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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620_금요일_05:00pm
세미나_영국 전통 브랜드의 혁신_가이 솔터(Guy SALTER) 외 2003_0621_토요일_02:00pm~05:00pm_예술의전당 서예관 4층 소회의실 참가할 분은 미리 예약해주시기 바랍니다.
『Posh_영국 전통 브랜드의 혁신』 전시설명회 2003_0621_토요일_05:00pm~06:00pm_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설명_에밀리 캠벨(Emily Campbell)
주최_예술의전당·주한영국문화원 / 후원_문화관광부·영국대사관 / 협찬_신세계백화점·닥스 입장료_일반 5,000원 / 학생 2,000원 / 단체 20인 이상 50%할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서울 서초구 서초동 700번지 Tel. 02_580_1538
포쉬 스타일 ● POSH는 Port Out, Starboard Home을 뜻한다. posh라는 단어의 어원은 현대와는 다른 시대를 기반으로 한다. 즉, 바다를 가로지르던 정기선과 호화 여행, 전원의 대저택, 근사한 리무진, 트위드 골프용 반바지를 입고 외알 안경을 낀 신사, 모피 코트와 화려한 모자를 쓴 숙녀, 권력과 지위를 상징하는 온갖 장식이 존재하던 시대를 나타낸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모습이 영국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이미지는 영국 계급 사회의 상류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즉, 수세기 동안 지속되어온 예의 범절과 우아함으로 가득한 귀족사회의 복잡한 작위들과 영지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비롯됐다. 밀랍으로 광택을 낸 목재, 아마(亞痲)씨로 길을 들인 가죽, 빳빳하게 풀을 먹인 하얀 린넨 천의 사각거리는 소리 등 호화로운 느낌과 향기의 감각적인 세계인 것이다. 또한, 소비, 돈, 자신이 소유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모두 당연히 최고급이라는 기대를 나타내며, 소유자의 취향과 계급 구조 내에서의 지위를 상징한다. ● 계급은 산업 사회의 유산이다. 18세기 말, 기계화와 대량 생산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회는 새로이 분화됐으며, 상류층, 중산층, 빈민층의 계급 구분이 뚜렷해졌다. 산업 혁명이 영국의 계급 사회를 탄생시켰듯, 대량 생산은 그에 반발하는 움직임을 낳았다. 수작업으로 정교하게 제작한 제품에 대한 취향이 생겨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19세기 중반 디자이너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와 Arts and Crafts 운동이다. 그리고, 상류층에서는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서, 자신들에게 부를 안겨준 산업화와 거리를 두기 위해서 재빠르게 그 같은 스타일을 받아들였다. 또한, 19세기에 소비자중심주의(consumerism)가 부상하면서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사람들은 소유물이 자신을 나타낸다고 믿게 됐다.
그러한 관념은 우리가 '라이프 스타일'이라 부르는 것에서 생겨났다. 상인층과 상류층이 도심지역에서 누리던 삶은 일과 놀이의 고정적인 반복이었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시티지역 은행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목재와 대리석으로 치장한 폴 몰(Pall Mall) 남성 클럽의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런던 웨스트 엔드(West End)의 본드 스트리트(Bond Street)와 피카딜리(Piccadilly)를 다니며 쇼핑을 하거나 집에서 티파티를 열곤 했다. 이브닝(evening)이라는 단어는 저녁 식사를 위한 옷을 차려 입거나 혹은 극장에 다녀오는 것을 의미했다. ● 이 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심지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방식에 따라 살아가야 했다. 예를 들면, 남자들은 유모의 손에서 자라 유아전문교육기관, 퍼블릭 스쿨을 거쳐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후 왕실 근위대나 영국 성공회의 일원이 됐다. 여자들은 여주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들을 배운 후 당연한 수순에 따라 결혼에 이르곤 했다. 초여름 런던의 사교기가 되면, 휘황찬란한 무도회장은 사교계에 데뷔하는 젊은 여성들과 하얀 타이와 턱시도를 말끔하게 차려 입고서 이 여성들에게 구애하는 젊은 남성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 당시에는 항상 정해진 사회적 관례에 따라 살았기 때문에 우편함에 놓인 빳빳한 초청장만 보더라도 일년 중 어느 계절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 당시는 계급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세상이었다. 