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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604_수요일_06:00pm
갤러리 룩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Tel.02_720_8488
신비로운 빛의 계곡에서 ● 1931년, 12살의 양치기 소녀는 양을 몰고 가던 중 애리조나의 한 사암구릉에서 세찬 물살과 바람에 침식되어 생겨난 좁고 길다란 계곡을 발견한다. 사막지대에 사는 영양을 일컫는 앤틸로우프 Antelope라 명명된 이 협곡의 폭은 종종 1m도 채 안 되었지만, 깊이는 30여m를 헤아렸다. 약 400m에 이르는 이 협곡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이 비바람과 물살에 갈고 닦인 사암의 요철 위에서 온갖 빛의 스펙트럼으로 작렬했다. 태양 빛은 침식당한 계곡의 폭과 깊이, 그리고 연마된 사암의 요철과 굴절의 정도에 따라 검붉은 빛에서 보라빛으로, 주황색에서 눈부신 백색으로 전율했다. 햇볕이 스며드는 협곡의 사암은 돌의 무게를 벗어 던지고서 마침내 변화무쌍한 빛으로 탈바꿈했던 것이다. 사진작가가 보기에 앤틸로우프 협곡은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거친 물과 바람이 조각가가 되어 빛의 신비를 찬양하기 위해 만든 성전이었다. 빛과 함께 깨어나는 계곡은 빛에 의한 기묘한 건축, 빛의 조각, 빛을 위한 제단이었다.
포토그래피 photography의 어원이 '빛으로 그린 그림, 빛이 생성한 그림'이라면, 사진작가는 빛이 만들어내는 색과 형상에 매료된 자일 것이다. 빛이 창조하는 신비로운 풍경, 빛이 빚어내는 절묘한 모습에 마음을 졸이는 사람일 것이다. 사진작가, 임양환은 앤틸로우프 협곡의 빛이 그려내는 오묘한 형상에 마음을 빼앗겨 2001년,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그곳을 찾았다. 빛이 심연의 어둠 속으로 들어와 대지의 불을 지피고, 비물질의 세계 속으로 산화(散華)하는 이 계곡에서 그는 빛의 이상주의, 빛의 초월적 절대성을 목격했다. 그래서 작가는 대지, 공기, 불이라는 세계의 기본질료들이 찬란한 빛으로 조화를 이루며 통일되는 어떤 절대적 순간을 '빛의 그림'으로 포착하고자 했다.
사실, 작가가 빛으로 그린 앤틸로우프의 빛과 암석은 단순한 자연의 묘사가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내면이 갈망하고 선택한 자기표현의 한 양식이다. 첫 개인전 이후 계속된 그의 빛에 대한 탐구는 인간의 원초적 의식 속에 내재된 영원과 절대에 대한 향수의 표현이었다. 어둠의 협곡을 향해 내려오는 빛과 하늘로 상승하는 빛이 모래암석을 매개로 서로 화해하면서 빚어내는 앤틸로우프의 조화로움은 따라서 그가 꿈꾸는 절대의 현시였다. 이 영원의 공간 속에서는 빛은 어둠을 밝히고, 어둠은 빛을 감싸며, 대지는 이 둘의 화해를 그 조화로운 곡선으로 찬양했던 것이다.
임양환의 빛의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빛은 세계를 지어낸 원초적 질료인 동시에 세계를 움직이는 근본 동인이다. 빛은 불타오르고, 대지의 암석이 되며, 가벼운 공기로 날아오른다. 불꽃처럼 춤추고, 바위처럼 굳었다가, 바람처럼 흩날린다. 그리고 물처럼 흐른다. 이 존재의 중심에는 늙음도 죽음도 없다. 작가의 '빛의 하모니'에는 오직 끊임없는 생성, 영원한 생명만이 존재한다. 그가 첨예한 감각으로 포착한 이 변화무쌍한 빛은 하나의 살아있는 총체적 공간이며, 절대적 시간이다. 빛과 더불어 모든 것은 시작한다. 모든 것은 빛과 더불어 다시 깨어난다. 빛은 움직이며 세계를 노래한다. 빛의 그 찬란한 멜로디들은 위아래로, 사방으로 조화롭게 펼쳐나가고, 빛이 탄생시킨 세계는 그 빛을 찬양한다.
그러나 잊지 말기로 하자. 이러한 빛의 신비를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사진작가의 첨예한 감성이라는 것을. 그리고 또한 잊지 않기로 하자. 빛의 영원성과 절대성을 사진으로 포착하는 것은 빛을 예찬하는 자의 미학적 시선이라는 것을. ■ 최봉림
Vol.20030608a | 임양환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