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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619_목요일_05:00pm
한전프라자 갤러리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55번지 전력문화회관 1층 Tel. 02_2055_1192
그의 엄살 ● 평소에는 바위같던 사람도 어디 아픈 데가 있으면 가는 신음소리를 낸다. 누가 알아챌까 두려우면서도 은근히 알리고 싶어한다. 괜찮다, 됐다 소리를 연발하면서도 꾸준히 시선을 좀 유지해 주기를, 스쳐 가다가도 슬쩍 돌아봐 주기를 바란다. 엄살이다. ●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대체로 '너 그거 엄살이지?' 한다. 모를 리가 있나, 엄살인 줄 다 안다. 제 힘으로도 굳건히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굳이 남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큰 탈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 그렇게 쉽기만 하던가. 아픈 것을 그저 아프구나 하면서 이해한다거나, 슬픈 것을, 두려운 것을 그저 그렇구나 하면서 지나간다는 것은 웬만해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매번 어떤 상황이 닥칠 때마다 우리들은 무방비 상태이므로 분명히 한 번은 울컥이는 시간이 온다. 그것을 스스로 모른 채 하는 것은 제 자신에 게 못할 짓이다.
작가 이동욱의 엄살을 보자. 여러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여러 가지 표정의 두상을 보면, 엄살도 이런 엄살이 없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상(그냥 '나'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겠다)은 갑자기 누가 먹다 버린 「츄파춥스」 막대 사탕이 되어 개미들에게 급습을 당하고, 「산책」나온 쇠똥구리가 굴리는 한 덩이 '그것'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작가는 그런 장면을 보여주면서 마치 그런 상황이 된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강도는 갈수록 더해 간다. 유난히도 작은 유리병에 갇혀 「질식」할 것 같다고 외쳐 대고, 대일밴드에 스며 나온 피 한 방울을 보며 「과다출혈」이라고 말한다. ● 사실 이 두상(나)들이 그리 하찮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생각의 수집」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엄연히 하나의 생각 덩어리이다. 그 생각은 여러 개의 볼록렌즈로 이루어진 망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확산되기도 하고, 심지어 원래의 생각이 부족할 때는 기꺼이 「활성 비타민」이 되어 주기도 한다. 하지만 뚜렷한 기능을 해내는 별 문제없는 그것들에게 작가는 왜 저토록 심한 엄살을 떨어놓았을까.
정작 상황은 그보다 더 나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어려움이 찾아오기 때문에 나를 쉼없이 옭죄는 날들을 단지 나의 아픔일 뿐이라 강조할 수는 없다. 그러니 혼자서만 아프다고 소리치는 것은 좀 머쓱하다. 그렇다고 가만 있자니 정말로 아프다. 그럴 때 바로 엄살이 필요하다. 나도 다 알고, 남들도 다 알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 할 수는 없을 때, 그때, 엄살이 탄생한다. ● 세상에는 엄청나고 거대한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들도 사실은 아주 작고 미세한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엄살은 또한 바로 그 첫 번째 몸짓에 다름 아니다. 그 이전과는 분명 뭔가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알리고 납득시키는 행위, 그리하여 그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에게 용서받는 행위, 그것이 엄살인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엄살 아닌 일이 어디 있던가.
나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 너의 작은 아픔을 놓치지 않는 것, 그렇게 서로 얼마만큼은 받아 주고, 또 눈감아 주는 것, 그러나 그 엄살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것, 비로소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 그것을 함께 누리는 세상은 그래서 정말 아름답다. 너도, 나도 웬만큼은 서로 알고 있는 엄살의 이유, 이동욱의 작품이 보여주는 그 엄살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자꾸만 피식 웃음이 샌다. ■ 황록주
Vol.20030619b | 이동욱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