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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보는 가장 깊은 눈 ● 예술을 보는 가장 깊은 시선은 철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1973년 처음 출간된 이래 이 책은 당시 척박하던 학문적 풍토에서 미학, 예술학을 이 땅에 정립시킨 주춧돌이었다. 저자는 너무나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전통미학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예술을 바탕으로 그 철학적 근거를 밝혔다. 이에 많은 이들에게 예술에 대한 안목을 키워주는, 가장 체계적인 이론서라 평가 받아왔다. ● 먼저 예술철학의 기본문제를 다룬 후 현대의 예술이론과 한국미를 다뤘다. 그리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미학 홍익미술?숭대 논문집에 발표된 미학논문을 전재했다.
한국 예술철학의 정체성 찾기 ● 제3부의 '민속예술에 대한 논고', '한국의 전통미와 정통의식', '동서의 인체비례', '예술에서 초월의 문제' 등을 보면 저자의 한국 예술철학에 대한 관점을 알 수 있다. 저자는 현실을 주체적으로 살아낸 예술가로 환기, 중섭, 수근 같은 화가들을 꼽았다. 또한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어떤 형식을 취하든 이어받아야 할 정신을 옳게" 살려서 "자신의 체험미"를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즉, 주체적으로 '정통의식'을 갖고 '전통미'를 계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고유섭 이래 한국 예술철학의 학문적 과제가 『예술철학』에서 일단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학 예술학이라는 학문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동시에, 예술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에 무기력했던 서구 근대미학의 한계를 뛰어넘어 우리의 현실을 끌어안고 있다.
'현대 한국의 명저 100권'에 선정 ● 현재 예술학계에서 활동하는 사람 치고 『예술철학』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이 책은 고전으로 잡았다. 과거와 현재, 서구문화 수용과 전통의 지속, 이론과 실제, 좌와 우, 예술과 비예술 사이의 틈이 아울러지게 하는 이 책이 많은 지성을 감동시킨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그 결과로 이 책은 지난 세기 '현대 한국의 명저 100권'에 올랐으며, 조요한 선생이 국내 최초로 미학부문의 대한민국학술원 정회원으로 추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름다운 삶과 예술을 열망하는 이들에게 ● 저자 조요한 선생은 판을 거듭하던 이 책의 간행을 한동안 멈추게 했다. 두세 편의 글을 덧붙일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머리말을 다시 쓰고, 부분 교정만으로 다시 간행하리라는 말씀을 뒤로한 채 작고하셨다. ● 1973년 출간되었던 『예술철학』을 토대로 한글세대를 위해 한자를 한글 표기로 바꾸고, 각주를 다듬고, 본문에서 언급되는 작품 도판(102컷)을 추가했으며,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부분적인 교정을 했다. ● 예술계를 점령하여 난해한 현대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기본부터 되짚어 가면서 예술철학의 기초와 우리 예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 전공자뿐 아니라 창작을 하는 예술가나 일반 독자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삶과 예술을 열망하는 이들에게 필독서로 잡아왔던, 그 힘이 다시 한번 새롭게 발휘되길 바란다. ■ 미술문화
조요한 趙要翰(1926~2002) ● 1926년 함경북도 경성 출생. 해방과 더불어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하여 동 대학원을 마쳤으며 1956년부터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희랍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예술철학에 정진하던 중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수학하고 숭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김환기 화백과의 만남에서 시작된 예술에 대한 이론적 관심으로 일찍부터 홍익미대에 출강하여 미학, 예술론 강의를 맡았으며, 이후 예술론은 철학자로서 그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으로 남았다. 그 가운데 『예술철학』은 우현 고유섭 선생 이래의 과제를 일단락지으며 이 땅에 미학 예술학을 정초시킨 책으로 평가받아 왔다. ● 예술에 대한 남다른 사랑으로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드리웠다. 한편 그는 현실참여적인 태도를 견지했는데 그로 인하여 유신시대, 1980년 봄과 같은 험난한 시절을 거치며 해직교수로서 고난을 겪기도 했다. 복직 이후에는 숭실대학교 총장, 환기재단 이사장, 한국철학회장, 미술사학연구회장, 한국미학예술학회 고문, 경실련 이사장,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했으며, 1985년부터는 미학 분야 최초의 대한민국학술원 정회원으로 활약하였다. 2002년 3월 4일 지병으로 작고하였다. ● 저서로는 『예술철학』 외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1988), 『조요한 철학에세이1, 2』(1996), 『한국미의 조명』(1999) 등 다수가 있다. ● 『예술철학』은 1973년 경문사에서 처음 출판되었던 것을 올해 저자의 1주기를 맞아 부분개정하여 재출간되었다.
