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rcle for circle

책임기획_서진석_김창조   2003_0621 ▶ 2003_0711

권오상_Love forever_컬러인화지 혼합재료_165×40×40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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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627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_권오상_고낙범_김기라_이중근_정연두

갤러리 피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1층 Tel. 02_730_3280

영화가 지닌 수천 개의 표면을 위하여."표면들이 수천 개의 면을 가진 곤충의 눈들 속에 존재한다고 상상함으로써, 모든 표면들은 분할되고, 잘라 내어지고, 해체되고, 부서진다." 엡스땡(jean epstein)의 페르낭 레제에 대한 글 중에서 ● 미술과 영화가 만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영화가 발명된 이래로 미술과 영화의 만남은 그리 새로운 사건만은 아니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직접 영화를 제작하거나 영화적인 요소를 도입한 작업을 통해 영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요소들을 실험하고 확장시켜왔다. ● 만 레이의 '이성의로의 회귀(return to reason, 1923)이나 페르낭 레제의 '기계적 발레(le ballet mecanique, 1924), 구이 부뉘엘의 '황금시대(l'age d'or, 1930, 살바도르 달리와 공동제작) 등에서는 추상미술, 큐비즘, 콜라쥬 기법 모두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식적 영향관계는 에이젠슈체인의 많은 부분 큐비즘의 파편적 형태에 빚지고 있는 다양한 카메라 앵글과 세련된 몽타주 편집에서도 볼 수 있다. 대략 40여 편 정도가 제작된 플럭서스 영화는 주류영화뿐 아니라 아방가르드 영화까지 비판 대상으로 삼았지만, 그 단순성과 유희성으로 영화제작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앤디 워홀은 1963년과 1968년 사이에 60여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며 많은 수가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고전이 되었다.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비디오 미술과 설치미술, 퍼포먼스 등 현대미술의 수많은 작가들이 이미지와 재현, 시간성 등에 관한 접근방식에서 영화와 다양한 영향을 주고 받아왔다.

정연두_"내사랑 지니" 연작(2001~)_200×156cm×2_2003_부분

그러나 문화의 전 영역과 과학기술로부터 받은 풍부한 자양분을 토대로 영화는 전 세계적인 차원의 거대 문화산업으로 성장하였고 이제 제예술간 상호 영향관계의 국면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계라 불리는 지금, 매스미디어 이미지의 중요한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대중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영화적 이미지는 다른 분야 예술의 고유한 영역을 위협하는 지배적인 이미지 환경을 형성하고 있다. 미술을 비롯한 다른 분야의 예술이 점차 협소해진 고유한 자기영역에서 생산해 내는 새로운 이미지는 일단 대중성의 검증을 거친 뒤에 곧바로 매스미디어와 영화적 이미지로 흡수되어 재생산된다. 이른바 이미지의 식민주의라 볼 수 있는 이러한 영화의 영토화 또는 코드화는 헐리우드와 파시즘으로 대표된다. 영화 스스로 이로부터 탈주하려는 시도가 지속되어 왔지만 그러한 탈주 또한 재흡수되어 자기 영토화로 복귀되어진다. 이제 미술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러한 영화적 이미지와의 관계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존재하기 힘들다.

이중근_보물찾기(강수연)_디지털프린팅, 천제작, 의상제작_240×117cm_2003

두 가지 전략이 제시될 수 있다. 하나는 아직 남겨진 미술 고유의 영역을 모색하는 것이다. 기존의 미술이 생산해낸 이미지들이 영화적 이미지에 의해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전략은 또한 미술이 기존의 자기 영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주로 재현체계를 교란시키고 해체하는 작업으로 대표될 수 있는 이러한 전략은 이미지를 본질의 환영 또는 기껏해야 그 반영으로 보는 고전 미학의 이미지관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미지의 미학을 토대로 한다. 이것은 이번 전시가 견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 또 다른 전략과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 ● 또 하나의 전략은 미술과 영화간의 경계를 넘어 두 영역의 영토화를 동시에 교란시키고 해체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동일성에 기초한 미술의 재현체계와 영화 자신의 영토화에 의해 이중으로 억압되어왔던 모사물과 환영을 복권시키려는 차이의 미학의 도전이다. 이를 통해 미술이 처한 재현의 위기로부터 벗어나며, 동시에 영화적 이미지가 스스로 부여한 코드로부터 벗어나 탈영토화의 힘을 회복하게 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 그러나 대체로 이러한 시도가 한계에 부딪치는 지점은 미술과 영화간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제도적, 집단적 거리이다. 이러한 사회적 간극을 좁히지 못한다면 결국 영향력이 약한 하나의 주석과 코멘트로 머물게 된다. 경계를 넘어서는 작업은 일정한 거리 이내로 파고들어 상호 침투하고 간섭하면서 진행되어야 한다.

