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작가와의 대화_2003_0531_토요일_02:00pm~04:00pm
무의미의 의미-곽덕준의 작품세계_곽덕준·타테하타 아키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소강당, 제1전시실
전시설명회_매주 토,일요일_02:00pm~03:00pm
국립현대미술관 제1전시실 경기 과천시 막계동 산58-1번지 Tel. 02_2188_6000
곽덕준(郭德俊, 1937-)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그의 부모는 교토에 자리를 잡고 그를 낳았다. 태어난 곳은 일본이지만 그는 한국인으로 자라났다. 스스로의 인식을 통해 실체를 느낄 수 없었던 조국은 일본이라는 배타적인 환경을 통해 타인에 의해 그에게 각인되었다. 그는 두 사회 모두에서 마이너였으며 고독했다. 또한 그는 일본과 한국이라는 역사와 사회의 접점 위에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와 정체성을 끊임없이 증명해야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울적한 숙명을 치열한 예술의식과 방법으로 여과"시키기 위하여 곽덕준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과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사회와 개인의 관계', '정보와 인식 사이의 차이' 등 다양한 주제로 이를 변주하였다. 또한 '방관자의 시각'을 빌어 실존적이며 어려운 주제를 희화화하여 '유머와 아이러니'라는 방법을 통해 관람자들이 친근하게 작품에 다가올 수 있도록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보편적 의미를 역설적으로 되짚어 보는 방식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현대 미술의 흐름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의 1960년대 후반 작품에는 학창시절 일본화를 배우고 한때 염색기술도 익혔던 경험이 잘 녹아 있다. 「밤의 미소」에서는 가면 같은 얼굴들이 화면을 빽빽이 채우고 있는 작품으로 마치 무수한 얼굴들이 미묘한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화면을 호분과 연마된 모래 등을 써서 마치 석고나 본드를 발라 올린 도기(陶器)같은 질감을 가진 광택 있는 것으로 만들고 그 위에 못으로 무수한 선을 긁어내어 유기적인 형태를 만들어 냈다. 이때 나타난 해학적으로 그려진 인간의 형상들 아래 놓여있는 고독감과 특정의 이미지에 대한 얽매임과 반복은 오늘날까지 일관해오는 그의 작품 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패턴이기도 하다. 1970년대에는 명확한 단위와 정보를 가지고 실측이 가능한 존재와 행위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그 허구성과 무의미함을 「계량기」시리즈를 통해 표현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야외 조각공원에 설치된 「10개의 계량기」는 10개의 저울을 파라밋 형으로 쌓아올린 것으로, '계량하는 것이 계량되고 있다'는 넌센스를 나타낸 작품이다. 또한 전화박스, 등롱, 계단 등에 줄자를 댄 사진작품을 통해 시간이 오래된 오브제를 계측함으로서 역사나 추억 등, 계측 할 수 없는 존재들에게 계측의 잣대를 들여대는 넌센스를 보여주고 있다. 「0 계량기와 돌」에서 눈금 저울에 큰 바위를 올려놓고 0으로 표시해 놓았다. 이 '0'은 100 혹은 0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는 '+,- = 0' 이라는 무의미한 존재로 귀결된다. 측정과 계측에 쓰이는 눈금은 세계를 수치로 환원하려는 기하학적 사고의 산물이다. 그러나 곽덕준은 이것도 결국은 관념이 만든 허구이며 무의미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퍼포먼스 「DUCK 안의 DUCK」도 자신의 '곽(郭)'과 '꽉(오리의 울음소리)'을 연관짓는 넌센스를 보여준다. 오리와 함께 '곽', '꽉'이라고 외치며 인간은 오리의 지위로 마이너스화 시키고 오리는 인간의 지위로 플러스 시켜 결국은 '0' 이라는 무의미의 개념을 도출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세계와의 관계로 확장하게 되는데 미국의 대통령 선거 때마다「타임Time」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초상화를 이용하여 창작한 「대통령과 곽」시리즈가 바로 그것이다. 「클린턴과 곽」, 「부시2001와 곽」은「타임」지에 나오는 미국 대통령의 얼굴의 반을 거울로 가리고 아래 부분에 자신의 얼굴을 비치게 하여 뒤쪽에서 촬영한 것으로, 정치적 메시지보다는 넌센스의 유머를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은 세계를 대표하는 기호이며「타임」지는 현재 가장 영향력이 큰 잡지라는 이유로 선택된 소재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세계'와 '자신'과의 관계는 환상에 불과하며 세계의 얼굴과 자신의 얼굴을 이어서 하나의 얼굴로 만든 넌센스를 통해 뽐내는 표정으로 대통령 선거를 이야기하고 국제정치를 논하고 있는 우리의 일상적인 거짓을 폭로하고자 하였다. 이후 그는 「반복」시리즈를 통하여 '정보'의 무의미로 관심을 확장하였다. 정보의 허구성과 인식의 관계를 통한 무의미함을 나타내기 위해 사진의 일부분을 화면에서 소거시킨 「소거와 표출」시리즈와 사전의 의미와 실제 사물에 대한 거리를 꼬집은 「인식」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또 「TIME AUGUST 20 1984」는 타임지의 페이지를 찢어 붙여 사진만을 남기고 화면의 나머지 부분은 호분으로 하얗게 문질러 지워버린 것으로 하얀 바탕에 부시 맨의 벽화에서 따온 원시적인 문양을 남겨놓았다. 이는 집요한 '반복과 지움'의 방식을 통해 세계의 무의미함과 정보의 허구성을 드러내기 위해 제시된 전략적 방법이다. 은유적으로 현대적 삶에 대하여 무의미함을 통해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은 「무의미」시리즈에서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수십 개의 작은 사각으로 분절된 화면 속에는 '무의미'한 인간과 기호가 가득하다. 이 작품에는 잡지 등 미디어 정보를 호분으로 회칠하고 작은 만화의 컷이 빼곡하게 차 있는 화면 위에 코트 깃을 세우고 가방을 들고 가는 우스꽝스러운 남자가 등장한다. 곽덕준은 이 고독한 남자의 방황을 내세워 세계의 무의미함과 사회 정보의 허상을 꼬집어 그 '무의미'함을 이야기함으로써 결국 우리에게 사람과 사람사이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고 그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도록 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의 '무의미'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의 각 연대별 작품을 하나의 단위로 구획하여 봉합시킨 「풍화」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생애와 창작 세계를 회고적으로 되돌아보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으로서 곽덕준의 강박적인 '정체성 찾기'의 노력은 타자의 다양성이 인정되고 네트워크를 통해 다국적화 되어가고 있는 오늘 날, 두 사회를 모두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이고 또 이들로부터 그 성과를 긍정적으로 인정받는 아이러니도 연출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내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곽덕준의 『올해의 작가』전은 어느 해 보다도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통해 한국현대미술의 흐름과 전망을 국제적인 흐름 속에서 가늠해 보는 뜻 깊은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또한 한국 근, 현대사의 그늘 속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해외 동포들이 일구어낸 한국현대미술사의 한 부분을 파악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 강수정
Vol.20030523a | 올해의 작가 2003_곽덕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