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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729_화요일_05:00pm
참여작가 권용래_권여현_박득춘_유지훈_이탈_장우석 문경원_홍지윤_홍지연_조습_정인엽_김창겸
경기문화재단 전시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1116-1번지 Tel. 031_231_7228
파편화된 이성의 상승작용; 이질성의 공유와 예술작품의 개방성을 향하여 ● 20세기 이후 항상 현대미술의 논의에서 일상생활의 개념이 강조되어 왔다. 이는 미술의 본래적인 출발점이 종교적인 의식과 관련이 있다는 전제와 더불어 그동안 인간의 역사에서 미술이 일반적 대중의 삶과는 다른 영역의 활동이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이후로 작가들에 의해 창조된 예술적 결과물들, 즉 미술작품들은 의미의 유무와 관계없이 이미 실험과 새로운 삶의 지표들에 대한 반응의 형식으로 표현되기 시작하였고, 지고한 정신과 초월적인 상태를 재현(represent)하려 하는 모방적 성격의 원형에서 벗어나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려는 강한 경향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라캉은 ?실재적인 것?은 인간의 노력과는 달리 상징화를 거부하거나 혹은 상징화의 본질적인 불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삶이 의미의 창조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런 인간의 노력을 통해 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들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일 뿐이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적 삶의 일상과 실재의 지표들은 범주적인 노력을 통해 정해지거나 하는 형식적인 것들이 아니고 오히려 직관적으로 느껴지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이번 전시는 관객에게 미술의 새로운 의미를 어떤 방식으로 전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해준다. 여기서 이번 기획전시의 의도를 대중성이라든지 혹은 좀더 관객과 가까이 다가가는 미술이라는 말을 통해 설명한다는 것은 실재와 관객의 관계를 상식적으로 규정함으로서 예술작품과 인간 지각작용의 관계를 너무나도 단순하고 소박한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경우가 될 것이다. ● 전통은 인간의 삶 속에서 합의된 특정한 규칙들의 보편적 실현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전통은 의미와 무의미의 차원을 넘어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우리 삶의 보편적인 질서로 작용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서양에서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대량생산의 산업구조가 일반화된 20세기 중반 이후, 개인 이성의 보편화 가능성과 보편적 이성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탄생한 모더니즘적 세계관의 붕괴와 더불어 새로운 인식의 지평이 열리기 시작한다. 이것을 사람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말하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은 그동안 서로 융화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개념들과 현실들이 새로운 상승작용을 통해 이질성을 서로 공유하고 그 안에서 서로 공존하는 구조로 변화되는 것이었다. 이런 이질성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구성되는 인식의 지표들은 20세기 말로 진행되는 시간 속에서 더욱 많은 사회적 변화들을 가속시켜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삶의 지평과 물질의 지평을 하나의 포괄적인 상황으로 제시한다. 예술적인 시각에서 볼 때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주목할만한 현상은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결합이라 말할 수 있다. 회화와 조각 등 기존의 전통적인 예술이 그동안 대중들 삶의 지평에서 유리된 소수의 계급 구성원들을 위한 고급 오락이었다. 그러나 익명적인 다수의 활동과 관계있는 구성의 단순함과 오락적인 특성이 강조되는 대중예술은 대중들의 취미와 세계관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생활 속에서의 자족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는 원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대부분 멸시당하고 무시당해 왔다. 그러나 사실 대중예술이 오히려 우리 인간의 일상적 삶의 다양한 활동을 포괄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중 취미는 포스트모던적 개방성의 근거를 형성한다.
이번 전시 『Mix & Match』는 현재 한국 미술의 혼합적인 양상 자체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수용하고자 하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고 특히 1990년대 이후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해석되고 있는 미술 언어들에 대한 반성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회화나 조각 등 전통적인 매체를 중심으로 생산의 영역을 유지해오던 미술은 미디어와 여타 기술매체를 수용하여 표현을 확장하고 있다. 오히려 전통적 관점에서의 장르의 구분은 인간을 피부색에 의해 차별하는 것만큼이나 유치하고 비상식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관객은 전시의 제목과 관련하여 그리고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에게서 전통적인 차원에서 추출되는 일관성을 발견하기가 힘들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한국이라는 사회가 내성적인 합리성을 기반으로 파악하기 힘들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 작품에서도 다양한 양태들 자체가 넓은 의미에서의 시회의 축을 구성하는 주요한 물질적, 정신적 표상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라캉의 말을 빌린다면 실재는 상징화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와 문화의 이런 혼합적으로 관찰되는 양상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들인가. 사실 어떤 대상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는 노력의 저변에는 그 목표가 되는 대상의 속성이 내적인 자체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시간적 존재인 인간이 자신과의 유사성을 기반으로 대상으로부터 어떤 의미나 생산성을 발견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적 양상 자체가 인간들에게 요구하는 의식은 의미보다는 의미를 포괄하고 있는 패러다임과 같은 범주적 속성들일 것이다. 상징화될 수 없는 실재는 실재로서 존재하는 것일 뿐 형식화 혹은 상징화 되는 순간 실재로서의 속성을, 삶의 다양성 자체를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서의 자체적인 구조를 상실한다는 의미이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문화의 혼성적인 경향은 혼합과 혼합 속에서 존재의 어울림으로 나타나는 현실이다. 사실 단순한 송수신의 기계 정보 시대에서 서로의 의견과 표현적인 속성을 포괄하는 영상 기반의 상호작용적 인터페이스의 탄생은 정보 교환 기술이 인간의 지각작용을 닮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고 또한 이런 방향의 사회적, 기술적 변화는 인간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인간 인식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미술로 수용된 이런 기술 매체의 근본 속성인 비물질적 존재성은 관객들에게 예술작품으로부터 감동보다는 가정된(simulated) '어떤' 효과를 전달한다. 이런 면에서 현재 목격하고 있는 많은 작품들에서 우리는 오히려 독일의 예술이론가 벤야민이 사진의 발명 이후 기계복제 시대의 도래로 인해 예술작품이 상실하게 되었다는 아우라(aura)와 고유성(authenticity)의 원형적인 현현(prototypal manifestation)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이런 비물질적 특성은 본래 삶의 정신적 차원에 대한 기술을 언급해 왔던 예술의 기원과 관계있는 것으로 오히려 새로운 문화적 동력을 통해 예술의 본질을 다시 한번 반추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혼합과 조화는 분명 새로운 문명의 방향성과 관련이 있다. 우리에게 새로운 문명은 삶의 통속함과 비속성을 외면하는 소위 '미덕'보다는 그동안 무시되어 왔던 우리 삶의 직접적인 환경적 요소들을 순화시키는 기능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이것은 문화적 시각의 변화가 우리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내용을 형성시켜 준다는 의미이다. 현대미술은 매체의 제한을 벗어나 비물질적 속성을 통해 물질적 한계를 노정시킴으로서 오히려 예술의 본질로 다가간다. 이번 전시의 의미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예술형식, 상이한 범주의 혼합, 차별성의 차원에서 생산되는 의미의 혼재는 관객에게 좀더 확장된 패러다임 안에서 예술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우리는 예술가와 예술작품이 역사의 매순간마다 인간 삶과 역사의 계기들을 구성하는 의미의 구조틀을 만들어내는 생산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정용도
Vol.20030728a | Mix & Match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