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_0723 ▶ 2003_0729
인사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Tel. 02_735_2655
2003_0822 ▶ 2003_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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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숙의 작품 주제는 인간의 내면세계이다. ● 미술이 탄생한 이래로 가장 오래 동안 지속된 주제가 바로 인간이기도 하지만, 현대인 역시 인간의 문제를 꾸준히 연구하며 매우 복잡하고 심층적인 인간학을 발전시켜 가고 있다. 김동숙의 조각은 이러한 인간학적 해석을 예술로 표현함으로써 그 조형적 맛의 깊이를 한층 부추긴다. ● 그는 현대 심리학으로 해석된 인간의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했는데 그 수법이 기발하다. 그 수법이란 음각과 양각을 적절히 결합한 것으로, 인체의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드러내고 한 신체의 속 모습을 다른 신체로 대치시키는 일종의 이중적 투명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조각의 속은 꽉 차고 그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데 특징을 두었으며, 그 내부는 보이지 않는 신비의 영역으로 묻어 두었던 것이다. 조각의 미덕은 겉으로 드러난 외형구조의 아름다움을 창출하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 그러나 우리의 욕구는 그러한 외형의 형식미가 주는 감각적 즐거움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또 다른 진실을 알고자하는- 지적 쾌감을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를 해부하고 우리의 심리와 정신, 무의식이 분석된 입체구조를 보면서 만족해한다. 그리고 이런 사상은 우리의 의식 밑바닥에 깔린 음부의 실체를 조명하고 인간을 더욱 진지하게 표현해 보려는 예술 충동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 김동숙의 작품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조형적으로 딱 들어지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 방법은 음각과 양각을 절묘하게 결합하는 것이다. 그는 음각과 양각의 독특한 결합으로 인간의식의 심층구조를 드러내고 음각을 양각처럼 묘사함으로써 속과 겉을 혼동할 지경에 갖다 놓는다. 그러나 거기서 우리는 예상하지 못했던 이면의 실상을 발견하게되고 이면과 표면의 진실게임에 빠져드는 것이다. 음각 부분은 마음에 새겨진 이면의 실상으로 투사된 듯 우리의 시선을 끌며 네거티브 공간에서 어른거린다.
「체취」라는 작품은 한 남자를 조각한 듯하지만 사실상 남녀가 한 쌍을 이룬 커플 조각상이다. 한 남자의 외투를 열어제치고, 그의 속살을 모두 빼낸 빈 껍데기 속에는 뜻하지 않게도 그를 포옹하는 한 여인이 들어있다. 그녀는 분명히 음각으로 새겨졌는데도 도톰하게 살이 붙었고 웅덩이처럼 깊게 패인 배와 가슴도 불룩하게 솟아올라 보인다. 하나로 합쳐진 그들은 분명 살이 섞이는 장면으로 성 관계를 연상시키는데 그것은 우리의 무의식에 성적 결핍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 「기억속에는」이란 작품에서도 그의 겉모습은 남자지만 속은 여자이다. 뇌가 빠져 나온 남자의 머리 내피에는 그가 의식하는 여인상이 조각되어있다. 여기서 그가 기억하는 것은 바로 자기의 다른 반쪽인 여인상인 것이다. 「그리움」에서는 키스하는 남자가 상대방 여인의 얼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하다. 그들은 둘로 나뉜 나머지 반쪽을 그리워하며 본래 하나였던 자신들의 주체를 희구한다. 이러한 심리 분석적 진실들이 네거티브 공간과 포지티브 공간의 긴밀한 공조로 누설된다. 이면과 표면을 사이에 두고 존재와 부재를 들락거리며 경험하게 되는 역설적 공간체험... 이런 공간 창출의 재치가 뜻밖의 조각적 효과를 증폭시키는 것이다. ● 「또 하나의 나」에서는 자기를 흉내내는 또 하나의 자기를 바라본다. 그는 거울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 같지만 어딘가 일그러져 있다. 자신 속에 또 다른 자신을 새겨 놓는 것이 그의 조형방식이며 또한 그의 미학이다. 두 개의 자신을 놓고 누가 진정한 주체인지를 묻는 철학적 문제가 담겨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들은 그의 작품주제가 인간의 내면세계에 있음을 알게 해주는데 이런 도정을 통해 그의 조각은 인체라는 단순하고 구체적인 테마에서 출발하여 인간이라는 복잡하고 추상적인 테마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심리에 새겨진 깊은 진실을 끄집어내는 데서 남다른 창의력을 발휘하게 된다. ● 「자정에서 새벽까지」에서도 그의 주제는 일관되어 나타난다. 남녀의 조각상이 두 벽에 조각됐는데 그들은 벽의 모서리에 갈라서 있지만 서로 다른 한 몸이란 것을 암시하고 있다. 뒷모습을 보이며 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인은 남자로 변신되어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본다. 여인은 음각으로, 남자는 양각으로 만들어졌다. 그들이 차지한 두 벽은 시간의 벽이기도 하지만 의식의 벽이기도 하다. 의식의 허물을 뚫고 들어간 그녀는 무의식의 터널을 지난 후 젊은 신사로 탈바꿈한다. '자정부터 새벽까지'라는 명제에서 암시하듯 그 시간대는 가장 깊은 밤을 말하며 그 시점은 또한 무의식으로 접어들 수 있는 깊은 잠에 빠지는 시간이다. 자정의 시간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인은 벽을 뚫었고 새벽을 밀고 나오는 남자는 벽 밖으로 돌출 됐는데 그들은 서로의 결핍증을 느끼며 의식의 벽에 박혀있는 것이다.
특히 네거티브 공간에 대한 그의 새로운 조각적 해석은 초현실주의 조각을 한층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의 조각적 공간은 내면의 어둠과 상상력으로 채워지지만 그 어둠의 공간은 빛의 두께에 따라 흐릿하게 실체를 나타낸다. 그가 만든 형상들에는 항상 어떤 이중성이 내재해 있고 그것은 거울놀이에서처럼 거꾸로 반영된 일류전과 관계한다. 이러한 전략이 흑색거울 같은 환상적 공간을 도출해내는 동시에 심리적인 공간 이미지를 살려내는 것이고, 여기에서 그의 독보적 감각이 돋보이는 것이다. ■ 윤익영
Vol.20030822a | 김동숙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