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3_0423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강미경_배성환_신수진_안미선_양현정 오재규_이종송_이지언_최일
갤러리 마이아트(구 보다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9번지 Tel. 02_723_4742
공주는 쓸쓸하다. 공주라는 도시 이름 앞에는 늘 '백제의 고도'라는 수식어가 무슨 장식처럼 붙곤 한다. 그러나 공주는 왕관처럼 화려한 그 수사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도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공주는 백제의 수도였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소박한 도시다. 크기로만 치자면 경주도 대단한 도시는 아니다. 그러나 경주는 여전히 당당하다. 대능원, 불국사와 석굴암, 안압지, 첨성대와 천마총, 분황사탑과 황룡사지, 포석정과 남산, 월성과 김유신 장군묘, 성덕대왕 신종과 경주국립박물관에 그득한 유물들, 감은사지와 대왕암…. 이에 비하면 공주는 참 보잘 것 없다. '내가 한때는 백제의 수도였다'고 당당하게 웅변할 만한 변변한 유산을 이 작은 도시는 갖고 있지 못하다. 공주국립박물관과 무령왕릉 정도가 유산이라면 유산이겠으나 경주에 비하면 무게가 한참 기운다. 패망한 왕조의 뒤끝은 이토록 참담하고 허망한 것인가? 다시 한번 말해보자. 공주는 쓸쓸하다. 그러나 공주는 그래서 안쓰럽고 애틋하다.
지난해 가을부터 나는 이종송 교수와 백제실크로드를 답사하고 있었다. 백제는 수도가 한성, 곧 지금의 서울에 있을 때만 해도 황해도를 통해 중국과 교류하고 있었다. 그러나 황해도와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내준 5세기 후반부터는 육로가 막히자 하는 수 없이 서해를 통해 교류를 하였다. 지금도 교류의 흔적은 지명과 문화유산으로 충청도 땅 곳곳에 남아 있다. 당진이라는 땅 이름이 그렇고, 태안과 서산, 예산의 숱한 불교 문화재가 그러하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과 교류하던 옛 길을 '백제실크로드'라고 이름 지었다. 그리고는 서산과 당진, 예산과 공주, 부여와 익산, 백제의 선진문화가 흘러들어간 흔적이 남아있는 경주까지 따라가는 긴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공주는 백제실크로드 세 번째 답사 일정에 잡혀 있었는데, 두 번째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이종송 교수가 색다른 제안을 했다. 여러 화가들과 함께 공주를 답사하여 백제의 숨결을 담아보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주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나는 크게 흥분하고 있었다. 한국화과 서양화, 조소와 사진으로 보는 공주와 백제는 어떻게 다를까? 게다가 같은 양식이더라도 어떤 화가는 구상으로 또 어떤 작가는 비구상으로 백제를 볼 게 아닌가? 아홉 명의 작가의 손에서, 각기 다른 풍경으로 부활하는 백제의 모습.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은가. ● 우리는 공산성과 무령왕릉, 갑사를 둘러보았다. 공산성은 백제의 왕궁이 있었던 곳이다. 공산성은 참 아름답다. 계절마다 다른 빛깔과 향기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매력적인 성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백제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다 헤지고 망가져서 연못터와 왕궁터만 있을 뿐 나머지는 후대의 유적들이다. 공산성에, 백제는, 없다. 그래서 슬프다.
무령왕릉에서 백제의 미술을 만나다. 우리 미술사에서 보면 무령왕릉은 특별한 존재이다. 그 안에서 나온 숱한 유물은 어떤 식으로든 미술과 연결되어 있다. 금속공예와 목공예, 회화, 조각, 도예와 관련된 유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무령왕릉은 백제의 문화, 그 중에서도 미술의 수준의 꽤 높았음을 웅변해주고 있다. 특히 무령왕비의 목침에는 비천상과 거북, 인동 문양, 태양과 용 그림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2003년 초봄, 21세기를 살아가는 화가들이 1500년 전의 장인과 화가를 만나고 있었다. 백제 예술의 숨결을 느꼈기 때문일까? 작가들의 눈빛은 무령왕릉 유물 앞에서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우리가 본 것은 어쩌면 백제 시대 최초의 그림이 아니었을까?
갑사는 1600년을 헤아리는 고찰이다. 그러나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백제의 문화재는 다 사라졌다. 답사객의 허망함을 아는 것일까? 당간지주를 감싸고 있는 대숲이 '괜찮아, 괜찮아' 소리 내며 일행의 마음을 위로해준다. 세월은 의구하고 백제는 간 데 없으나, 그래도 갑사와 그 주변에는 우리의 눈길을 당기는 몇몇 유물을 만날 수 있다. 당간지주와 철 당간, 조각 솜씨와 입체미, 균형미가 돋보이는 부도, 그리고 스님과 아리따운 처녀가 의남매를 맺은 사연이 깃든 오뉘탑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 유물들은 안타깝게도 백제의 것이 아니다. 그마나 다행스러운 것은 이 유물들이 한결같이 백제 예술의 숨결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신라 혹은 고려의 것이지만 백제 문화의 기품과 향기를 품고 있다. 백제 땅에 사는, 백제의 장인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리라. ● 아홉 명의 화가는 다들 마음속으로 백제를 상상하며 갑사를 내려왔을 터이다. 그리고 그들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에 내면의 울림을 보태어 새로운 시선으로 백제를 보았을 것이다. 『백제의 숨결』展은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경험한 백제의 또 다른 모습이다. 백제는 지금, 그림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 유명종
Vol.20030425a | 백제의 숨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