김기라_엉뚱한 상상을 하다_디비디 프로젝션_00:04:07_2003

이번 전시는 영화 제작사가 스폰서로 후원한 미술전시이다. 간단히 말해서 거대문화산업이 자기 홍보수단으로 순수예술의 아우라를 빌린 것이며, 문화적 종속현상으로 그칠 수도 있는 이벤트이다. 그러나 여기에 틈이 있다. 그 틈은 하나의 미술전시가 하나의 구체적인 영화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며, 작가들이 그 영화가 제작되기 이전에, 그 제작 과정에서 결합하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 영화가 총체적인 자기의 영역을 구축하기 이전에, 날것인 상태로 있는 이미지들-시나리오와 배우들, 아직 편집되지 않은 낱개의 씬(scene)들과 스틸사진들-을 미술 작업에 끌어들임으로써, 최종적으로 상업영화라는 틀 속에서 코드화되어서만 보여질 이미지들이 지닌 본래의 힘, 어디에도 고정되지 않고 끝없이 탈주해 가는 이미지의 힘을 드러낼 수 있다. 또한 영화가 던져주는 '이미지 뒤에 무엇인가 볼만한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칭적으로 '이미지 위에 무엇인가 볼 만한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로 인해 이미지들이 자신을 가두고 있는 단일하고 균질화된 표면의 프레임에서 풀려나 수천 개로 분산되어지는 아름다운 표면으로 만개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결코 문화 종속이 아니라 미술이 새로이 자기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 영역으로 적극적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정한 한계를 부여하는 시스템 내에서 자기영토를 끊임없이 확장하고 갱신하려는 일종의 게임이론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시도 자체가 이번 전시의 전략이다.

고낙범_Out of Blue-Dramatic_112.1×193.9cm×3_2003_부분

『circle for circle』전시의 구성-다섯 작가의 작품론 ● 서클이라는 영화는 미술을 소재로 하고 있다. '서클포서클'전은 서클이라는 영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둘의 관계는 일종의 순환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 순환관계는 '서클' 이라는 타이틀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도 겹쳐져 울림이 커진다. 그러나 동시에 순환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 영화 서클 속에서 소재로 다루어지는 미술은 이번 전시와 연결고리가 없으며 실재로 작품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다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 다루어지는 영화 서클 또한 실재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문맥과 형식으로 새롭게 형상화되고 있다. 이것은 두 분야가 순환되지 않는 지점이며 서로 겹쳐지지 않는 자기영역의 존재 증명이기도 하다. 이렇게 순환하는 것과 순환되지 않는 것, 영토화하는 것과 탈영토화 하는 것을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미술과 영화가 만남 자체에서 제기되는 것이며, 이번 전시의 작품들을 구성하고 있는 포괄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1. 고낙범은 자신의 작업에 지속되어 왔던 모티브와 영화의 모티브를 중첩시켜 일종의 더블 몽타쥬를 그려내고 있다. 캔버스 내부의 흰색 여백과 캔버스 외부의 공간, 그리고 계열화된 컬러는 그의 작업에서 지속되어 오던 모티브이다. 그것은 각각 작가가 영화의 모티브로 해석한 죽음과 시간, 섹슈얼리티에 중층적으로 대입된다. 이는 또한 삼면화와 독립된 한 점의 '3+1'이라는 구성형식 속에 대위법적 변주를 보여주며 다소 복잡하게 장치화된다. 이 장치는 세 개의 그림 속에 자막처럼 들어가 있는 'time kills white'라는 문장의 삼단논법적 전개와 색의 계열적 전개 및 형상-인물 변화의 유기적 관계에 의해 구조화되고 있으며, 이 구조는 또 하나의 그림에 유비적으로 종합된다. ● 마치 영화의 플롯과 같은 이 그림들의 구조는 그러나 거짓 연속성이다. 엄격하게 닫혀있는 듯한 세트들과 그것들의 부분에서 달아나는 열려진 것의 차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림 사이의 흰 벽에 쓰여진 흰색 문자. 그것은 시야-바깥의 다른 권력을, 다른 어떤 곳 또는 텅빈 지대를, 즉 이 '영화에게는 불가능한 백색 위의 백색'을 실현한다. ● 캔버스 내의 고전적이고 강렬한 양식과 그 캔버스를 외부로 열어제치는 흰색 공간의 흰색 문자는 흰색의 필름리더와 프레임 내의 이미지들의 관계를 유비한다. 이에 의해 전체는 다시 한번 영화와 중첩되는 강렬한 메타포를 지니게 된다.

