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일상과 자기복제적 자화상

임선희 영상展   2003_0522 ▶ 2003_0608

임선희_wonder-people_비디오 영상_00:02:50_2002

초대일시_2003_0522_목요일_06:00pm~09:00pm

시공간 프로젝트 brainfactory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임선희는 영화나 뉴스, 게임, 드라마 등의 대중 문화적 도상들 속에 개입하는 일련의 자기복제(self-cloned)적 자화상을 만든다. 다층 편집에 의해 발생된 작가 자신의 이미지들은 마치 손오공이나 마이클 키튼이 주연한 『멀티플리시티』의 더그 키니와 같은 전형적인 복제(multiple) 또는 분신(incarnation)들이다. 이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파국으로부터 CNN의 걸프전 이미지와 일일연속극의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점에서 화면 위에 덧입혀져 있는 별개의 '레이어' 위에서 나타난다. 해석과 동시에 이입 (empathy)을 일으키는 이 특수한 레이어야 말로 임선희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지점이다.

임선희_into the Romeo and Juliet_비디오 영상_00:03:46_2000

때로는 배경과 분리된 것처럼 보이고 때로는 배경을 관통하는 이 레이어-장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임선희의 작품들은 두 가지 테마로 이루어져 있다. 그 하나는 아무리 해도 불충분한 주체에의 몰입의 욕구에 의해 야기된 '분열'(schizophrenia)이고 다른 하나는 타자들과의 정체성의 공유로 보여지는 상호 주관적 편재(omnipresence)의 상태이다. 이 두 가지는 동일한 행동으로 보여지기도 하고 서로 다른 별개의 주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개의 '자아'들이 대상을 둘러싸고 각각 상이한 이입을 시도하는가 하면 때로 그것들은 외부의 주체와 사물들로부터 작가를 (관객을) 향해 언뜻언뜻 투사되기도 한다.

임선희_Don't move!_천에 디지털 출력_50×50×30cm/비디오 영상_00:01:15_2002

타자에 대한 동경 또는 연민과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까지 일반화된 상황을 예감하는데서 오는 잠재적 주체-네트워크의 드러남. 이에 관하여는 자아의 감옥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타자의 정체성을 공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다루고 있는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를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자인 찰리 카우프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가 자아를 타자의 정체성으로 파악하면서 타자 위에 투사된 자아의 피드백을 통해 동일성과 타자가 혼재하는 극단적 상황을 상상하였다. 물론 그러기 위해 주체의 몰입을 허용하는 특수한 '터널'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 심지어 주체의 동일자 마저도 마치 타자처럼 주체 안에 객관적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일반적인 주체의 피드백, 즉 그것의 편재로 인한 의미의 순환을 만들어낸다.

임선희_Hello, I'm Sunhee_비디오 영상_00:02:35_2003

분열에 의한 편재는 역사적 개념이기도 하다. '분열'은 속도를 전제로 한다. 동시에 여러 곳에 편재하는 의식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17세기에 라플라스에 의해 제시되었다. 그는 세계를 모든 각도에서 관찰하고 있는 신의 수학적 전재성을 가정한 바 있지만 그것은 신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즉 우주 전체에서의 동시적 편재성을 의미하는 불가능한 속도를 상정하는 것이었다.

임선희_Watching TV_TV 모니터, 비디오 영상_00:12:00_2003

파스칼 역시 그의 '명상록'에서 삶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서로 멀리 떨어진 두 장소를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왕복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와 저기, 주체와 객체, 사물과 정신의 이원론으로 인한 모순은 일상적 시간이 아닌 비-물리적 시간, 직관적 찰라, 경험으로 얻어지는 통찰 등이 제공하는 비범한 속도에 의해 제어된다. 들뢰즈는 그것을 '하나'(One)가 아닌 '여럿'(multiple)의 승인, 나아가 '하나'와 '여럿'의 통일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임선희는 이것을 '미디어-일상'이라는 배경 위에 덧입힌다.

임선희_Wonder-I_비디오 영상_00:07:46_2003

그러한 덧입히기의 장치가 배경과 이중기표로 작동하는 「Different Space」(2000), 「Don't Move」(2001)로부터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 사이사이로 얼핏 보이는 자신의 모습들을 감지하는 「Wonder_People」(2002), 그리고 작가 자신의 모습이 TV 연속극의 인물들 위에 순간적으로 오버랩 되는 방식으로 공유가 일어나는 「Watching TV」(2003)에 이르기까지 고유한 창작의 제기 지점으로 천착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화가들이 어두운 불빛 아래서 끊임없이 자화상을 그리던 것처럼 그는 미디어-일상의 모니터에 조명된 자신의 모습을 다시 화면으로 되돌려 보내고 있다. ■ 유진상

Vol.20030524a | 임선희 영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