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본연의 향수를 담은 환상 속의 해저

박복규 회화.설치展   2003_0521 ▶ 2003_0527

박복규_해저_실물 오브제, 혼합재료_가변크기, 설치_2003_부분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박복규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3_0521_수요일_06:3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오랜만에 중견작가 박복규가 개인전을 갖는다. 그의 최근작들은 그가 일관되게 전개해온 해저풍경의 연장선상에서 읽을 수 있으며 대체로 두 가지 유형으로 대별된다. 하나는 켄바스작업으로 청녹색의 해초들과 구릉들 같은 요소들로 화면 전체를 매운 다분히 불투명한 공간 위에 신안 앞 바다에서 발굴된 유물을 연상시키는 도기, 혹은 소라껍질, 혹은 해파리가 화면 중앙에 마치 화석과 같이 박혀있는 듯 혹은 부유하는 듯 시선을 정박시키는 그림들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작가가 이미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우리의 고유색깔인 쪽빛에 대한 연구를 구체적인 대상에 적용한 작업으로 쪽빛으로 염색된 물고기들로 구성된 오브제 로 구성된다. 각각의 물고기를 일일이 캐스팅 하여 농염의 차이를 두어 염색해 벽공간에 떼를 지어 마치 유동하는 물결을 따라 움직이는 듯한 구성으로 배치한 이 오브제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설치작업은 아니며 오히려 해저풍경그림들과 문맥을 같이 한다. 이전의 해저풍경이 작가개인이 상상하는 심연의 세계, 역사 속에 침전된 잊혀진 세계를 사실적으로 서술하려고 했다면 오늘의 가변적인 인간의 시간의 끈과 기억의 네러티브와는 상관없이 묵묵히 흘러가는 해저의 실체의 신비와 그 생명력을 드러내 보이려고 하는 것 같다. 이 때에 그림 한 가운데에 마치 상징적인 기호같이 극 사실적으로 묘사된 형상은 바다의 신비와 그 오묘한 생명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입구 혹은 코드의 의미를 갖는다. 실제의 물고기를 캐스팅 하여 제작된 '쪽빛'물고기연작은 비슷한 맥락에서 우주의,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기원인 바다의 에너지 (氣) 의 보편적인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박복규_Image'0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__2000

광의의 의미에서 물고기는 물질계 혹은 무의식의 세계와 연관될 때 고양하는 힘, 관통하는 운동을 상징하는 정신적인 존재를 표상한다. 바다, 즉 대모신 magna mater와의 밀접한 상징적인 관계 때문에 어떤 아시아의 부족들은 물고기를 신성하다고 생각하여 물고기를 숭배하는 의식을 거행할 뿐 아니라 사제는 물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기도 한다고 한다. 이러한 물고기의 신성화는 초기 기독교에서 예수의 이미지를 물고기로 표현한 것은 단순히 예수의 이름 첫 글자가 물고기란 명사와 동일하다는 데서 연유한 것 이상이라는 사실의 개연성을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물고기는 달력의 패턴을 따라 돌고 도는 생의 회전 cycle, 생의 신비의 배 mystic ship of life로 간주된다. 본질적으로 물고기는 그것의 실패모양의 형상 때문에 피안의 영역을 표상하는 새이자 희생의 상징이며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영매의 의미를 갖는다. 반면 우리의 민화나 전통 풍속화에서 보여주듯이 물고기는 그것의 수많은 알 때문에 다산의 상징이기도 하다. 물고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바다의 상징적인 의미는 끊임없이 유동하는 성질 때문에 일반적으로 대기나 연기같이 비물질적인 것과 땅, 혹은 고체와 같이 물질적인 것의 사이를 즉 생과 사를 넘나들며 회전케 하는 매재로서 삶의 원천이자 귀결점이기도 하다.

박복규_Image'0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__2000

박복규는 흔히 정신적인 색깔이라 불리는 청색을 즐겨 쓴다. 스펙트럼의 어떤 색깔보다도 청색은 거의 검정색에 가까운 어두운 청색부터 사파이어 유리색 같이 투명한 것에 이르기까지 음영 또는 농담의 정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이중적인 성격이 강한 색깔이다. 그러나 대체로 청색은 선으로 말하자면 상승하며 동시에 하락하는 힘을 내포한 수직선, 이른바 높이(하늘)와 깊이(바다)를 상징한다. 따라서 어두운 청색은 검정과 어두움의 의미를 가지며 하늘색은 밝은 노랑색과 같이 흰색 혹은 빛과 연결된다. 결론적으로 흰색과 검정색 사이에 놓인 청색은 색조에 따라 변화하는 평형을 상징한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박복규가 해저풍경을 연상케 하는 캔버스에서 기용한 청록색은 물고기에 적용한 '쪽빛'의 색깔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다시 말해 '쪽'색은 일반적으로 하늘의 색깔을 의미하는 반면 불투명한 청록색은 심연을 상징한다. 아마도 그는 물고기의 형상을 통해 생명의 신비를 일깨워 주듯 청색을 통해 평형의 의미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박복규_Image'0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7cm__2000