사회 전체를 노동자층, 중산층, 상류층으로 구분했을 뿐만 아니라 남작, 백작, 공작, 자작에 이르는 복잡한 서열에서부터 상류층이나 보다 낮은 중산층, 장인계층,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각 계급들을 다시 세분화 하였다. 지위의 개념이 워낙 확고하게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귀족사회의 많은 작위들은 왕가보다 역사가 오래된 경우도 흔했고, 몇몇 유서 깊은 가문에서는 빅토리아 여왕을 벼락부자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마저도 있었다. ● 또한, 이 시대는 신분을 드러내는 복장을 매우 중시했었다. 옷차림만 봐도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나 집안을 장식하는 소품, 소장하고 있는 예술작품, 단골로 다니는 새빌 거리(Savile Row) 재단사나 여성복 맞춤 가게 등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왕실은 신생업체 혹은 기존업체에게 왕실 납품업체로 승인하는 왕실 인증서(Royal Warrants)를 내림으로써 이 같은 경향을 주도했다. 왕실 인증서는 최상의 추천서가 됐으며,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떤 상점에서 왕실 문장을 볼 수 있다면, 여러 왕가에서 그 상점의 구두나 엽총, 혹은 가루비누를 샀었음을 암시한다. ● 상류층은 주말이나 여름을 시골에서 보내며 도심 생활과의 균형을 맞추었다. 상류층은 시골별장에서 하녀가 가져다 주는 차와 빵과 버터로 아침을 시작했고, 목욕물을 받고 빨래를 너는 일도 하인들이 했다. 가족들과 손님들은 은식기에 내오는 푸짐한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모여들곤 했다. 오전에는 전통적인 분홍색 사냥 코트와 트위드천으로 만든 승마복을 입고 사냥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널따란 차양을 치고 하인들이 시중을 드는 점심을 먹고 애프터눈 티를 마시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에 술과 일곱 가지에서 열 가지 음식이 나오는 정찬이 이어졌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나 노엘 카워드(Noel Coward)와 같은 아웃사이더들은 이런 사회에 대해 비판을 가하곤 했다. 이들은 날카로우면서도 재치 있는 농담으로 그 당시 가치관을 지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통의 위력을 인정했다. 와일드는 1890년대 두편의 희곡, 「진지함의 중요성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과 「원더미어 부인의 부채Lady Windermere's Fan」에서 계급을 다뤘다. 이 희곡에서 와일드는 사냥을 가르켜 '먹을 수 없는 것을 말 없는 사람들이 쫓아 다닌다'고 조롱했다. 카워드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미친 개와 영국신사Mad Dongs and Englishmen」, 「영국의 위풍당당한 저택들The stately Homes of England」이란 패러디 곡을 썼다. 버나드 쇼는 희곡 「피그말리온」에서 에드워드왕 시대의 영국 상류층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이 희곡에서는 일라이자 둘리틀(Eliza Doolittle)이라는 이스트 엔드(East End) 출신 소녀가 상류층의 일원이 되기 위해 '적절한' 상류층 언어를 배운다. ● 하지만, 20세기 초 이처럼 형식에 얽매인 영국사회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세계 대전과 경제적 대격변으로 인해 하인과 대저택의 수가 줄기 시작했다. 런던 파크 레인(Park Lane)의 대저택들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시골별장을 유지하고 하인을 고용하는 데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러나,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에 영국에서는 부와 미의식을 나타내는 것들에 대한 기준이 바뀌었고, 새로운 현대적 개념의 posh스타일이 생겨났다. ● 1920년대에 신사를 판단하는 기준은 숙녀에게 권하는 터키산 혹은 버지니아산 담배였다. 또한, 숙녀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후 다과회에서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중국산 혹은 인도산 차였다. 이 시기는 여행의 황금기였다. 노엘 카워드는 1929년 극동 지역을 여행하면서 22개의 여행 가방과 축음기를 챙겨갔다고 한다. 런던 교외 중산층 출신인 카워드와 세실 비통(Cecil Beaton)은 심미안의 권위자들로서 새로운 의미의 계급이동을 상징했다. 영국사회가 겉으로 보기엔 경직된 계급체제로 인해 제약이 많았을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적절한 복장을 갖추고 적절한 액센트를 구사한다면 한 계층에서 다른 계층으로 옮겨 가는 것이 놀라우리만큼 쉬웠다.