■ 『예술철학』의 목차 제1부_예술철학의 기초개념 서론_예술철학의 과제 제1장_예술의 본성 제2장_예술가 제3장_예술작품 제4장_예술생활 제5장_미의 유형 제6장_예술과 예술사
제2부_현대예술의 과제 제7장_정신분석과 예술 제8장_기술과 예술 제9장_마르크스주의와 예술 제10장_한국 조형미의 성격
제3부_예술이론의 몇 가지 문제 제11장_예술가와 비평가와 미학자 제12장_현대미술에 있어서 추상의 문제 제13장_오브제 미술의 향방 제14장_하이데거와 예술작품의 본질 제15장_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에서의 카타르시에 대한 해석 제16장_민속예술을 위한 미학적 정초 제17장_한국의 전통미와 정통의식 제18장_동서미술에 있어서의 인체비례 제19장_예술에 있어서 초월의 문제
서평_『월간미술』 2003년 4월호, Art Book ● 이 글은 지난 3월 4일로 1주기를 맞은 우리 미학계의 큰 별, 고 조요한 선생의 저작 『예술철학』에 대한 리뷰이다. 아니 추모글이라 해야 옳다. 알다시피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73년에 초판된 이후 『예술철학』은 이 땅에서 예술과 아름다운 삶을 열망했던 이들에게 사유와 실천의 모태가 되었으며 그래서 현대 한국의 명저 100권 목록에 들곤 하던 책이다. 이렇게 이미 고전이 된 책을 향해 나서는 것은 꽤나 무모한 일이다. 하지만 꼭 일 년 전 『월간미술』로부터 떠나신 선생을 기리는 원고를 청탁받고 도대체 어쩌지 못했던 나의 미성숙을 탓하며 용기를 내 보았다. ● 선생을 추모하며 『예술철학』을 비켜가기는 어려운데, 때마침 1주기를 맞아 그 동안 절판되었던 이 책이 부분 개정으로 발간되었다. 아마도 이 책의 진정한 의미는 험난한 시대를 살면서도 그리스 조각처럼 온유하면서도 명료했던 선생의 삶, 그리고 여러 저작과 활동을 배경으로 할 때 제대로 드러날 것이다. 예컨대, 김환기 화백의 기억으로 시작되는 투명하고 맑은 수필 모음집인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한길사, 1996), 제국주의적 외세가 부재로 돌리려 했던 '한국예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시도한 『한국미의 조명』(열화당, 1999), 서구철학의 이상을 캐 들어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1988) 같은 저작들. ● 강의실, 학회, 사석 그 어디서나 늘 분명하고 따뜻하게 전해지던 메시지들. 칼바람 불던 유신시대에서 1980년 '서울의 봄'을 거치며 국민교육헌장 제정 비판으로 입은 필화와 해직 교수로서의 고난 그리고 숭실대 총장 선임과 정부의 추인 거부, 노년의 대학총장과 학술원회원으로서의 활동들… 누가 뭐래도 이 『예술철학』은 때로는 예수 같은 모습으로, 때로는 철학자 칸트 같은 모습으로 비치던 생전 선생이 빚어낸 삶의 의미론적 맥락과 떼어 생각할 수 없다. ● 그래서 난세 속에 예술을 통해 진실을 모색하고 실천적 지혜를 찾아 나섰던 선생은 예술철학자를 넘어 차라리 시대적 명령의 수행자라고 이름해야 할 것 같다. 그 명령이란 나라의 존재가 근본적으로 부정된 피식민적 상황에서, 우선은 서구 수용을 통해 예술학을 건립하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절대화된 타자로 우리에게 다가온 일제나 서구와는 다른 독자적인 미의 척도와 삶의 가치를 확보해 내는 일이었다. ● 그렇게 하여 '예술'에 대한 철학하기를 비로소 이 땅에 정초시킨 쾌거는 무엇보다 이 책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인 가치다. '예술', '예술가', '예술작품', '미의 유형', '예술사란 무엇인가', '예술에 대한 철학하기가 안고 있는 과제는 어떠한 것인가 '하는 근본문제들을 다루는 제I부의 내용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예술철학』에서 간과할 수 없는 매력은 단순한 서구 학문의 수용사적 가치를 훨씬 넘어서 있다. 