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을 각성하기 위한 '느림'의 매개물

권수연 조각展   2003_0507 ▶ 2003_0513

권수연_새로운 탄생Ⅱ_나무_152×70×155cm_2002

초대일시_2003_0507_수요일_05:30pm

관훈갤러리 신관 1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비트의 속도가 현실을 지배하고 디지털 코드가 사회문화 현상의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현시점에서 우리는 다시금 조각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전통적인 과거의 재료를 부여잡으면서 새로운 의문을 제기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조각의 전통적 재료나 방법론 자체가 여전히 유효한가 아니면 폐기해야 하는가의 보다 근원적인 질문으로 회귀되곤 한다. 그렇게 우리는 벤자민 부흘로가 지적한'조각적 본성과 물질적 타자 혹은 상황'사이를 불안하게 왕래해야 하는 시간 속을 거닐고 있다.

권수연_탄생I_나무, 테라코타_55×162×46cm_2002

권수연의 작업은 동시대 영상문화의 지배적 구조 속에서 견고한 물질과 전통적인 조형요소 혹은 재료의 가공에 수반되는 노동과 기술의 가치가 희박해져 가는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웰딩과 카빙의 전통적 방법론을 고수하면서 나름의 내재적 고유성과 완결성을 좇고 있다. 동년배 젊은 작가들의 관심이 매체의 확장이나, 미디어의 적극 활용, 양식적 해체의 징후 사이를 서성이고 있는 가운데 권수연은 고집스럽게 재료를 통한 자기충족적 의미도달 방식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업이 안온한 방식 주위를 건조하게 맴돌거나 혹은 그 물성의 실험이라는 것이 완만한 자기장식적 매만짐의 정형화를 또 다시 구축하고마는 지경에 머물더라도, 적어도 그의 작업이 자신의 작품명제처럼'새로운 탄생'을 기약하는 수준을 담보한다면 단순한 로우테크로의 회귀 차원보다는 멀고 깊은, 어떤 운명론자의 소명의 행보에 가까울 수 있다는 유쾌하고도 건강한 예감을 가져본다.

권수연_성장_나무, 테라코타_72×188×116cm_2002

권수연의 작업은 자연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테제를 설명하기 위한 서술적 제재 그 자체가 주제인 경우로 읽혀진다. 그의 작업은 자연의 원천을 탐구하는 지점에서 특별한 서정성과 에너지를 상징하는 충만한 생명력을 추적하고자 한다. 즉 거스르거나 반박할 수 없는 자연의 신성함과 초월성을 잉태하면서 동시에 거시적으로는 빠름의 지나침을 각성하기 위한'느림'의 매개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나무의 원형을 유지시키면서 외피를 깎아내고 그 흔적들을 동시에 제시하거나 절단된 나무에 테라코타나 철 등의 이질적 재료를 결합시키는 그의 작업은 초월적 대상성을 지니는 나무와 시각적 구조물의 결합을 통해 자연의 보편적 부호와 인위의 조작이 혼합된 비논리적, 초자연적 생명력을 표출시킨다.

권수연_결합_나무, 철, 테라코타_58×210×110cm_2002

가령 잘려진 나무에 유기적 곡선 형태의 철이 결합되고 원형의 테라코타 형상이 사이에 놓여진 「결합」시리즈는 그러한 이질적 요소들의 대립항이 아닌 물성과 조형의 어우러짐을 통해 융합과 조화, 균형을 추구하는 변증법적 통일에 대한 제안으로 다가오며, 불에 그을린 나무의 원형을 파내거나 그 갈라진 틈새에 알을 연상시키는 유기적 형상을 삽입시킨 '새로운 탄생', '탄생'시리즈들은 자연현상을 여과 없이 조각의 형태로 제시하는 방법론으로써, 마르고 비틀어진 수축·이완 현상이 그을림과 깎아냄이라는 인위의 행위성을 품고 있는 형국을 보여준다. 그러한 상황의 한켠에서 나무의 본체에서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다시 재결합될 때 그것은 시차를 둔 또 다른 궤적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다분히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순환의 질서를 재창조하게 된다. 또한 원형의 테라코타 형상들이 나무조각들 위에 놓인 '씨앗'은 결국 노화된 생명체의 소멸과정 이후의 '새로운 탄생'을 개념적 연장선상에서 재인식시키는 상징적 기호로 기능하기도 한다.

권수연_무제_나무_30×85×7cm_2003_부분
권수연_무제_나무_30×85×7cm_2003

이러한 권수연의 고집스러운 작업이 농익은 형식미를 추구하며 나무의 현존성을 강렬히 파고들 때, 관념의 도식에 형식적 완결성을 부여하기 위한 물성의 실험과 노동의 수반이라는 것이 자칫 구태를 벗지 못하고 독창적 창조의 본질을 창백하게 비켜 지나가지 않길 충고해 본다. ● 그가 향후 작업에서 관심의 지평을 단순한 자연주의적 시각에 가두지 않고 자연, 역사적, 더 나아가 문화인류적 관심까지를 오늘의 삶의 방법으로 재탄생시키는 방식으로 넓혀 나갈 때, 또 하나의 젊고 우직한 작업은 보다 개방회로적인 지향점을 찾아 입출이 가능한 경험의 형태로 이미지의 욕망과 더욱 자주 붙거나 떨어지는 파열음을 생산해내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이원일

Vol.20030508a | 권수연 조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