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3_0528_수요일_05:00pm
갤러리 조 서울 종로구 사간동 69번지 영정빌딩 B1 Tel. 02_783_1025
최근의 미술 동향은 뚜렷한 구심점이 없이 이른바 '중심의 해체'를 통한 개별화, 평준화된 양상을 보인다. 그 결과 미술 문화의 생산과 소비라는 관점에서 볼때 전자 매체가 쏟아내는 위력적인 인공성과 세계화된 시장 경제 논리에 순응한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다시 말해 하향 펑준화된 문화만이 존재하는 듯하다. ● 이런 이유에서 오늘의 미술은 이제 현대인들에게 보다 근원적이고 심각한 물음을 던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 물음이 순수한 조형 언어를 통해서 인간이 누려야 할 건강한 미의식을 회복하고 작가와 감상자간의 직접적이고 진지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여 미술이 그 자체로서 하나의 통감각적인 체험의 장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의미 있는, 그리고 시급한 과제가 될 것이다. ● 따라서 본인은 이번 작업을 통하여 지금의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으로서의 미술 작품과 인간에게 특별히 부여된 행동으로서의 창작 행위에 관해, 나아가 그들 사이의 관계로부터 추출될 새로운 가능성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모색해 보고자 한다.
그 가운데서도 원시 사회에서 인류의 정신적 생존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신화적 상상력과 그 문명의 상징인 다양한 기호와 기록의 흔적들은 이번 작업의 중요한 단서이다. 선사 시대부터 인류는 쓰기기호나 그림기호, 새김기호 등을 이용하여 의사소통을 추구해왔다.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귀로 감지할 수 없는 인식 또는 감정을 인간의 의식 속에 전달하는 기능을 넘어 이제 기호와 문자는 인간의 존재와 본질을 함께 하는 것이다. 원시적이고 발생적인 고대의 형태들은 온갖 시각 기호로 가득 찬 지금의 세상과 다를 것이 없다. 이번 작업에서는 이러한 이미지의 형상화를 통해 최초의 미술은 어떠한 동기로 제작되었으며 또 어떠한 조형성을 갖고있고 무슨 역할을 하였는가를 새롭게 규명해 보고자 한다. 만약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시각적인 접근을 통하여 보다 확실하게 인식하게 된다면 앞으로의 미술이 어떠한 입장을 견지하여야 하는가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작업의 방법 면에서 대상의 형상화는 그 과정과 기법으로 구분 될 수 있는데 형상화의 과정에 있어서는 앞서 언급한 특정하게 선택된 대상을 미리 상정한 후 화면에 재현을 시도하는 작업과, 일단 아무런 전제 없이 매체 실험에 임하여 재료와 도구가 빚어내는 우연의 효과 위에서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이미지를 발견하여 형상화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독자적이고 풍부한 표현을 위하여 회화전용화구로 기존에 널리 사용되던 재료보다 대상의 리얼리티나 질감, 또는 색상표현에 적합하다고 판단되어 선택된 철분, 동분 등 천연의 다양한 재료들에 의해서 시각적인 효과와 더불어 촉감적이고 압축된 조형효과까지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제시 될 것이다. ● 대상과 이미지, 그리고 문자와 기호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너무 친숙해져 있기 때문에 앞서 제시한 가장 평이한 질문조차 우리는 던져보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리 기호학 이론이나 회화이론을 뒤적여도 여기에 대한 만족할만한 답을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 만큼 문자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는 열려져 있는 새로운 장으로서 화가와 관객 모두에게 또 다른 생각하기를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처럼 이미지와 동영상의 자극강도가 폭발적으로 확대 될 때, 미술은 그 가능성을 일상의 그림들과 똑같이 가시적이고 자극적인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지만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것에서 그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바라는 바는 이와 같이, 문명의 상징인 다양한 기호 또는 원시적 문자들이 작업과 결합된 모습을 통해 현대미술에 하나의 가능성을 제안하고 검토해 보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시각, 촉각을 포함하는 실제적 공간에서 경험되어지는 미학적, 고고학적, 문화사적 표상들은 그것들이 사진 등의 평면적 재현을 가지고는 대체할 수 없는 또 다른 통시적인 감각 체험의 장으로서 기여하게 될 것이다. 또한 많은 것들이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숨 가쁘게 흘러만 가는 이 시대에 흘러가지 않는 것들의 의미를 통해서 미술이 일회성 소비 상품이나 오락이 아니라 현실과 영원이라는 양자를 서로 밀착시킬 수 있는 명상의 장소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 이상봉
Vol.20030528b | 이상봉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