2차 세계 대전, 새로운 문화, 새로운 음식을 거치면서 영국은 유럽식 생활방식에 눈을 뜨고, 결국은 엘리자베스 데이비드(Elizabeth David)와 테런스 콘란(Terence Conran)과 같은 인물들 덕분에 요리법과 디자인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일용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제는 사회적으로 평등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해비탯(Habitat, 1964년 설립)에서 주방용품과 가구를 구입하고 비바(Biba, 1972년 켄싱톤 백화점에 매장 오픈)에서 옷을 구입함으로써 새로운 posh스타일을 탄생시켰다. ● 마찬 가지로, 세계 대전 이후 항공 여행의 대중화 역시 posh스타일을 변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60년대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객선을 타고 지중해나 카리브해를 여행하거나,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가는 것은 일상화됐고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 됐다. 이제는 어디를 여행하는가와 함께 어떻게 여행하느냐가 계급을 판단하는 척도가 됐다. 기내에서 휴대할 수 있는 작은 가방 하나만으로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또는 어떤 사람으로 비춰지길 바라는지 알 수 있다.
세계 대전 이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라이프 스타일이 각광받기 시작했고, 십대라는 계층이 주목 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상류층은 여전히 자신들만의 남성 클럽을 고수했고, 중산층과 노동자층은 계속해서 "자신보다 더 높은 계층"을 흉내냈다. 예를 들면, 1960년대 이른바 테디 보이즈(Teddy Boys : 역자주 - 복고풍의 옷을 즐겨 입는 영국의 반항적인 청소년들)는 벨벳으로 깃을 댄 코트와 통이 좁은 바지 등, 에드워드왕 시절의 양식으로 된 옷을 입었던 상류층의 근위대 장교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posh스타일의 개인 소품들은 스타일의 상징이었다. 1960년대 카나비 스트리트(Carnaby Street)의 멋쟁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빅토리아 여왕 시대를 수용하면서 대영제국의 군복을 응용한 옷을 입었다. 60년대말, 70년대에는 세계 대전 이전 시절에 대한 향수가 일면서, 과거의 posh스타일이 다시 유행하기도 했었다. 뮤지컬 영화 「치티 치티 뱅뱅Chitty Chitty Bang Bang ,1968」에서는 심지어 posh라는 노래가 등장해 사라져 가는 대영 제국의 가치에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독창적인 posh스타일이 계속 새로이 등장하면서, 영국인들은 더욱 열성적으로 posh스타일을 국민성으로 삼고 싶어하는 것 같다. 1980년대 다이아나 황태자비의 스타일 역시 「인테리어의 세계The World of Interiors : 상류층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잡지」에서 '셰비 쉬크 스타일shabby chic : 낡은 듯 세련돼 보이는 패션 스타일', 「헬로우! 」 (Hello! : 역자주-일반대중잡지)"에 이르기까지 이들에서 나타난 posh스타일의 유행을 반영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의 한 트렌디 브랜드의 이름이 'Posh Boy'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지 스타일(grungey)이 유행했던 90년대에는 '쿨 브리태니아(Cool Britannia)'가 등장했으며, 영국국기 유니언 잭이 posh에 대한 반어적 혹은 전복적인 상징이 됐다. 스파이스 걸스 멤버들도 유니언 잭으로 만든 옷을 입고 나타났다. 1994년 그룹 오아시스의 보컬 리암 갤라거(Liam Gallagher)가 당시 부인이었던 팻시 켄싯(Patsy Kensit)과 함께 유니언 잭이 덮여 있는 침대에 누워있는 사진이 '배너티 페어(Vanity Fair)'紙 표지에 실렸다. 이 사진은 쿨 브리태니아를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사진으로 꼽힌다.
