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Of ABSENCE_Model house

김기남 사진展   2003_1008 ▶ 2003_1014

김기남_Model house_컬러인화_230×230cm_2003

초대일시_2003_1008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바벨탑의 환상과 모델하우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르시아스(Marsyas)는 고대 소아시아 프리지아에 살았던 사티로스의 하나로 우리에게 플롯의 발명자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감히 신(神)에 도전을 했다는 이유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플롯은 원래 아테나(Athena)가 발명하였는데 연주할 때 볼이 부풀려지는 것이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버린 것이었다. 그것을 주운 마르시아스는 열심히 연습한 끝에 능숙해지자 조화와 절대 미의 신인 아폴론에게 연주 실력을 겨루자고 제안했다. 결국 그는 아폴론과의 경연에서 패배하여 승자의 처분에 따라 나무에 묶인 채 살가죽이 모두 벗겨져 죽었다.

김기남_Model house_컬러인화_180×180cm_2003
김기남_Model house_컬러인화_230×230cm_2003

이러한 죽음은 "추(醜)"로 상징되는 불완전한 인간이 감히 절대 완벽의 아폴론적 조화에 도전하는 일종의 신성모독과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 죽음은 시지프 신화의 부조리한 도전 즉 완벽을 위한 인간의 불가능한 도전과 한계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인류역사의 초기 하늘에 닿을 수 있는 거대한 바벨탑을 기획한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과 같은 것이다. ● 계몽시대 이후 이성(理性)이라는 거대한 바벨탑은 오늘날 또 한번의 인간의 오만과 욕망을 보여 주는데, 그것이 운명적이든 본능적이든 혹은 무의식적이든 이러한 "원초적 욕망"은 우리들의 일상 깊이 물질적 유토피아의 형태로 이미 내재되어 버렸다. 우리는 언제나 절대적인 가치 특히 미적 개념의 절대 "완벽"에 대한 맹신을 가진다. 그것은 자본주의 기계(Machine)가 만든 일종의 정신착란으로 현실에 불가능한 유토피아의 맹목적 갈구임과 동시에 끝없는 도전의 부조리 연극이기도 하다. ● 현실은 유토피아와 분명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늪은 현실과 환영을 뒤섞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익숙하다고 느끼면서 아무런 거부감 없이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지는 수많은 착각들, 예컨대 바비 인형과 성형수술, 패션쇼를 위한 패션, 모델하우스와 주거 공간 등은 더 이상의 바벨탑의 환상이 아닌 바로 현실의 실현 그 자체로 보여지고 있다.

김기남_Model house_컬러인화_180×180cm_2003
김기남_Model house_컬러인화_180×180cm_2003

바비(barbie) 인형은 1959년 뉴욕에 처음 소개된 이래 오늘날까지 단순한 소품을 벗어나 때로는 비행 조종사, 여의사, 변호사, 성공한 경영자 등 여성이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이상적인 전문 직업인의 형상을 함축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외모와 또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끝없는 욕구 그리고 자신을 대변해 주는 포장된 사회적 지위 등에 의해 암암리에 묵인된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 특히 여기 작가 김기남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모델하우스는 오늘날 물질사회에서 이러한 허상을 극단적으로 말해주는 거의 상징적인 것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모델하우스는 물질 그 자체의 유토피아만을 지향하고 게다가 사진은 그림과는 달리 관객으로 하여금 사진으로 보여진 과거 상황에 대한 실증적 믿음 즉 절대적 신빙성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델하우스 사진들은 비록 그것들이 의도적으로 기획되고 교묘히 계산된 장면들이지만 거기에는 적어도 사진 매체만이 가질 수 있는 "뭔가가 뒤틀린" 어떤 이상한 현실 즉 존재의 증거를 보여준다. ●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이상적인 주거 공간, 모델하우스. 최고급 마감재와 첨단 인테리어, 우수한 교육환경, 대규모 편의 시설, 좋은 전망과 편리한 교통, 투자 중심지, 자연과 인간이 함께 숨쉬는 ... 등은 현실에서 더 나은 삶의 질과 신분 상승을 위해 꿈을 좇는 사람들을 위한 절대 완벽한 주거 공간이다. 그러나 모델하우스는 엄밀히 말해 집이 아니다. 원래 집은 여러 세대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 가족의 역사와 내력이 배어있는 곳, 타인과 나를 구별시켜주는 곳, 삶의 안식처임과 동시에 미래가 설계되는 곳, 그러한 것이 매일 매일 반복되는 곳이다. 모델하우스는 단지 어느 가족 공간을 교묘히 위장하고 있을 뿐이다. 어딜 봐도 벽에는 가족사진 액자조차 없고 모든 것은 인위적으로 꾸며진 모조들이고 실내에 보이는 베란다의 자연 조차도 만들어진 완벽한 인공물이다.

김기남_Model house_컬러인화_180×180cm_2003

작가는 이러한 인공 모조물을 사진 매체를 통해 더욱 더 증폭시키고 있는데, 거기서 이미지들은 관객에게 현실과 환상 사이를 가로지르는 일종의 시각적 딜레마를 놓고 있다 : 무언가 우리에게 불안감을 주는 가로 세로의 정방형의 형태, 실제의 거주 공간과의 상호 동질감을 주기 위한 거대 사이즈, 공상 과학 영화와 같은 완벽한 환상 공간, 이미지의 정면성과 단순성, 가능한의 투시와 원근을 무효화시키는 이미지의 평면성 등은 바로 이러한 허상을 폭로하기 위해 아주 치밀히 계산된 작가의 의도적인 제스처로 볼 수 있다. ● 결국 전혀 상용화할 수 없는 패션쇼의 의상이나 바비 인형의 왜곡된 기형처럼 모델하우스는 인간이 사는 주거공간이 아니라, 현실 도피를 위한 대리만족이나 완벽을 추구하는 인간 바벨탑의 허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때 가공된 허상 특히 사진으로 나타난 유토피아는 그 어떤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곧 오늘날 현실도피를 위한 우리 모두의 억압된 욕구의 분출임과 동시에 공통된 시뮬라크르(simulacre)이다. ■ 이경률

Vol.20031007a | 김기남 사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