영모화 따위로 구분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분류가 과연 타당한지 애매하다. 왜냐하면 수묵과 원색을 혼용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소재의 배치에서 사실적인 공간개념을 벗어나 초월적인 경계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초현실주의로 분류하기도 쉽지 않다. 수묵산수화에서 초현실 세계는 관념화로 치부하지만 이는 초현실주의와는 다른 의미로 이해된다. 가령 산수화의 틀을 갖추고 있으나 말이 하늘로 비상하는 식의 비현실적인 상황설정은 현실공간개념을 벗어나 있다고 할지라도 간단히 초현실주의라고 할 수 없다. ● 무엇보다도 소재의 존재방식이 무한공간에 자리한다는 점이 다르다. 예를 들면 화조형식의 작업에서는 닭이나 봉황이 꽃들과 함께 하는데, 이들 소재는 현실적인 공간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공간개념을 떠나 소재 자체의 형태미와 소재들간의 조화를 통해 조형적인 순수미를 추구하는 식이다. 어느 면에서는 소재의 자유로운 배치를 통해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구성적인 화면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소재의 자유로운 배치는 원색적인 색채이미지를 불러들이는 근거가 된다. 이미 현실개념을 떠남으로써 비현실적인 원색을 받아들여도 전혀 문제가 없다.

이동식_愛泉_종이에 혼합재료_32×42cm_2003

이와 같은 조형적인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 그의 작품세계는 언제나 파격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수묵의 바탕 위에서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한 원색이 난무하는 식의 색채대비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화가들 사이에서는 금기시하는 색채배열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그는 의연히 금기에 도전하여 마침내 감상자를 납득시킨다. 전통적인 수묵화 또는 채색화의 관점에서는 이질적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현대라는 시제를 통해 그의 그림을 볼 때 전혀 문제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의식의 전환이 가져오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유쾌하게 실증하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이처럼 근엄한 격식을 깨뜨리는 파격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시각적인 쾌감이 자리한다. ● 현대미학에서 그림이란 이래야 된다는 훈계적인 공식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의 그림은 단지 이채로울 따름이다. 일반성을 넘어섬으로써 독특한 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다 전통적인 화법을 대입시키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화법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격식을 깨뜨리는 자유로운 필치로서 개별적인 형식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을 따름이다. ● 최근 작업은 어떤 형식이든지 하나의 공통된 내용 및 조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수평선 또는 지평선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장엄한 일몰의 정경이 약속이라도 하듯 대다수의 그림 속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강렬한 붉은 색으로 표현되는 일몰은 빛과 어둠, 하늘과 대지가 합일, 즉 혼연일체가 되는 상황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워낙 강렬한 색채 이미지로 나타나는 일몰의 광경은 시각적인 엑스타시를 맛보게 할 정도이다. 이는 장엄하면서도 엄숙한 대자연과 우주가 펼치는 환상적인 드라마인 것이다.

이동식_勝利의 感動과 榮光의 飛馬_종이에 혼합재료_91×150cm_2003

그의 그림에는 확실히 일상성을 벗어나는 환상 및 환각효과가 있다. 이는 현실과 엄연히 다른, 그림이 만들어내는 가상의 세계일 뿐이다. 의외성으로 넘치는 그 강렬한 색채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의식 및 감정의 해방을 맛보게 된다. 짜릿한 시각적인 쾌감에 이어지는 자유로운 의식 및 감정의 이탈이야말로 그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숨은 기능성인지 모른다. 이렇듯이 현실색을 훨씬 넘어서는 자유롭고 활달한 색채이미지는 회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환상인 셈이다. 여기에 덧붙여 힘차고 빠르며 때로는 공격적이리 만치 대담하게 전개되는 운필은 시각적인 인상을 한층 강화시킨다. 이 또한 전래의 화법에서 볼 때 일정한 격식을 넘어서는 파격이다. ● 그런가 하면 전통적인 필법으로 장날의 전경을 대화면에 펼쳐놓은 작품을 보면 그가 얼마나 치밀한 묘사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수백 명의 등장인물도 그러하거니와 전체적인 구성과 내용에서 풍속화로서의 역량이 결집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다른 형식의 작업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전통적인 필법 및 화법의 연마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었는지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이동식_太陽鳥의 讚歌_종이에 혼합재료_58.5×52cm_2003

뿐만 아니라 풍속화의 범주로 이해되는, 초가집을 정형화시킨 최근의 작품 형식도 이와 같이 전통회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초가집으로 화면을 가득히 채운 '애천'이라는 명제의 연작은 투시기법과 유사한 선묘형식이 특이하다. 사랑으로 넘치는 가정을 제재로 한 '애천' 연작은 조형적인 형식의 정형화를 바탕으로 하여 단지 하나의 초가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사가 작품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로 바뀌는 독특한 구조를 보여준다. '애천' 연작은 희화적인 선으로 간결하게 처리되는 형태묘사가 시각적인 즐거움을 야기한다. 심각하지 않은 경쾌한 선묘로 가정의 사랑과 행복과 꿈과 희망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 가장 최근 몇 작품은 원색적인 색채이미지 및 전통문양과 유사한 간결한 형태적인 해석을 통해 개별적인 형식미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표현기법이나 색채이미지에서 통일된 형식의 가능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자적인 세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시사하는지 모른다. 어쨌든 남다른 길을 걸어온 그의 작업을 돌이켜 보면 마침내 여기저기 뿌려놓은 씨를 거두어들일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예고하는 것은 아닐까싶다. ■ 신항섭

Vol.20031012a | 이동식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