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핀 꽃

김정아 회화展   2003_0521 ▶ 2003_0527

김정아_무제_철, 동가루_각 80×80cm_2003

초대일시_2003_0521_수요일_05:00pm

인사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3층 Tel. 02_735_2655

외부의 영향이나 유행하는 화풍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듯한 느낌의 작품을 보여주던 김정아의 새로운 작업들을 보기 위해 그녀의 작업실에 들렀다. 온통 옥색의 화면으로 이루어진 그림에는 여전히 그녀의 실험성과 정열이 무작위의 선들을 함께 화면에 드러나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렸다고 주장하는 작가의 말과는 달리 엄청난 계산과 치밀한 작업 준비가 있지 않으면 표현하기 힘든 화면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 철가루와 동가루를 이용한 것이 그렇고 그것들을 바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부식액을 발라 부식시켜가며 그 부식된 화면이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그렇다. 철이 부식된 곳은 붉은 녹물의 색이 우러나고 동이 부식된 곳은 오래된 청동조각상이 보여주는 옥색의 부식 꽃이 핀 것처럼 보여진다.

김정아_무제_철, 동가루_각 80×80cm_2003

작가는 한국화에서 그림을 시작했지만 요즘 일고 있는 한국화의 다양한 실험과 파격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 중에 하나다. 의도적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기질과 성향이 늘 새롭고 개성이 강해서라고 보여진다. 철과 동이라는 금속 재료는 상당히 자연적인 재료이며 어찌 보면 한국화재료 중의 하나인 석채의 느낌을 많이 닮아 있다. 작품의 제작과정을 듣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부식된 그림이라고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옥색의 화면은 마치 옥색 칼라를 바른 위에 드로잉을 한 것처럼 선명하고 아름답다. 작업과정은 광목을 사용한 바탕화면 위에 수성잉크로 밑 작업을 한 뒤 철가루와, 동가루를 접착제로 부착시키다. 그 위에 부식액을 바르며 그림을 그려나가면 부식액을 바른 곳은 색이 변하면서 형상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가끔은 그 위에 유리가루를 발라 그림의 질감을 달리하기도 하면서 변화를 준다.

김정아_무제_철, 동가루_80×80cm_2003
김정아_무제_철, 동가루_80×80cm_2003

약간의 형상으로 비춰지는 꽃에 대해 작가는 그것은 희망이나 친근함이나 따뜻함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희망을 의미하는 형상은 철과 동을 일부러 오랜 시간을 앞당긴 곰삭은 화면에서 피어있다. 작업을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면서 또 지극히 공적인 일이기도 하다. 작가의 생각처럼 시대적인 미술의 흐름과 움직임에 동조하지 않고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작가의 작업이 공적인 것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작가의 사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작품이라 해도 그것이 발표되고 전시가 이루어지는 순간 공적인 일이 되고 보는 사람의 느낌과 감정이 함께 하면서 작품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작가가 의도한 바만이 보는 사람이 느껴야하는 이유도 없는 것이다. 작가의 주변과 삶은 너무도 평온하고 일상적이고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의 분위기이다. 이 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오래된 편안함과 따뜻함, 소박함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를 바란다. 그것이 자신의 일상이기도 하고 타인들에게 보여질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재료 자체가 주는 원시성과 친근한 소재로 이루어진 그림은 시간을 인위적으로 지나쳐있다.

김정아_무제_철, 동가루_80×160cm_2003_부분
김정아_무제_철, 동가루, 잉크_80×160cm_2003

일반적으로 작가는 일반인들이 갖고 있지 않은 시각과 표현방법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좀 더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예민함으로 사물을 대하고 표현하는 것이 작가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작가 김정아의 경우 그러한 예민함과 뛰어난 감성으로 주변의 흔한 소재를 표현하여 보여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꽃을 그리고 표현하지만 김정아의 경우는 또 다른 그녀만의 언어로 어렴풋한 형상으로 다가서게 하고 있다. 늘 무엇인가 꾸며 대고 실험하고 그 결과를 비교해 보는 과정들을 거쳐 오래된 편안함으로 화면을 보여준다. 마음속에 있는 현상을 작가의 흥에 겨워 그려대는 것은 일종의 유희이고 놀이라고 할 수 있다. 뭔지 모를 재미와 흥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 나름대로의 고민을 안고 가는 것이 작가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닮음! 닮지 않음의 미(不似之似의 美)라는 말처럼 그것은 닮음과 닮지 않음의 경계에서 있는 듯하다. 그저 수묵화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한국화라고 하는 것이 어떤 족쇄처럼 자신의 표현에 한계를 지우는 것 같다는 이유로 다른 재료들을 실험하게 되었다고 하는 작가의 그림은 어느덧 동양적인 그 표현법과 너무도 닮아 있다. 어떠한 형상을 묘사하고 재료적인 물성으로 화면을 누르는 것보다는 사유와 여백이 있는 그러한 공간에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더욱 친근함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 임연숙

Vol.20030519a | 김정아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