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보내는 편지

이준희 회화展   2003_0709 ▶ 2003_0721

이준희_꽃으로 보내는 편지_한지에 혼합재료_60×70cm_200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마로니에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3_0709_수요일_06:00pm

마로니에미술관 소갤러리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602

작가 이준희의 작업은 화훼류를 중심으로 한 조형 작업들이다. 작업은 골판지와 같은 요철이 있는 색지들을 찢어 부쳐가며 그 형상을 구축해 나아감으로써 점차 완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색적이고 일견 도발적인 표현 방식은 그것이 이루어내는 강렬한 시각적 효과와 조형적 짜임새를 통해 보는 이에게 일반적인 회화 작품과는 다른 강렬하고 깊은 인상을 각인하고 있다. 파괴적인 실험 작업들이 일상화 되어 버린 오늘의 현실에서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조형 방식이 굳이 파괴적인 것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작가의 작업은 기성의 한국 회화가 지니고 있던 심미적 덕목의 일정 부분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개별적인 감성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출해 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준희_사랑을 꿈꾸다..._한지에 혼합재료_60×60cm_2003

화훼류는 산수와 더불어 자연 자체가 독립적으로 예술의 표현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장르로, 그 표현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일정한 양식적 전형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근자에도 화훼를 소재로 하는 작업들이 적지 않게 진행되고 있지만, 대부분은 바로 이러한 전형에 충실한 고전적인 화훼 표현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작가의 작업이 흥미를 끄는 것은 바로 작업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는 고전적 전형을 수용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발현되고 있는 독특하고 개성 있는 새로운 조형의 묘라 할 것이다.

이준희_한번쯤 올려다 본다_한지에 혼합재료_40×40cm_2003

작가의 작업은 일정한 과정을 거쳐 오늘의 면모를 이루고 있다. 초기의 전통적 채색 기법을 바탕으로 한 인물 작업들에서 비롯하여 점차 과장과 외곡이 더해지는 변형된 인물 표현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은 대상과 매제에 대한 학습과 이해가 전제된 것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매제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는 이 시기의 작업들은 다분히 전통적인 원칙을 수용하고 있지만 재료와 표현에 대하여 경직된 이해가 아닌, 상대적으로 분방한 수용 입장을 보임으로써 이미 새로운 조형에 대한 일련의 예시적 조짐들을 보여주고 있다. 분채, 석채와 같은 재료적 성질과 인물을 통한 특정한 이미지의 표출에 몰입되었던 작가의 작업은 90년대 후반에 들어 기억될만한 변화의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꽃과 그 이미지를 과감하게 화면 전면에 도입함으로써 이미지를 구체화하고 이를 통하여 새로운 공간 경영의 묘를 선보이는 것이다. 현재의 작업에까지 원용되고 있는 이러한 조형 방식은 거친 듯 분방한 필촉들과 절제된 형상미를 통하여 이전의 작업들과는 다른 새로운 조형의 틀을 구축하고 있다.

이준희_나에게로 들어온 하얀목련_종이박스에 혼합재료_85×92cm_2003

기법상 채색과 수묵을 적절히 혼용하고 색면들과 필선들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조형작업들은 비록 이미지의 구체화, 여백 운용의 효율성을 강조한 것이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심미 덕목과 일정 부분 연계 되어 있는 절충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채색의 기법적 활용은 물론이거니와 수묵을 도입하여 화면 전반에 특정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표현의 대상이 되는 꽃의 생태적 특징 표출에 집착하는 경향 등은 작가의 작업이 여전히 새로운 조형에서 충분히 자유롭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것과 이미 익숙한 안정적인 것 사이에서의 갈등과 고민은 새로운 방법을 모색케 하고, 그 결과 바로 오늘의 골판지를 이용한 파격적인 조형을 이끌어 내게 한 원인이었다라고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준희_gmqtk 꽃망울이 터지듯..._종이박스에 혼합재료_85×92cm_2003

사실 작가의 색지 작업들은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이기는 하지만 생경하거나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지니고 있는 조형적 특성으로 인하여 이전의 작업들에 비하여 더욱 강한 인상으로 각인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는 작가가 채택한 새로운 조형의 수용 방식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작가는 파격적인 실험적 양태의 작업들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전통적인 회화적 공간에 수용하는 점진적이며 절충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비록 골판지와 같이 두께가 있는 색지들로 꽃들의 형상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모필이 종이와 어울려 이루어내는 전통적인 운필의 묘를 수용하고 있으며, 공간 역시 여백의 기능성을 십분 살린 것이다. 이로써 작가의 화면은 비록 표현의 매제는 이질적인 것으로 전환되었지만 그것이 지니고 있는 심미적 바탕과 감상 체계의 틀은 여전히 이미 익숙한 전통적 감성과의 일정한 연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작가의 작업이 전혀 새로운 조형 방식을 도입한 파격적인 것이지만 생경하거나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는 작가의 새로운 조형 작업이 지니고 있는 장점이자 새로운 과제의 발단이라 할 것이다.

이준희_꽃으로 물들이다_한지에 혼합재료_92×115cm_2003

두께가 있는 색지를 이용한 형상의 구축은 모필을 이용한 전통적인 채색기법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한 조형을 이루어낸다. 일견 투박하게 보이는 줄기는 마치 땅이나 바위에 막대기로 세긴 듯 둔중한 무게가 있는 것이며, 특히 동백꽃과 같이 붉은 색면으로 처리 된 꽃잎의 색감은 원초적인 강렬함이 있는 것이다. 상자와 같이 비정형적인 거친 화면의 바탕은 오히려 이러한 강한 개성을 수용함에 있어서 효과적인 것이다. 더불어 기성 인쇄물의 문자 등과 같은 내용들 역시 잘 어우러져 하나의 조형 요소로 활용되며 화면의 단조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훌륭한 요소로 제 기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할 것이다. 사실 색지를 이용한 형상 이미지의 구축은 단조로와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손을 이용하여 찢고 오리는 과정을 통하여 생겨나는 불규칙한 윤곽선과 색면 특유의 장식적인 효과는 화면에 독특한 묘미를 제공해 주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화면에 다양한 표정을 연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작가가 화면에 먹과 색채를 이용한 또 다른 이미지들을 동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자구 노력이라 할 것이다.

이준희_비오는 날의 사랑_한지에 혼합재료_130×160cm_2003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은 파격적인 새로운 작업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것이며 보수적인 것으로, 이들 간에 여하히 조화와 균형을 이룰 것인가 하는 점이 바로 작가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만약 이러한 문제가 효과적으로 해결되지 못한다면 화면의 먹과 채색들은 사족과 같은 것이 될 것이며, 오히려 새로운 조형 양식들을 저해하는 역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작가의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업에 기대를 걸게 하는 것은 작가의 조형 작업이 다른 이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발현되고 있는 정서와 감상 때문일 것이다. 굳이 전통적인 것의 부정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드러내려 하지 않으며, 실험 자체에 구속되어 본질을 잃어버리는 우를 극복하며 익히 익숙하고 정감어린 정서의 일단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는 작가의 작업은 그래서 더욱 친근하고 소중한 것이라 여겨진다. ■ 김상철

Vol.20030710a | 이준희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