그것은 역사적 현실과 벌인 실존적인 태도가 뿜어내는 리얼리티에서 비롯된다. 제II, III부의 한국의 전통미나 정통의식, 마르크스주의와 예술, 기술과 예술의 관계, 예술가, 평론가, 미학자의 역할 모색, 추상이나 오브제미술의 진단, 민속예술의 가능 근거, 인체비례, 예술에서 초월의 문제 같은 내용은 그 하나하나가 겉보기에 일관성이 쉽게 확인되지 않지만, 우리 근현대 예술이 안아야 했던 현장의 딜레마들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러니 그 자체가 우리 예술현장에 대한 철학하기의 체계라 할 수 있다. ● "영향을 받았다 안 받았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창의성을 발휘했는가에 문제의 초점이 있다"며 환기, 중섭, 수근 같은 화가들이야말로 서구로부터 유화를 받아들이고 일제치하와 6.25를 거치면서도 현실을 주체적으로 살아냈다는 판단이나, 과거 회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형식을 취하든 이어받아야 할 정신을 옳게 살려서 자기의 체험미를 있는 그대로(如)의 정신으로 제시하여야 한다"는 언급들은 그토록 난무했던 맹목적인 서구 몰입이나 전통 흠모에 대해 이 책이 취하는 태도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 준다. ● 거드름피우는 서구의 예술 개념 앞에서 우리의 탈놀음이야 마법이거나 오락이겠지만 그것이 의도하는 정서의 환기가 활기 찬 더 나은 사회를 건립하는 데 힘이 된다면 그와 같은 예술이야말로 예술의 인간화가 아닌가 싶다.(「민속예술을 위한 미학적 정초」)며 일찍이 옹호하는가 하면, "일체의 유정 중생이 색상만 보고 실상을 보지 못하는 것을 예술작품에 담아 사람의 가슴에 호소하여 깨우치게 하는 것이 종교예술의 기능"이라 하면서도 "교리의 잣대로 종교예술을 측정하는 것은 종교의 생명력을 앗아갈 우려가 있다"(「예술에 있어서 초월의 문제」)며 교조성을 경계하기도 한다. ● 새것, 일본이나 서구 것에 대한 콤플렉스로 신음하면서도 그에 몰입하고,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자기 자신에 취한 국수주의가 넘쳐나던 때, 이렇게 이 글들은 과거와 현재, 근대와 근대 넘어서기, 서구 수용과 전통, 좌와 우, 이론과 실천, 예술과 비예술같이 넘나들 수 없어 보이던 균열과 이율배반을 하나하나 철학적 과제로 설정해 나가고 있다. 이 즈음에 이르면, 우리는 이 책이 서구의 전통미학이 너무나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구체적인 예술현상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이것을 지양하여 미와 예술의 이론을 연결시켜 그것의 철학적 근거를 밝히려 했다는 서문의 취지를 훨씬 뛰어넘어, 이미 상투적인 예술의 근대성과 불행했던 현실을 초극해 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 그런 점에서 이 『예술철학』은 일제강점기에 모국어를 잃은 채 불운한 학창시절을 겪고, 서구의 근현대미학과 그리스철학을 멀리 통과하여, 한 세기가 마감되던 해 가을 『한국미의 조명』으로 귀환한 선생의 역정의 좌표이자 또한 우리 예술학의 이정표였다 해야 마땅하다. 그러니 불행했던 근대사나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초 우리 학계에 논문이라는 글쓰기 형식이 처음 도입되던 시절의 척박하고 남루한 조건들은 이 책에서 결핍 요인이라기보다 오히려 튼튼한 존재론적 지반이 되고 있다. 여기서 불행했던 근대는 초극되고, 일제강점기 고유섭 선생에게서 시작된 미와 예술을 향한 우리의 학문적 프로젝트가 일단락되고 있다. ■ 이인범
Vol.20030415b | 에술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