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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강홍구_김기태_김석_김세진_김일용_김종억_노석미_소윤경 손현수_안창홍_염중호_이대일_이부록_이흥덕_장지아 전수현_정원철_정은유_조환_최민화_홍지연 고강철_김경선_김두섭_김상백_김선태_김영철_문승영_민병걸 박호영_안병학_안삼열_이경선_이관용_이기섭_이기준 이용제_장병인_주홍근_최승재
주최_(재)세종문화회관
주관 및 문의_(주)아트컨설팅서울 (주)아트컨설팅서울 서울 종로구 신교동 58-1번지 2층 Tel. 02_723_6277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신관 서울 종로구 세종로 81-3번지 Tel. 02_399_1111
지금으로부터 백년전인 1903년 6월 23일자의 『황성신문』 한 구석에는 이후 우리 나라의 시각 문화와 풍속의 역사에서 큰 전환을 가져오게 될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광고가 실렸습니다. 문헌상으로 확인이 되는 한국 최초의 영화 상영 기록이 될 이 광고는, 한국 최초의 전기 회사였던 한성전기회사가 동대문에 있던 이 회사의 기계창고에서 활동사진 상영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사(自社)의 전차 사업을 선전하기 위해 열렸던 이 행사의 소개는, 당시 설렁탕 한 그릇 값인 동화 십 전의 입장료로 구미 각국의 도시 및 각종 극장의 절경을 보여준다는 내용을 덧붙여 놓고 있습니다.
세계 영화사의 출발로 기록되는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프 상영에서 대중에게 보여졌던 것이, 공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이나 역에 도착하는 열차의 모습 등 기존의 문화 예술 창작이나 여가 생활 범위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짧고 신기한 구경거리에 불과했던 것과 비슷하게, 우리의 영화 감상 경험도 한 회사의 홍보 행사에 심심풀이로 간 나들이의 모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옹색한 자리에서 출발한 영화가 오늘날 문화 예술과 여가 양쪽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굳이 따로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가 느끼는 바 그대로 압도 그 자체입니다. 이를 증거하는 풍경의 하나가 영화를 닮아가는 현실과, 영화적인 눈으로 보고 영화적인 문법으로 말하는 여타 문화 예술 장르의 모습입니다. 이런 현상은 마치 영화가 세상이라는 거울에 비친 것만 같습니다.
영화의 가장 큰 매혹 중 하나가 그것이 다른 어떤 예술 문화 장르보다 직접적이고도 핍진(逼眞)하게 우리 모습을 비추어 온 거울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런 현상은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일분짜리 눈요기감이었던 백여년 전부터, 당당한 하나의 예술 장르인 동시에 산업의 한 분야가 되어 그 안에 우리의 현실과 꿈 혹은 환상과 철학까지를 담아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오늘날까지, 영화는 늘 세상을 향해 반짝이는 은빛 거울로서 세계를 반영하고 꿈을 채색해왔으니까요.
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했던 나르시스의 신화나, 방의 벽을 거울로 도배하고 성장(盛裝)을 한 자신들의 모습에 넋을 빼앗겼던 17세기 유럽의 궁정 문화가 알려주듯이, 영화 이전에도 인간은 무언가가 비쳐지는 물질에 거의 본능적인 호기심과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영화라는 거울은 단순히 우리 모습이 비쳐 보이는 유리 거울과는 달랐습니다. 우리가 아침마다 우리 얼굴을 비추어 보는 거울은 백설공주 계모가 보던 거울처럼 혹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거짓말을 하지 못합니다. 영화는 다릅니다. 거울은 우리의 소망이나 바람과는 무관한 현실의 외관(外觀)만을 있는 그대로 비출 뿐입니다. 거울은 외로운 사람의 벗이 되기도 하지만, 거기서 우리는 공감이나 너그러움 혹은 기지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는 다릅니다. 현재밖에 없는 거울 속에서는 그립게 지나가버린 시절의 우리 모습과 그 생활의 자취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라는 거울은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영화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눈인 동시에 거울이었습니다. 특히 시인이나 화가와 같은 예술가는 사물을 더 밝게 보는 눈인 동시에, 세계를 향한 더 맑은 거울이었습니다. 극단적으로 팝 아트 이후 많은 현대미술은 거울처럼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않고, 세상을 거울처럼 말갛게 그저 비춰내기만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 너머나 그 뒤, 그 안에 아무 것도 없는, 표면과 주제가 달라붙은 한 겹의 얇은 이미지로 말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사람과 세계는 있는 그대로의 존재인 동시에, 조금도 덜하지 않은 무게로, 보이는 그대로인 외관이기도 한 까닭에, 더구나 우리는 시각 이미지가 다른 감각을 압도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보여지기 때문에 존재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현대인인 까닭에, 보이는 것을, 외관의 아름다움을, 단지 피부 한 겹의 문제로 무시해 버리거나, 이런 정황을 그 속성으로 체득한 얇은 미술의 매력을 쉽게 거부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전시는 기억을 가진 특별한 거울인 영화가 백년 동안 세상을 비추어내며 우리에게 보여준 영상과, 그것을 바라보고 반영했던 우리 사회라는 거울에 비쳤던 그 영상을, 미술이라는 또 다른 거울로 비추어 보기 위한 자리입니다. 시각 이미지라는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여 영화와 서로 막대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남다른 친연성을 견지해 온 미술은, 지난 백년의 우리 영화 체험을 남보다 앞서 조망하고 반영할 수 있는 유리한 거울의 위치를 부여받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입니다.
전시장에서는 회화, 조각, 판화, 사진, 비디오아트, 설치 미술 분야에서 매체의 관습이나 한계에 구속되지 않는 독특한(idiosyncratic) 눈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마흔 명의 작가가, 저마다 다른 굴절도를 가진 자신만의 거울면에, 영화와 영화를 보아온 우리를 비추어 여러 겹의 기억과 반영의 층위를 가진 만화경을 만들었습니다. 현대 시각 문화 풍경을 주도적으로 만들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지난 백년 우리 사는 거리 풍경에서 뺄 수 없는 구성 요소였던 영화 포스터 형식의 거울을 보탰습니다. 기획팀이 전시장 기둥과 벽면을 사용해 설치한 텍스트와 이미지 자료들은 지난 백년의 영화와 풍속에 관련된 사실들을 되짚어 볼 수 있게 하는 기억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입니다.
출품작에서 보이는 영화와 미술의 관계는 순수하고 직접적인 오마주(homage)에서부터 무의식적인 동화, 암시적인 애증병존에 이르는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져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꿈, 이미지와 이미지의 반영과 재반영이 교차되는 이 전시장의 공간을 거니는 것은, 영화를 매개로 우리의 지난 시간을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또 영화가 이땅에서 상영된 지 백년이 지나, 이제 영화 없이는 여가를 생각하기 어렵게 된 오늘날, 상투성을 벗어난 자기만의 눈으로 영화를 보는 방법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나아가 현대와 같은 문화 환경에서 미술을 비롯한 예술의 각 장르가 갖는 독자성 및 상호 연관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바람직한 모양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생각거리도 얻어 가지고 나오는 자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 만화경을 구성하는 각각의 거울은 그 너머나 그 안이나 그 뒤에 아무것도 없는 얇은 한 겹의 이미지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들이 교차 · 중첩하여 만들어내는 풍경에서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새로운 모습으로 기억해 내고, 혹 눈이 더 밝아지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던 의미라는 것을 돌이켜 발견해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 김진희
Vol.20030701a | 기억하는 거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