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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926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_박일순_오귀원_이재효_정재철 담당_권연진
관람시간 / 10:00am∼06:00pm(3월∼10월) / 10:00am∼05:00pm(11월∼3월)
김종영미술관 서울 종로구 평창동 453-2번지 Tel. 02_3217_6484
나무로부터 ● 인류문명의 발달과정에 대한 분류를 보면, 석기, 청동기, 철기문명은 있을지언정 목기문명이란 것은 없다. 더욱이 토기에 비해 목기는 희소하다. 그렇다고 나무가 인류의 삶에 별로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무는 인간에게 많은 것을 준다. 우선 우리가 마시는 산소는 대양(大洋)과 나무로부터 나온 것이다. 나무는 식량, 땔감, 가구, 무기, 건축자재 등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제공하면서도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이 없다. 넉넉함과 풍요로움은 나무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미덕인지 모른다. ● 우리나라는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인 까닭에 어느 지역보다 나무가 많다. 전쟁의 참화와 연료조달을 위해 엄청난 나무를 베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산은 여전히 푸른빛을 잃지 않고 있다. 이러한 자연조건 때문에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목조건축이 발달했다. 현존하는 목조건축물중 가장 오래된 것이래야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강릉 객사문 등 주로 고려 말기에 지어진 것이지만 나무를 가구(架構)로 한 건축은 이미 삼국시대 이전부터 출현했다. 목조건축술의 발달은 특히 불교건축에서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존하는 석조 탑파 중에서 목조양식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것으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들 수 있는데 동서에 석탑을 배치하고 그 가운데 거대한 목탑을 세운 것으로 보아 백제 목조건축기술의 높은 수준을 알 수 있다. 한편, 신라의 선덕여왕도 자장(慈藏) 큰스님의 조언을 따라 황룡사 구층 목탑을 축조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심주석의 흔적으로 볼 때 이 구층 목탑이 얼마나 웅장하고 화려한 것이었는가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건축과 함께 나뭇조각 또한 많이 제작되었을 것이지만 아쉽게도 목조불상의 경우 대부분 조선시대 것만 남아있다. 이는 화재로 불타 없어진 탓이기도 하지만 온 국토가 나무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팔만대장경과 같은 목판인쇄는 물론 목어(木魚), 업경대(業鏡臺), 북받침대(鼓臺) 등처럼 나무를 재료로 한 미술공예품을 많이 제작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임에 분명할 것이다.
근대에 들어 우리나라 조각가들이 주로 일본에서 서구적인 조각기법을 습득할 당시에도 나무조각품을 많이 제작했다. 근대조각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정관(井觀) 김복진(金復鎭)의 작품 중에서 한복을 입은 조선여성의 우아한 맵시와 자태를 표현한 「백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목조라고 증언하고 있어서 비록 한국전쟁 중 소실되기는 했으나 목조에 있어서도 그의 재능이 탁월했음을 짐작케 한다. 특히 김복진이 사회주의운동으로 투옥되었을 때, 감옥에서 목조불상을 깎았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김복진의 제자인 불재(佛齋) 윤효중(尹孝重)은 동경미술학교 목조각과에서 조각을 배웠으며, 일제시대에 발표한 그의 「물동이 인 여인」이나 「현명(弦鳴)」은 모두 목조이다.
우리나라 추상조각의 개척자인 우성(又誠) 김종영(金鍾瑛)의 목조 추상 작품 중에서 가장 이른 것으로 다듬이 방망이 모양을 한 「새」란 작품을 들 수 있는데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 한 것이니 1953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복진을 비롯한 근대기에 활동했던 조각가들이 대체로 형상의 사실적 재현을 추구하였다면 김종영의 경우 1950년대 초반부터 추상조각을 시도하였음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 작품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무가 지닌 형태를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단순성을 잘 살린 추상조각을 제작한 것에는 그의 작업방식에 대해 불각(不刻)이란 개념을 붙여준 것처럼 나무를 깎되 나무의 특성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그의 태도가 실천되었기 때문이다. ● 우성 김종영 선생은 자신의 작품의 모티브가 주로 인물과 식물과 산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는 형상의 외양보다 그것의 구조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부드러운 곡선을 지니고 있으면서 생명체를 암시하는 유기적 추상 못지않게 직선이 강조된 형태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의 목조작품 중에서 비균제(asymmetry)에 바탕을 둔 구조적 작품이 많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 속에는 단순성과 함께 다면체적 구조가 공존한다. 자연으로부터 추출한 것이지만 형상에 종속되지 않고 그 자체로 자족적인 형태를 구성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의식과 이념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목조는 석조와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그의 목조작품에는 강직하면서도 부드럽고, 냉철하면서 온화한 특징이 잘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김종영미술관이 개관 이후 젊은 조각가를 초대하여 개최하는 첫 번째 기획전을 굳이 "나무로부터"로 정한 것도 김종영 선생의 목조작품에서 볼 수 있는 순수조형의지와 더불어 나무에서 형태를 찾고자 한 그의 뜻이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에게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물론 이 전시에 참가하는 네 명의 작가들이 제작한 작품은 김종영의 작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필자로서는 이들이 김종영에게 영향을 받거나 혹은 그의 작품을 의식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김종영이 추구했던 정신이 나무란 물질을 다루는 작가들에게 여전히 살아있는지, 형태의 본질을 천착하고자 한 그의 태도가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이 전시의 목적이 있다. 이 전시를 조직하면서 일관되게 나무작업에 매진해온 많은 작가들의 작업에 대해 분석한 결과 김종영미술관이 수용할 수 있는 적정한 규모와 작업의 비범한 의미와 질적 수준 등을 고려하여 네 명의 작가를 초대하게 되었다. 이 네 명의 작가는 모두 나무를 단순히 재료로서만이 아니라 내용을 담지한 매체로 활용해온 작가들이며 각자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구축하고 있는 조각가들이란 점을 중시했다. 단지 재료의 차원에서 나무를 주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시명칭도 "나무로부터"로 정했다. 즉 나무로부터 출발하고 있으나 꼭 나무란 물질에 한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나무로부터 형태와 개념이란 하위개념을 추출할 수 있었고, 이 두 개념이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개체 속에서 녹아든 작품을 전시하고자 한 것이다.
김종영미술관은 이 전시를 통해 김종영 선생이 생전에 추구했던 형태의 본질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설치, 영상, 미디어가 압도하는 현대미술에서 조각이란 전통적인 장르가 점차 위축되고 있는 현실에서 나무를 자르고 깎는 고단한 노동 역시 기피되고 있는 바 이 전시가 개념과 의도 못지않게 노동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여기 초대된 네 명의 작가들은 각자 자기의 고유한 세계를 갖고 있으나, 전통적인 조각 작업에 충실하게 헌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종영미술관으로서 응당 주목해야 할 작가임에 분명하다. ■ 최태만
Vol.20030922a | 나무로부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