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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imA_여성미술가들의 현실
2003_0524_토요일_02:00pm 발제_이선영_윤재갑_이정우
일민미술관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번지 Tel. 02_2020_2055
예술, 교육, 사회분야는 물론 과거에는 남성들이 독점하던 분야들에서도 여성의 지위나 역할이 주목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사회가 그만큼 외형적으로 성숙해졌음을 의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적으로도 여성의 지위가 남성의 지위와 질적인 대등함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 미술계에서도 여성작가들의 작업 활동이 예전에 비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작업의 성숙기라고 할 수 있는 40대를 고비로 여성이 그 역량을 지속적으로 발휘하면서 영향력 있는 작가로 자리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로 보입니다. 우리사회가 외형적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깔린 여성에 대한 제약 또는 편견이 자리하고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 일민미술관은 여성작가들로 구성된 전시를 기획하여 이들에게 그들의 작업세계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아울러 그들의 작가관이 더욱 탄탄히 구성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습니다. ●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세 작가들은 80년대 초 대학생활을 경험했고 이제 막 40대에 들어선 여성작가들이라는 공통점 아래 서로 다른 개인사적 시츄에이션을 경험하며, 미술가의 삶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작가들입니다. 이들은 전업작가로 명성을 얻지도 못하고 대학에 변변한 자리를 얻지도 못한다거나, 주부라는 일차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남성들만큼 작업에 진력할 수 있는 상황이 가능하지 못하다거나, 또는 여성성이라는 장점을 이 사회에서 펼쳐보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 등 '여성'으로서 겪게되는 사회적 제약들을 경험합니다. 이 작가들은 이번 전시에서 그간의 작업을 업그레이드시키며 그들의 '끝나지 않은 내러티브 endless narrative'를 이어갑니다. ● 한편 이 전시는 서로 다른 장르(서양화, 한국화, 조각)의 서로 대비되는 성향(염성순: 상징적 에로티시즘, 강미선: 한국적 미니멀리즘, 유현미: 세련된 여성성)의 작업 세계를 지닌 3명의 작가들을 선정함으로써 마치 트라이앵글의 세 꼭지점을 이루듯 생생한 긴장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 전시의 완결성을 갖고자 했습니다. ● 이 전시가 비록 3인으로 구성된 그룹전이지만 개인전 3개의 규모로 작업에 임한 세 작가들에게 발전이 있길 바라며, 아울러 이 전시가 진정한 미술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여성 미술가들에게 힘이 되어 주길 기대합니다. ● 염성순은 자유분방한 예술가의 정신 세계를 가진 작가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보헤미안적 자유로움을 포용하기에는 아직 우리 사회의 의식이 작가에게, 특히 여성 작가에게 그다지 너그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 작가에게 작업이란 경쟁과 학벌주의로 얼룩진 현대 사회에서 겪게 되는 내면의 상처를 보듬어 가는 과정입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여성 특유의 에로티시즘과 잠재된 욕망 등을 드러내고 있으며, 끊임없는 붓질과 펜 놀림을 통해 여성 미술가라는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힘든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합니다. ● 강미선은 주부로서, 여성으로서 누릴 수 있는 삶의 소중함을 주목하며 그 연장선상에서 작품의 주제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그녀의 작업에는 밥상, 사발, 수박, 꽃 등 가정주부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는 