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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709_수요일_05:00pm
조흥갤러리 서울 중구 태평로1가 62-12번지 조흥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02_722_8493
인간적인 정원_Ein Garten des Menschlichen ● 백기영의 비디오작업 「비오는 정원(Der Regnender Garten)」은 그의 독일유학 마지막 시기에 탄생했다. 이 작업은 독일에 살고있는 한국인으로서 그가 제작한 마지막 작품이다. 그러므로 그가 70년대에 광부로 독일로 건너와 독일에서 제2의 고향을 발견하고 만들어가고 있는 한 동향인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백기영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이러한 연관관계에 있는 "디아스포라(Diaspora)1)"의 개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래적으로 종교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지는 디아스포라의 개념은 백기영의 작업 속에서 한 개인의 삶의 이야기를 넘어서서 그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메라 속에 담겨진 소박한 영상언어와 꾸밈없는 단순한 설명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작업은 진솔한 기록적인 원음을 창조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인식의 매개변수 위에 있는 -편견 없는 청종과 시청의- 배기종과 같은 것이다. 그의 카메라는 수많은 색깔의 꽃들과, 덤불, 초록으로 뒤덮인 나무들 사이를 배회한다. 자유롭고 인위적으로 정돈되지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조화를 이루며 변화무쌍하게 서로 뒤섞여 얽혀있는 그 정원 속으로 말이다. 자연스럽게 자란 인상적이고도 아름다운 정원의 풍경 위로 영상의 단면들은 특별한 주의 없이 지치지않고 흔들린다.
반시간짜리 필름이 돌아가는 동안 차차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작품의 배경에 깔린 자연스러우면서도 성급하지 않은 목소리는 오랜 세월동안 이 작은 파라다이스를 자신의 잃어버린 고국의 고향과 동일시해왔고 자신의 잃어버린 고향을 독일의 광산촌에 재 창조하고자 해 왔던 한 한국인 정원지기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눈과 귀로, 주시하고 청종하다 보면, 아주 천천히 그리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 고도로 섬세한 시적인 대화 속에서 고향에 대한 상실감과 자신의 고향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단순하면서도 그러나 분명 영상으로 제작된 각본 속에서 말이다.
검소하고도 절제된 영상 수단을 사용해 한국인의 정원에 잘 조화를 이루게끔 제작이 된 백기영의 작업은 인간의 가장 깊숙이에 자리한 토포스를 다층으로, 자발적으로 열어젖힌 연상의 공간을 철학적으로 영적으로 확장 시킨다. 그 정원과 그 안에서 함께 교착되어진 한 이방인의 인생사, 스스로 자신만의 새로운 고향을 관상용 식물들에서 창조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인간 존재의 한계 상황을 정확히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 고향의 상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상실이며 또한 급속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의 상실인 것이다. 한편 수천년의 오랜 전통을 가졌고, 다른 한편 엄청난 기술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한국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아주 특별하게 두드러진다. 그래서 더욱 백기영의 꽃이 만발한 정원작업은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그것도 독일 루어지방의 한 도시에서 희망찬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루어지방은 예전에 과도한 산업화와 그로 인해 더렵혀진 도시들, 그리고 양차 세계대전에 격전을 펼쳤던 인구와 공장의 밀집지구로 유명했다. 그러던 곳이 채광과 중공업이 끝나고 다시금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여 자연 친화적인 면들이 새롭게 개발되어진 것이다.
한 인간 혹은 한 인간의 사회가 얼마나 자신의 본래의 뿌리에서 멀리 떨어졌던지 간에, 그리고 그 뿌리 뽑힘으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깊던지 간에 인간의 창조적 본성은 재 창조의 힘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모든이들 속에 "디아스포라"로서 살아있는 것 같다. 한 때 소수의 종교적 사회들이 세계로 흩어짐으로서 자신들의 독자적인 생동성과 고귀함을 보존하고자 시도하였던 것이 오늘날에는 전 인류에게 그들의 사회 경제적 그리고 생태계의 재난의 파편들 속에서 삶의 새로운 섬을 만들어내라고 요구한다. 그들 고유의 존귀함이 새롭게 생동하도록 말이다. 이러한 발견과 스스로에 의한 복원의 과정은 넓은 의미에서 그리 두렵기만 한것은 아니다. 그것이 자신의 전통으로의 회귀나 자기 안으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백기영의 작업 "인간적인 정원"은 이러한 맥락에서 독자적인 시적, 철학적 의미를 지닌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광산촌들과 특히 광부들을 위한 작은 정원문화로 유명하다. 하루의 상당한 시간을 탄광 속에서 힘겨운 일을 했어야만 했던 광부들에게 있어서 작은 땅덩어리의 푸른 정원은 그만큼 더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 한국인 광부의 정원도 아주 자연스럽게 독일 광부들의 정원들 사이에 자리하게 되었고 그 곳에 모든 한계를 초월한 인간적인 표시를 두었던 것이다. ●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쓴 흔적 없이 백기영의 영상은 자연스럽게 메타포를 열어간다. 그렇게 그의 영상 속 정원에는 잠시 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비가 내린다. 바로 그 시점, 청중은 이미 그 정원지기의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어린시절의 그 곳과 전통적인 조상들의 숭배의 장소들에 대한 상실감이 아름다운 정원의 그 평화스러운 장면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진다. 때마침 부드러운 비가 내린다. 마치 회상의 눈물과 동시에 영혼의 재창조를 위한 치료의 손길, 둘 다를 의미하듯 말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여기에 숨겨진 비밀은 내적 상실감이 외부적 모습 속에서 치환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그 한국인 광부에게 있어서는, 그가 그의 깊은 내적 감정을 가꾸는 바로 그의 정원으로 말이다. 그럼으로써 이 "정원지기일"은 일반적인 예술과의 교량 역할을 하게 된다. 모든 예술적 발견의 과정들은 상실감들과 새로 얻고자 하는 파라다이스들을 향한 이상을 내포하고 있듯이 말이다. ● 모든 예술작품은 작가 스스로가 그리워하는, 작가 스스로에 의해 정돈된, 그리고 작가 스스로가 진실임을 확증하는 내재적으로 구성된 이상향에 근원 한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힘은 예술가가 어떤 예술 이론이나 또는 지적 반성들 속에서 끌어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내재적이고도 자명한 능력에서 나오며 인간으로서의 고귀함으로부터 출발한다. ■ 안드레아스 쾨프닉_Andreas Koepnick / 번역_김희경
1) 디아스포라(Diaspora)는 본래 그리스어로 "여러 곳에 산재하는 신"을 지칭했다. 이 종교적인 뜻을 지닌 단어는 후에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한 민족이지만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로 바뀌었고, 오늘날 민족간의 교류가 많고 이주와 이민으로 혼성적인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시대에는 어느 민족이나 "디아스포라"라고 할 정도로 그 뜻이 확대되어 사용되고 있다.
Vol.20030712b | 백기영 영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