2. 권오상은 '영화 속에 존재하지 않는 장면을 구현했다'라고 작품에 관해 설명한다. 그것은 영화 내러티브의 개략적 개연성을 견지하고 있는 장면이지만, 권오상의 방식으로 재구성되어 있다. 영화 속 캐릭터의 복장을 입고 서있는 배우(정웅인)는 입술에 립스틱 자국이 번져있다. 립스틱 자국은 영화와 개연적 관계를 유지하는 듯 하다. 그러나 그가 신고 있는 아디다스 신발은 그러한 개연성과 별개로 권오상에게서 나온 것이다. 다른 모델에게서 촬영되어 붙여진 신발부분에서 시작된 이 이질감은 서서히 확장되어 립스틱 자국과 죄수복이 형성하고 있던 내적 문맥의 완결성을 수백 개의 사진 조각으로 해체하여 출처를 알 수 없는 인용구로 변화시킨다. 그것은 그만큼 전체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힘이 표피적이었기 때문이다. 시차를 두고 조각난 이미지를 이어 맞추는 편집방식에서 하나의 공간화된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작업은 그러므로 영화의 개연적으로 가능했으나 실현되지 않고 남겨진 부분을 형상화해내는 작업이 아니다. 그는 영화라는 재현체계를 위조해 권오상적 부조리한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영화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그것과 유사하지만 화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그의 작품이 진짜를 위조할수록 그것은 더욱 진짜와 화해할 수 없는 가짜가 되어지며, 그렇게 가짜인 것으로 드러나면 날수록 한층 더 현실의 이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3. 김기라는 영화의 시나리오 텍스트를 조각 내어 섞은 뒤 다시 전혀 다른 스토리로 이어 붙여 4분 정도의 비디오 작업을 보여준다. 새롭게 구성된 스토리는 매우 불완전하고 서로 빗나가는 '말장난'처럼 느껴지도록 의도되어있다. 그러한 면에서 그의 작업은 일종의 패스티쉬라고 할 수 있다. ● 그러나 텍스트의 흐름과는 달리 그에 해당되는 이미지들은 각각의 미장셴과 몽타쥬효과를 통해 또 다른 문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다른 한쪽 스크린에는 해당 영상의 타임기록이 영사된다. 결과적으로 상당히 해독하기 힘든 이중 삼중의 문맥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그의 작업은 감각과 운동을 교란하고, 문맥을 비틀고, 시간을 짜깁기하여, 무수한 상투구들의 억압을 진저리나게 보여준다. 이러한 멀티미디어적인 다중 문맥에 대한 실험적 고찰을 통해 그의 작품은 무수한 상투구들을 탈주시킴으로써 그것들로부터 어떻게 하나의 이미지가 추출될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있다.

4. 이중근은 영화 속의 인물 형상을 모티브로 하여 화려한 패턴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보여준다. 영화의 타이틀인 '서클'의 반복과 윤회의 이미지를 그의 반복적 패턴작업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거리를 두고 보면 추상적인 화려한 문양으로 보이는 패턴들이 다가서면 배우들의 포즈가 반복되고 있는 형상으로 전환되어 두 가지 층위의 형태를 유희적으로 순환시킨다. 네 폭으로 구성되어 있는 그의 작품은 각각 패턴에서 자유 연상되는 이미지인 '부기우기', '국민체조', '보물찾기', '개구리'로 네이밍 되어 각 배우의 캐릭터와 중층을 이루고 있다. 이 중층 구조간의 내적 관련은 모호하고 해석의 여지가 광범위해서, 상대적으로 형상의 유희성이 강조된다. 그러나 요지경적 유희성으로 접근하면 그의 작품은 다시 의미의 중층구조를 살며시 드러낸다. 그런 방식으로 이중근은 유희성과 의미 구조간의 긴장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일종의 현기증을 유도하게 한다. 관객은 작품 앞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며 고정된 자리-일종의 해답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은 하나의 유희적 수수께끼이다. 그의 작업은 또한 같은 패턴의 의상으로 제작되어 해당 배우들에게 입혀짐으로써 자기 상사적 순환의 수수께끼 유희는 이벤트로 확장된다.

5. 정연두 역시 자신의 시리즈물인 '꿈실현 시리즈'의 연장선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스크린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존재하는 배우와 현실 공간에 존재하는 직업적 배우, 그리고 그 배우의 꿈속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배우'가 오버랩 되면서 지금까지의 작업과는 다른 새로운 문맥을 만들어 내고 있다. ● 이 세 가지 다른 범주의 '배우'가 두 장의 사진 속에 함축되면서, 낯선 존재의 친근한 꿈이라는 표면적 구도에 존재하지 않는 또 하나의 사진이 겹쳐진다. 각각 배우로서의 현실과 그가 자신에 대해 가진 또 하나의 꿈을 차분히 재현하고 있는 두 장의 사진에는, 스크린 속에서 재현되는 최정윤이라는 배우가 은밀하게 그러나 집요하게 파고 들어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새롭게 출현한 또 하나의 사진은 '배우'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함축한 이중성으로 인해 두 장의 사진 속에 각각 분유(分有)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재현된 '이미지와 실재/실재와 욕망/욕망과 욕망의 재현'이라는 중첩된 세 가지 대립쌍이 두 장의 사진 속에서 '솟수'적으로 교란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연두의 이번 작업은 가장 미니멀한 구성의 삼면화라고 볼 수 있다. ■ 김창조

Vol.20030701b | circle for circle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