대상들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강미선 작업의 특징은 작가가 강조하는 사소한 소박함으로 어우러진 것이라기보다는 삶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작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정신적 수행으로서의 자세와 한국적 조형미를 생산해 내고자 하는 작가의 열정을 보여주게 됩니다. ● 유현미의 작업은 세 작가 중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된 여성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꿈에서 겪는 낯설거나 또는 매우 낯익은 경험들에 대한 깊은 호기심은 작품의 주요한 주제입니다. 작가는 뉴욕 유학 시절의 작업에서 개인적 혹은 여성적 욕망을 신화를 차용하여 드러내며 현실의 비현실적인 설정에 관심을 두었고 귀국 후의 작업에서는 남성 중심적 한국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을 통해 느끼게 되는 이방인과 같은 낮설음과 공포증적 증세를 보여주었습니다. 최근에는 퍼즐 작업을 통해 무의식의 구조화에 관심을 보여줍니다. 이 퍼즐 작업은 그 내용이나 대상의 폭이 넓어지면서 나와 주변과의 소통에 대한 욕망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 일민미술관
Blank Puzzle ● 이번 출품작들은 97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다양한 재료들과 변형된 형태로 계속 되어온, 퍼즐을 주제로 한 조각 및 설치 작품들이다. ● (꿈) 무의식의 실체 = Blank Puzzle. 이 공식은 나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여기서 'Blank'라는 말은 '아무 것도 없는'의 뜻으로 , Blank Puzzle은 이미지가 없는 상태의 퍼즐로 , 한판의 퍼즐을 뒤집어 놓은 상태와 흡사하다. ● 퍼즐작품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다. 1997년 어느 날 아들과 함께 퍼즐놀이를 하다가 우연히 뒤집혀진 퍼즐을 발견했다. 나의 눈에 목격된 그 뒤집혀진 퍼즐은 나를 상상의 세계로 끌어가게 된다. 완전한 그림이 있는 한 조각의 퍼즐이 한가지의 기억에 해당하는 '현실의 한 조각'으로 생각해 볼 때, 그 뒷면은 그림이 없는 퍼즐로서 잃어버린 기억 혹의 꿈 등의 한 조각처럼 생각되어졌다. ● 나의 작품은 이러한 그림 없는 퍼즐로 상징될 수 있는 꿈, 잃어버린 기억 등을 퍼즐들을 변형시키고 재구성하여 표현하였다. 창문, 거울 ,계단 등의 오브제 같은 형상을 한 입체작품은 대체로 두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창문을 통해서 보여지는 퍼즐화 된 풍경, 거울에 반사되어진 해체된 공간 , 공중에 부유하는 계단 등에서 현실과 꿈의 사이를 모호하게 왕복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 유현미
환영은 근원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모사이다. (르네 위그) ● 방 두 개에 살고 있다. 한쪽 방에서는 작업을 하고 저쪽 방에서는 환멸을 한다. 밤새 예술의 무의미로 치를 떨다가 아침이면 지난밤의 어지러움을 통째로 부정이라도 하듯이 후다닥 선을 긋고 색깔을 칠하며 그림 앞에 주저앉아있다. ● 욕망과 피묻은 떡과 담배연기가 범벅이 되어 나는 서서히 사라진다. 이 좁은 방에서 나온 그림들은 일종의 일탈, 심연, 하강, 도취, 의식상실, 이런 것들이다. 사라지는 '내`가 불안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이젠 저쪽 방으로 가고 싶다. ● 일상, 편안함, 나른함, 권태와 동시에 회의의 물결이 또 나를 덮친다. ● 방 두 개의 삶. 두 개의 방 사이에 걸쳐있는 이 육신. 머리는 이쪽에, 꼬리는 저쪽에. 슬프고 우스꽝스러운 이 풍경을 누군가는 보고 있을 것이고 나는 꺼칠한 검은 껍질로 떨고 있을 뿐이다. ■ 염성순
길을 간다. ● 길 위에 서있을 때 / 나는 살고 있다. / 내가 서 있는 이 길은 / 서 있어야 할 길인지 / 내가 서서 바라보는 이 풍경은 / 기쁘게 숨쉬고 있는 건지 ● 길 위에 서서 / 길의 끝을 생각하지 않는다. ● 비록 같은 자리를 맴돌더라도 / 지금 나즈막히 부르는 / 이 노래가 가볍게 들릴지라도 / 나는 느끼며 가고 싶은 것이다. / 나는 보고 또 손을 뻗어 / 만져보고 싶은 것이다. ● 그리고 / 오늘 그 길 위에 서있다. / 내내 내리는 비도 가슴에 받고 / 탁하게 불어오는 바람도 눈으로 담아서 / 뒤늦게 걷고 싶다. ● 부지런히 / 길을 간다. ■ 강미선
Vol.20030513a | 미완의 내러티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