유명연예인의 영향력이 상당한 20세기 말에 posh스타일은 다시 한번 개인의 취향을 결정짓는 기준이 됐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가이 리치(Guy Ritchie)와 마돈나(Madonna)가 (posh스타일을 상징하는 세실 비통이 소유했었던) 윌셔(Wiltshire)에 있는 방대한 영지를 사들였다. 리치와 마돈나는 이 곳에서 사냥 모임을 열기도 했다. 한때는 외설적인 옷차림으로 유명해졌던 마돈나가 이제는 트위드 모자를 쓰고 영국식 액센트를 쓰고 있다. 이들 외에도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연예인 부부로 꼽히는 베컴 부부는 집, 의류, 차를 통해 posh스타일을 추구했다. 베컴부인(베컴의 부인인 빅토리아 베컴은 과거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였다)의 한때 별명이었던 posh Spice는 그 자체가 현대적 posh 개념에 대해 아이러니하면서도 순진한 해석이다. Posh에 대해 그처럼 새로운 주장들이 생겨났으니, 'the Posh'라는 별명을 가진 피터보로우(Peterborough) 축구단이 posh를 상표로 등록하려 하자 빅토리아 베컴이 이의를 제기한 것도 당연하다. ● 이는 매우 적절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노동자층이 사라지면서, 사회학자들은 이제 모두가 중산층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마치 축구 경기에 열광하는 것이 영국 중산층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 같은 평등주의는 posh라는 단어에서 계급적 함축의미를 씻어냈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에 공백이란 있을 수 없고, 또 과거의 질서를 재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동경할 수 있는 귀족사회를 새로이 만들어낸다. 새로운 귀족사회는 덜 사치스럽고 보다 대중적인 세계이다. '데브레트의 오늘의 인물란Debrett's People of Today'에 힙합 DJ도 소개되는 세계이다.
이제 전혀 새로운 인물들이 타블로이드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다. 1920년대만 하더라도 신문에는 공작, 남작, 총리 등이 참석한 상류층 인사의 결혼식 사진이 주로 실렸다. 그 같은 결혼식을 보기 위해 엄청난 (대개는 노동자층) 구경꾼들이 웨스트민스터 사원 밖에 몰려 들었고, 이는 계급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수세대가 지난 오늘날도 매일 타블로이드 신문에 실리는 내용들은 한결같다. 하지만 신문 사진 속 주인공들은 사우스햄튼 부두(Southampton Docks)에 정박한 호화 유람선에 오르는 귀족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히드로우 공항에 도착하는 유명 영화배우나 가수들이다. 이들은 좀 더 친근한 인상을 주지만, 언론을 통해 여과된 그들의 모습은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다. 즉 우리가 갈망 하는 것들과 우리의 현실 사이의 거리이다. ● 대형 수퍼와 인터넷 시대에도, posh스타일은 아이러니로서 받아들이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건 간에, 영향력을 지니고 영국이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 지난 2세기 내내 영국은 posh를 영원하면서도 동시에 끊임없는 변화하는 스타일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왔다. posh는 복잡한 의전에 얽매여있고, 패러독스과 패러디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노엘 카워드와 데이비드 베컴처럼 상반되는 인물로 대변된다. 또한, posh는 계급의식과 스타일의 변신에 병적일 정도로 중독된 영국에서 사회적 지위를 가능케 하는 매커니즘이다. 바로 이러한 긴장상태야말로 posh라는 유산을 지금도 소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 필립 호어_Philip Hoare
Vol.20030621a | Posh_영국 전통 브랜드의 혁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