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한성대학교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3_0419_토요일_04:00pm
A&D Gallery 서울 성북구 삼성동2가 389번지 한성대학교 교수연구동 1층 Tel. 02_760_4271
살아가는 건 매일 반복해서 머리를 빗는 일과 같다. ● 하루 일과를 시작할 때 거울을 바라보고 헝클어진 머리를 바로 잡는 그런 사소하고 밋밋한 일들 말이다. 잠시도 가만히 계시질 못하시는 어머님은 집안 일을 하시면서 곧 평화롭고 조화롭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살아가시는 것처럼 보인다. / 하지만 그런 기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메아리처럼 공허하게 몇 배 더 울려서 더욱 바쁘게 몸을 놀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으로 자신을 이끌어 가신다. / 속담에 자신을 보고 상황을 판단해 라는 뜻의 '너 자신을 알라', 혹은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맞는 것을 벌써부터 찾은 상태에서 유지하려는 아님, 같은 상태로 지속시키려고 할 때나 어울릴 말처럼 보여서 뻔한 거짓말이 아닌가 의심이 갔다. / 머릴 감는 게 귀찮다고 해서 내 머리카락을 따로 떼어서 어떤 특수한 처리가 된 환경에서 유리시켜 보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드라마 주인공처럼 번쩍거리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지녔다고 해서 영원히 빗질을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 매번 반복적으로 빗질을 할 수 있는 것은 무수히 쌓이는 시간 속에서 약간의 다른 변화가 자신을 이끌고 사소한 것이지만 생각이 계기를 만들고 변화되어 간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 나의 작업은 우선 나와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 사람들은 자신을 인식하면서부터 서로의 관계를 인식한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외계와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고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 / 보행자인 난 신호등을 보면 빨간 불은 정지하고 파란 불은 건넌다는 의미를 떠올린다. /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이런 사실은 인지하고 따라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의 가슴깊이 들어있는 '마음' 이란 것은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 난 개인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엄청난 콘크리트 숲 거대한 빌딩 사이에서 겨우 올려다본 하늘이랄까? 혹은 겨울 바닷가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게 될 때 느끼게 되는 일종의 무지막지한 당혹감, 무력감 같은 것 말이다.
'특수상대성 이론'은 일종의 대칭이론이다. 이 이론에서 어떤 변환(Lorentz)하에서 변하지 않는 량이 존재한다. 이것은 4차원 시공간에서는 두 사건들 사이의 간격이지만, 이것을 3차원적으로 이야기하면 일종의 막대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막대는 여러 기준틀(reference frame)에 따라 그 모양이 달리 보이지만, 각 기준 틀에서 그것의 길이를 구해보면 어느 기준 틀에서나 항상 같다. 따라서 특수상대론은 변화하는 현상의 배후에 변하지 않는 실제(reality)가 존재한다는 실재론적 입장이라 할 수 있다. 특수상대론의 의미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같은 대상이라도 보는 입장에 따라 달리 보인다."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보는 입장'이란 기준 틀을 가리키고, '달리 보인다는 것' 은 물리적으로는 다르게 측정된다는 말이다. / 예를 들면, 기준 틀에 따라서는 어떤 사람에게 1년의 세월이 흐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30년의 세월이 흐를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마음의 기준틀'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일는지 모른다. / 왜냐면 사람은 숙명적으로 자신의 눈으로 밖에, 자신의 마음의 기준 틀로 밖에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없으며, 그것은 언제나 사물의 전체를 동시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_윤철실, 「두 세계를 위한 조그마한 이해」, 『공장미술제 blind love』, 2000
난 생활에서 가장 가깝고 편안한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기하학적인 형태들과 변형이 용이하고 대량 생산 되어지는 공업용품에서 재료로 찾아보려고 했다. / 왜냐면 주변에 널리 쓰이는 것은 미술용품보다 공업용품이 더 폭넓고 용도가 명확하고 시효가 더 짧다는 것이 나의 생활과 밀접하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그러던 중, 비가 내린 뒤 고인 물은 내가 보는 시점에 의해 다르게 비쳐진다는 사실과 시시각각 다르게 감정을 갖고 다가온다 라는 것을 발견했다. 누구나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지만, 세상은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어떤 시각을 갖느냐에 따라 대상은 감춰지고 때론 드러나기도 한다. 난 여기서 가장 기본적인 '수평'과 '수직'으로 상황을 고인물 웅덩이로 시각화시켰다. 이 웅덩이들의 전체적인 통일감을 주기 위해 기하학적인 형태를 나열하는 방식을 취하게 되었고, 이것은 공간 안에서 '원'이면서 '타원'의 구조를 지니게 된다. 하나의 소실점으로 멀어진 대상은 하나의 시점으로 단조롭게 자신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평과 수직으로 바라본 웅덩이들의 표정은 하늘에 떠있는 달과 무수한 별빛으로 자신의 모습을 반사하고 흡수하고 대응적인 관계를 드러낸다. 