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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강미선_윤연원_김순철_김경희_최미수_이은호_한명진_이은경 김영화_유미란_정현순_강경아_이수진_김선강_조현남_하연수 이준희_이은정_윤희정_안진의_홍지윤_조미영_김수영_이은아 박현정_이진원_이희정_이여운_임경희_정혜정_구본아_유윤빈
마로니에미술관 소갤러리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602
본디 동양의 회화라는 것이 서양과 달리 외관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심상과 삶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려진 것보다도 더 먼저인 것이 그리는 사람의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 이는 그저 '그림은 바탕을 이룬 후에야 그려진다'는 고전의 한 구절을 읊어 훈계하려는 속셈으로 들먹이는 것이 아니다. 비록 아직 바탕은 잘 닦여있지 않더라도 그려진 작품에 비추어 그린 사람의 마음과 삶을 짐작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동양 회화의 사고를 되새겨 보려는 의도이다. ● 그렇다면 동양의 회화를 보는데에는 우선 사람을 먼저 생각하며 그린이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무슨 해괴한 독심술을 익혀 족집게점쟁이처럼 섬찟하게 그림을 읽어내라는 것이 아니라 느낌으로 그린이의 마음을 넉넉하게 포용해 보라는 것이다. ● 이쯤 되면 눈치 빠른 사람들은 동양의 회화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양의 회화에서는 그린이 뿐만 아니라 보는이의 마음가짐에도 무척 중요한 위치를 부여한다. 그래서 오히려 그려진 대상 또는 작품은 별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경우마저 생길 수도 있다. 그저 작품은 그린이와 보는이 사이에 위치하여 마음을 연결해주는 통로로서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면 작품의 잘됨과 못됨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저 그린이와 보는이의 만남이 잘됨과 못됨을 결정할 뿐이기 때문이다. ● 이는 작품이 지니는 고유한 가치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단순히 그려진 대상으로서만 취급되는 작품을 떠나 존재할 수 있는 작품의 더 커다란 의미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어차피 벙커씨유 또는 카본블랙으로 먹물을 만들고 창호지와 화선지도 구분 못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동양과 서양을 구별시켜주는 것보다 서로 같다고 믿게 만드는 일상에 더 익숙해져 있다. 이제 남한이라는 지역은 지리적으로만 동양일 뿐이다. ● 그렇다고 동양의 회화가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사람의 마음마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서 서양을 닮아가려는 동양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예술에서 동양을 닮으려는 서양의 노력들이 상당히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 노력의 근저에는 동양과 서양을 떠나 '상상력'이라는 인간만이 지니는 마음의 힘이 있었다. ● 그래서 새로이 발견하는 '상상력의 힘'으로 사무엘 테일러 코울리지(Samuel Taylor Coleridge)는 1차 상상력과 2차 상상력을 구분하였다. 생각으로 1차 상상력은 그린이의 마음에 더 밀착되어 있다. 그리고 2차 상상력은 보는이의 마음에 더 가깝게 위치한다. 즉, 1차 상상력의 힘으로 작가는 작품을 완성시켜 굳어진 상상력을 제공하고, 2차 상상력이 지닌 재창조의 힘으로 관람객은 살아있는 상상력을 꿈꾸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완성된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아비 없는 자식'이 된다는 현대미술이론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 그렇다면 여전히 그린이 못지 않게 보는이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이 지점에서 동양과 서양을 떠난 소통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2003년 『여백』展의 주제는 '소통'이다. 32명의 젊은 작가들이 40×40cm의 작은 박스 안에 작품을 담았다. 즉, 각자의 마음과 삶을 흡입하여 작은 박스 안에 응고시킨 것이다. 이제 이 응축된 상상력들은 보는이의 상상력으로 다시 현실로 되돌아가 용해되고 확산되고 분산되기를 원한다. 그것이 마음을 담은 작은 그림상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소통』이기 때문이다. ■ 최금수
Vol.20030517b | "여백"2003_소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