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축적

오수연 조각展   2003_0402 ▶ 2003_0408

오수연_나무를 바라보다_나무에 혼합재료_가변크기_2003_부분

초대일시_2003_0402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시간의 축적을 통한 자아(自我)의 존재 확인 ● 미술이란 원래 보는 것을 전제로 한 표상(表象) 예술이다. 표상(表象)이란 글자 그대로 '상(象)'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으로, 여기서 상(象)이란 말이 지니는 의미는 문자적 언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즉 '형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또한 형상은 외형적인 형상뿐만이 아니라 어떤 한 형상이 내포하고 있는 이미지나 뜻, 의미 등 정신적인 내용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광범위한 말이다. 따라서 표상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까지도, 상상이나 환상까지도 포함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時間) 역시 마찬가지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에 대한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태도이다. 오수연에게 있어 시간은 그냥 흘러가거나 지나가 버리고 마는 덧없는 것이 아니라 존재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으로서, 작가는 축적된 시간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이미지 작업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나가고 있다. 다시 말해, 오수연에게 있어 시간은 존재를 확인시켜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전제로서 비가시적인 시간이 그것의 축적됨을 통해 가시적인 존재 물질의 형태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오수연_나의 시간을 보다_나무_가변크기_2002~3_부분

이번 첫 개인전에서 오수연이 근본적인 주제로 다루고 있는 것은 바로 '시간과 존재'에 대한 문제이다. 시간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체험되어지는 시간의 흔적들, 즉 경험된 시간, 체험된 시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오수연의 관점은 훗설(Husserl)이나 하이데거(Heidegger)의 입장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존재는 현실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구체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으로서, 현존재의 존재 의미가 바로 '시간성'에 있다고 하였다. 즉 시간성을 존재의미로 갖는 현존재는 시간 그 자체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서, 존재는 시간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오수연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시간의 흐름은 하나의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의 연속체로서 작가에게 있어 시간은 '존재의 확인을 위해' 경험되는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체험되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 오수연의 작품에서 주요 매개체로 사용되고 있는 나무, 좀더 정확히 말해 '나무의 나이테'는 우리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키 워드(Key Word) 역할을 하고 있다. 예술작품이 작가만의 개인적인 정신적 온도를 드러내듯이, 오수연에게 있어 나무는 그의 시간성을 가장 자유롭게 극대화시켜 표현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이 되고 있다. 오수연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을 모아 그것들을 다시 자르고 연마해 새로운 의미체(意味體)들로 탄생시키고 있는데, 오수연의 작품에 보이는 나무의 나이테는 오랜 시간의 흔적이 각인되어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것은 작가에게 있어 일상적인 삶의 흔적, 시간의 흔적,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단면들을 여실히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되고 있다. 아울러 이렇게 표현된 나무의 나이테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과 축적된 이미지로서의 시간성뿐만이 아니라 공간감 역시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오수연_지나간 시간_나무에 혼합재료_가변크기_1999~2003_부분
오수연_지나간 시간_나무에 혼합재료_가변크기_1999~2003

오수연의 작품에는 이처럼 일상적인 삶의 흔적들, 삶의 과정들이 작가만의 시간으로 고스란히 축적되어 있다. 이것은 작가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간 속에 적극적으로 끼어들기를 시도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질문들을 통하여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시간성뿐만이 아니라 자아, 존재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해 나가고 있다. 이것은 결국 작가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 이어져 자신의 사고 경험, 총체적인 경험에 대한 탐구로써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오수연의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나무 형상들은 결국 작가만의 사고와 생각의 단편들 혹은 경험의 단편들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들로서, 이것은 다름 아닌 그만의 언어 형태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표현된 언어 형태들은 작가가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감정이나 사고(思考), 상상력 등을 한꺼번에 총망라해서 표현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들의 순간적이고도 단편적인 이미지 단상들을 하나하나 펼쳐놓음으로써 작가만의 커다란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오수연_나무를 바라보다_나무에 혼합재료_가변크기_2003

이번 전시에서 오수연은 자신의 일상적인 이야기, 삶의 단편들을 좀더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반복과 집적'이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마치 설치 작품처럼 바닥에 놓여진 그의 작품들은 수많은 일상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이 축적된, 오래된 일기장을 펼쳐 놓은 듯 하다. 오수연에게 있어 반복과 집적이란 방법은 일상적인 생활의 의미와 가치관을 드러내 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하루하루 써 내려간 각각의 이야기들은 반복을 통하여 작가만의 일상성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일상성은 삶의 모습을 포괄적으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넓은 의미의 생성, 성장, 소멸되는 순환적 과정, 즉 시간의 과정과 그 시간 속에 존재하는 작가 자신 또한 포함하고 있다. 집적은 바로 이런 개체(각각의 이야기)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것으로, 작가만의 커다란 이야기 보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작가가 단순히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넌지시 들려주거나 보여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수연은 자신의 작품에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오수연의 작품은 시간성을 강조하면서 항상 열린 상태의 경험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관객들의 시·공간적 체험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또 다른 '극(劇, theatre)적'인 상황들을 이끌어 내고 있고 이것은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무한히 연장시키고 확장시키고 있다. ●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들, 작가 주변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단편적이고 암시적인 '시간의 흔적'을 통하여 차분하게 엮어나가고 있는 오수연의 작품은 표면상 작가 주변의 평범한 삶의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여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일상(日常)의 개념 속에는 단순히 한 개인의 '체험과 기억으로서의 일상'뿐만이 아닌 '인식대상으로서의 일상', 나아가 '창조행위의 원동력으로서의 일상'이라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작가가 화두로 던지고 있는 '일상을 통한 시간의 흔적', 그리고 '시간의 흔적을 통한 존재의 확인'은 작가 오수연의 개인적인 시간의 흔적, 기억에 대한 이야기일 뿐만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의 이야기가 아닐까. ■ 이태호

Vol.20030407b | 오수연 조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