결국은 사물들은 제각기 스스로를 마주하고 있는 거울과 같으며, 그것은 인간의 희로애락과 같이 끊임없이 생성하고 빠르게 변화해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여기에서 착안을 얻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 주변은 점들이 모여 만든 형태들, 종이컵, 사기접시, 스텐손잡이, 둥근 모양의 테이플보, 날카로운 주전자뚜껑, 유리잔 속에서 출렁이는 고인물, 의자바퀴의 어지러운 형태, 수많은 물방울들, 둥근머리을 감춘 제각기 다른 머리카락들, 단추들의 질감, 의자들간의 공간감, 파란불이 들어오는 전원버튼, 옹기종기 모여있는 달동네의 창문, 덩그러니 떠있는 달, 하늘을 따라 무수히 널려있는 별과 같이 제각기 스스로의 법칙을 지니며 펼쳐져 있다. ● 난 이것들이 매번 다르게 변화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어느 지점에서 하나의 실제로 바라보고 시각화시키려고 생각했다. / 그러면서 사물들의 제각기 특성을 유지시키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열되듯이 형태, 색채를 가지면서 같은 하나의 장에서 변형시키려고 해 보았다. 그리고 또 그것들을 차분히 나열한 다음, 그 속에 펼쳐질 상들을 거꾸로 따라가 이미지를 연상해 보곤 하는데, 그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처음 작업들의 출발점이기도 한 것이다. ● 그것은 이미지가 없이 홀로 떠있는 행성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때론 무리를 이루어 움직이는 물체를 기록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중에 부유하는 사물의 그림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금방 튀어나올 물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 그것들은 또 상이한 빛깔, 질감, 무늬를 다양하게 반복적으로 되풀이하여 나타난다. 광택 나는 표면 위에 미끄러지기도 하며, 번쩍번쩍 광채를 띠며 꿈틀거리기도 한다. 혹은 고정되지 않은 천 위에서 그 모습을 간간이 드러내기도 한다. ● 세상의 다양한 환경들과 같이 내가 물질들과 나누어 가진 무수히 많은 관계들은 여러가지 호기심을 만들어내며 기웃거리고 넘실거리고 떠다니고 있다.
내 곁의 전구들은 맹렬하게 팽창했다가 지쳐 쓰러져 있으며, 투명한 페트병 속의 덩어리들은 그 각각 상이한 형태로 볼륨감을 지니며 숨쉰다. 간혹 몸의 신체들은 각각 어떤 부위가 과도하게 커지면서 기형적으로 변형되어 몸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도 한다. 머리는 고무풍선처럼 늘어났다가 금방 시들시들해지는 일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하며 원래 형태로 돌아오곤 한다. 담배상자 속에서는 노란 풍선이 어느새 볼록하게 튀어 나왔다. 홀로그램의 위장무늬들은 비닐 위에 놓여져 본래 물질의 특성인 투명성을 자신의 속성으로 내세우는 것을 비웃기도 한다. 이것은 어떤 환경에 놓여져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 혼란스럽게 공간을 모호하게 인식하게 도와준다. ● 매일 배달된 신문들은 빳빳하게 풀먹인 와이셔츠가 되어 베란다에서 파란 하늘 뒤로 팔랑거린다. 언어의 체계들로 빼곡이 채워져 있는 내 주변의 책들은 날카롭고 불규칙적인 단어나 문장으로 깨어져 잠깐만 바라보아도 상처를 입고 상처를 입힌다. / 선명하고 차가운 파편들은 섬세하게 몸 속으로 파고들어 깊은 곳에 상처를 남기고 다시 아물기 시작한 몸에 조금씩 균열이 가게 만든다. 비닐 위에 붙은 무수한 방울방울들은 혀에 혓바늘이 돋아나듯이 도드라지게 솟아 나와 어느덧 자화상으로 만들어졌다. 물질로 몸의 일부기관의 신체를 대신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다시 확인 받는 방식을 찾는다.
뇌의 호르몬이 신체를 통해서 연결된 신경으로 끊임없이 흘러 자극 받듯이 나의 삶은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간섭받고 침략 당하고 쓸려 나아가고 있다. 믹서(mixer)의 과일들이 몽땅 갈리듯이 나도 누군가와 같이 갈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주장하고 살아나려고 하면, 어느덧 더욱 강한 주장들이 서로 자극적인 음식과도 같이 버무려 결국은 위산과다나 위염과도 같은 스트레스가 만들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자신을 단순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비춰줄 수 있는 그런 색깔의 부담이 없는 식품이면 어떨까? 생각했다. 단순한 것 그래서 거룩하지 않은 것, 위험이 없는 것, 편안한 것 난 그런 것들을 꿈꾼다. / 예전의 화가들은 거룩하고 권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러한 것들이 없더라도 재미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나와 대면한 세계는 하나의 일정한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프로그래밍된 가정된 하나의 프로젝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버스를 타고 어두운 국도의 밤길을 헤치고 갈 때, 낯설게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터널이 눈에 들어왔다. / 그 터널을 통과할 때, 한 점으로 빨려 들어 속도감을 잊을 때, 문득 '이것은 진짜가 아니다' 라는 의심을 한다. 내 눈은 어딘지 모르게 속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것 말이다. 내가 어딘가로 손을 뻗어 보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는 상태의 지속과 행위의 확인뿐,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 / 판타지의 가공할만한 현상이 현실을 압도해 버리듯, 이미 생각들은 현실을 비웃는다. / 과다현상들 과다호로몬 분비, 롤러코스터를 타듯. ■ 김형관
Vol.20030418a | 김형관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