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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603_화요일_05:00pm
마로니에미술관 소갤러리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602
복잡다단한 현대 한국화의 변화 양상은 수묵과 채색이라는 전통적인 이분법만으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다양한 것이다. 사실 경우에 따라서는 재료에 의한 획일적인 구분보다는 그것이 드러내고 있는 심미의 내용과 형식에 따른 새로운 구분과 분류가 필요한 것이라 여겨진다. 특히 서구적인 조형에 대한 학습과 전에 없던 색채 감각을 지닌 일단의 현대 한국화 작가들에게서 이러한 경향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양태와 현상은 한국화 자체에만 제한된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회화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일종의 절충과 융합의 현상으로 시대적인 산물이라 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한국화의 전통은 유구한 것으로,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축적되어진 조형적 경험은 그 폭과 깊이에 있어서 막대한 것이다. 이러한 축적된 전통은 새로운 창조의 시발로 존중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일종의 막연한 부담감 같은 것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전통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보수적인 수구의 입장과 부정을 통한 새로운 가치의 모색이라는 두 가지 방향을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구분은 지극히 상투적인 것으로 현실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목도되는 한국화의 현장은 보수와 진보의 중간에 위치하는 절충적인 것이다. 즉 축적된 전통으로부터 특정한 내용과 형식은 선별적으로 수용하지만, 전적으로 이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조형과 이를 통한 개성의 발현에 보다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일종의 시대적인 특징이자 조류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김순철의 작업 역시 이러한 경향의 하나로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수없이 반복적인 작업을 통하여 비로소 구축되어지는 황갈색의 화면질과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특정한 이미지의 문양들은 표현 형식은 물론이거니와 그 내용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것과 조형이라는 말로 표현되어지는 현대적인 것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마치 황토, 혹은 토담을 연상시키는 화면의 바탕은 질박하고 투박한 토속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중첩되며 이루어지는 깊이 있는 색감의 구사는 바로 수용성 안료 특유의 미감이다. 칠하고 더하는 인위적인 작업 과정 이외에 안료 자체가 물과 어울려 스스로 마르고 엉기며 이루어내는 우연의 효과까지를 고스란히 수용하고 있는 이러한 화면질의 구축은 작가의 작업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부드럽고 은근하다라는 말로 표현되는 전통적인 채색화의 설채법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거칠고 투박하며 두터운 느낌의 화면질은 단순한 바탕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조형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모필 특유의 부드럽고 우아함과 필선의 구사보다는 일종의 필촉에 의한 터치를 차용하여 구축되어지는 화면질은 특유의 리듬감과 운율을 지닌 것이다. 여기에 굵은 바늘로 한 땀 한 땀 더해가는 바느질 자국들은 필촉을 통해 구축되어 진 평면의 상투성을 견제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더불어 이는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적 화면질을 담보해 주는 상징적 의미가 두드러지는 일종의 부호와도 같은 조형 부호라 할 것이다. 이로써 작가의 화면질은 단순히 바탕, 혹은 여백과 같은 소극적인 의미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조형의 한 요소로서 일정한 작용을 담당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바느질의 흔적들과 작가가 즐겨 도입하고 있는 꽃문양의 이미지들은 분명 일정 부분 페미니즘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지만 굳이 이에 연계 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망(望)』이라는 일련의 제목을 부치고 있다. 『望』에 대하여 작가는 "오늘을 살면서 늘 잃지 않으려는 꿈과 희망의 주제를 갖고 있으며, 확대된 넓은 의미로 『望』이라는 명제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꽃은 지루한 일상에서 막연하게 꿈꾸게 되는 望의 상징화된 이미지로 일상의 고단한 노동과 삶, 그리고 번뇌 극복의 주문처럼 외워지는 무한의 의미로 심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상징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일견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설명의 내용처럼 작가의 작업은 일상을 통해 막연히 희구하고 동경하는 '바램'으로서의 『望』을 작업의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로 사랑, 건강, 풍요로움, 아름다움, 밝고 따뜻한 소망의 이미지 등과 같은 소박하고 원초적인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과장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허황되지도 않은 이러한 『바램』으로서의 『望』은 비단 작가 개인의 그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현대인 모두의 '바램'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작가의 작업은 바로 『望』으로 가는 작가만의 과정이자 수단이라 할 것이다.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반복되는 작업들을 감내하며 작가는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러한 확인 과정에서 건져 올려지는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밝고 따뜻한 소망의 이미지들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삶이 그저 맑고 밝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회한이나 절망, 혹은 분노나 증오와 같은 극한 감정을 자제하고 이를 '밝고 따뜻한 소망의 이미지'로 환원함은 일종의 승화이다. 작가의 작업이 비록 거칠고 투박하며 여타의 장식적인 색채들이 사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특유의 맑고 정갈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정서적 안정감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일정한 전형에 따라 완만한 변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작업 과정 자체에 대한 집착과 몰입이 강조되던 초기의 작업들에 비하여 최근작들은 점차 절제와 함축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이 여실하다. 그 결과 화면질의 조형적 기능은 상대적으로 감소되는 반면 꽃문양 같은 형상 이미지의 역할이 점차 두드러지게 된다. 더불어 형상 이미지들은 번잡한 설명적 요소보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함축적인 모양으로 전환되어 조형성이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작업 과정상 나타나게 마련인 변화 양상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이러한 작업이 점차 안착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조형이 실험적이라는 허울로 용인되고 있는 현실에서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완만하지만 안정적인 조형 작업은 상대적으로 반가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분청사기의 질박함과 토담의 정겨움을 함께 담고 있는 듯한 작가의 작업은 형식에 앞서 정서로, 내용에 앞서 그 따사로운 감성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삶이라는 일상을 통해 건져 올려 진 감정의 일단을 맑고 밝은 공감의 정서로 환원시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 김상철
Vol.20030604a | 김순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