보편적인 상징으로 향한 새로운 도상학적 실험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인 측면에서 박복규는 여전히 그가 택한 사물이나 대상에 감정이 이입된 자연주의에 머물고 있다. 극 사실적으로 묘사된 도기의 형상이나 실제그대로 캐스팅한 물고기에서 그의 미메시스로 향한 집착을 어렵지 않게 간파해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일견하면 추상적으로 보이는 화폭도 이러한 오브제의 사실성 때문에 우리는 곧 그것이 해저풍경의 재현임을 깨닫게된다. 그러나 물론 최근작에서 보여주고 있는 양식은 이전의 작업에서 제시했던 서술적인 장치나 설치의 군더더기가 정제되거나 배제되어 그의 접근이 한결 순화, 정련되어 가고있다는 느낌을 주며 재현에서 상징으로 전환하려는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앞으로의 작업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견하기는 어려우나 형식과 내용을 일치시키는 그림의 본질적인 상징체계에 대한 본격적인 시도가 기대된다. ■ 송미숙

박복규_Image'0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7cm__2003

인간본연의 향수를 담은 환상 속의 해저 ● 작품 세계는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관되게 바다를 소재로 하여 전개돼 왔다. 이는 작품의 저변에 바다에 대한 많은 관심과 애정이 흐름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다는 그 소재의 특성상 대체로 만인에게 보편화돼 있는데, 그가 형상화한 바다는 단순히 자연의 바다만을 뜻하진 않는다. 따라서 그의 바다에의 감상은 단지 외양만이 아닌, 작가의 독특한 공간 해석과 작품 의도, 더 나아가 작가가 보여주기 위해 함께 설치한 오브제 등에 대한 진지한 공감대가 형성될수록 더욱 효율적일 수 있다. 그가 시도하는 작품들은 2차원적이면서도 감성에 호소하는 단순한 추상 작업이 아닐 뿐더러, 형을 교묘히 변화시킨 구상주의적 작품 세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바다와 관련된 여러 오브제들은 감상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할 정도로 독특하며 신선해 보인다. 쪽물을 들인 우리 고유의 전통 해녀복, 한지 등으로 만든 물고기 형상, 물의 경계 등을 표시할 때 사용되는 부표, 그리고 바다 속을 잠수할 때 머리에 사용하는 머구리 등 바다와 관련된 다양한 오브제 작품들은 바다나 깊은 해저를 연상시키기에 부족! 함이 없다. 또한 이들 오브제들은 바다 속에서 일어나는 현재와 과거를 단 한번에 들추어내는 연상작용과도 같은 훌륭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박복규_Image'03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_2003

작가는 신안 앞 바다에서의 유물 인양작업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작품으로 연출해보고 싶은 욕구를 지니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로부터 바다와 해저는 30여 년 이상을 그의 애정과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는 이러한 바다를 그리는 데 있어, 그가 오랜 동안 지속적으로 관심을 지녀 온 전통적인 쪽물을 사용하여 자연의 본성을 환기시키고 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한지를 사용하여 물고기나 전통 해녀복 등을 제작하고 거기에 쪽물을 다양하게 들인 것들인데, 쪽물의 농도와 물들인 횟수 등을 달리함으로써 신비하고 미묘한 이미지로 창출되었으며, 은은한 자연미를 아름답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처럼 그는 천연염료인 쪽물로써 바다 분위기를 다양하고도 더없이 신비스런 색상으로 형상화하였다. 전통염색 재료인 '쪽물'은 그의 예술 세계를 새롭고 발전적으로 변모시켰으며, 그가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해저 시리즈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박복규_Image'03_한지부조_68×70cm__2003

해저 시리즈는 그가 보여주었던 전시와는 다른 성격으로서, 작가는 해저의 이미지를 형상화함에 있어, 3차원의 공간 속에 놓여있는 몇 점의 작품들과 평면을 중심으로 한 2차원의 세계가 쪽물을 중심으로 어우러지도록 하였다. 작가에 의해 계획된, 2차원의 세계와 3차원의 세계가 함께 자아내는 해저의 공간감과 색감은 가히 환상적이고 신비스럽다 하겠다. 목선의 잔해, 신안 앞 바다의 유물, 잠수부들의 머구리, 쪽물 들인 해녀복 등의 인간의 부산물들은 물 자체(物自體)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뿐만 아니라, 호기심과 함께 바다 속 미지의 세계에 대한 미묘한 감흥을 선사한다. 또한 그는 마치 바다의 생명과 기운을 옮겨오듯 쪽물을 풀어 보이기도 하고, 바다에 떠있는 부표를 설치 식으로 펼쳐놓기도 하며, 너무 낡아서 곧 부서질 것만 같은 허름한 노를 전시장 안에 옮겨 놓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해저의 신비와 환상을, 작가의 본능과 치밀한 상상력에 의존하여, 보다 촉각적이면서도 명료해 보이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전환시키고 있다.

박복규_해저_실물 오브제, 혼합재료_가변크기, 설치_2003_부분

거대한 자연의 일부이자 끝없이 펼쳐지는 미지의 바다를 작은 공간에 선보이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운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환영(幻影)과 신비스러움, 자극적인 에너지, 신체적인 촉감과 감흥 등이 흐른다. 이는 자아에 대한 극적인 표현 및 꿈과 기억, 바다라는 시적 카타르시스와 본질에 대한 환원 등의 상호작용으로 긴장감이 형성되어 이루어진, 자연의 본성에 대한 작가의 감성적 교감이라 할 수 있다. ● 이처럼 박복규의 작품은 서구의 자연주의적 바다나 초현실주적인 바다가 아닌, 쪽물이 드리워진 우리의 바다 모습을 담고 있다. 그의 심연의 감성을 이루는 근본적인 모티브이자 예술적인 원인자라 할 수 있는 쪽물은 우리의 정서를 바탕으로 할 뿐만 아니라, 바다 속의 세계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의 깊은 해저를 통해서 현대인의 고독한 삶이 지향하는 우리 본연의 향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 장준석

Vol.20030521a | 박복규 회화.설치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