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Together

김지애 회화展   2003_0401 ▶ 2003_0419

김지애 작업실에서_February, 200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문화일보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3_0401_화요일_05:30pm

문화일보 갤러리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68번지 Tel. 02_3701_5760

壁門으로 들어가다. ● 나는 개인적으로 김지애의 이번 신작(新作)을 '문이 많이 달린 그림'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의 그림을 보는 것은 양쪽으로 문이 끝없이 달린 무한히 긴 복도를 걷는 것과도 같은 경험이었다. 각각의 문 뒤에는 서로 전혀 다른 다채로운 세계가 존재하지만, 어떤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지 열어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그런 초록색의 긴 복도 말이다. 그리고 이 복도가 멋진 것은, 이 문들을 모두 다 열어 확인해 본다는 것이 영원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이전 작품에서 김지애는 철저한 현실 속 자기 모습을 그려왔다. 어느 한 그림도 자신의 이야기를 벗어나지 않았고, 사랑, 성(性), 감각에 대해 너무나도 투명하게 자신을 그대로 옮겨왔다. 덕분에 그의 속내를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 같아 오히려 내 자신이 부끄러워 질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엷게 번지듯 그려진 검은 외곽선과 강렬한 색채, 명확한 행위를 둘러싸고 있는 분해된 공간은 작가를 통해 몇 차례 걸러진 교묘한 장치로써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고리가 되었다.

김지애_Lonely Garden_캔버스와 한지에 먹과 유채_각 91×116.7cm_2003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러한 외형적 표현은 이번 작품에서 더욱 확장되고 강렬해진다. 아마도 환상이라는 주제가 이를 극대화시켰을 것이다. 가볍게 떠다니던 색채는 짙은 보라색을 주조로 가라앉았고 여백은 늘어난다. 한지를 덧댄 캔버스는 밑그림으로 사용하는 검은 잉크를 자연스럽게 번지게 하여 원색과 강한 대비를 이루게 한다. 사실 김지애에게 그림은, 마티스가 그랬듯이 '실내의 꽃다발'과 같은 존재다. 누누이 자신에게 '무게 없음'을 강조하는 것도 쓸데없는 이즘ism이나 형이상학적 가치가 부여되어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에 대한 극도의 기피심리 떄문일 것이다.

김지애_Fly together on the Green_캔버스와 한지에 먹과 유채_162×227.3cm_2003

실내의 꽃다발이 되기 위해 작가는 호사스러운 색채와 장식적인 디테일, 해체된 구도를 취한다. 거대한 화면 안에 존재하는 두 개의 공간-현실공간과 상상의 공간은 각각 여인과 회전목마로 대변되며, 호사스러운 색채와 장식적인 디테일, 그리고 해체된 구도와 함께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아울러 사유와 부유(浮游)의 공간으로서 짙푸른 여백이 가지는 흡입력은 스스로 부담스럽지 않은 벽문(壁門)을 형성하고, 보는 이들을 다채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김지애_Fly together_캔버스와 한지에 먹과 유채_122×180cm_2003

앨리스는 토끼에게 이끌려 이상한 나라로 들어갔듯이, 회전목마는 환상세계로의 탈출구로써 그림 속 여인을 끌어들인다. 현실과 환상 사이에 약간의 멈칫거림이 있었을 뿐, 여인은 과감히 목마에 몸을 맡긴다. 그 여인의 모습이 작가와 거의 흡사한 것으로 보아 여전히 작가는 화면 안에 개입하고 있지만, 이전에 비해 훨씬 그 비중이 줄어들었다. 이것이 의도된 것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효과는 매우 고무적이어서 관람자로 하여금 그림 안으로 빨려 들어갈 여지를 제공한다(이것은 작가 김지애로서는 일전에 없던 엄청난 배려다). 따라서 우리는 종전의 관음적인 시선, 힐끗대는 눈짓으로 훔쳐보기를 마치고 배려된 공간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즉 시각적으로 던져진 군데군데의 벽문(壁門)들로 인해 작가만의 이상형이 아닌 관람자들도 함께 날기를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 그녀 작품의 매력은 항상 '아직 열어보지 못한 문'에 있을 것이며, 그 뒤에 뭔가를 기대하는 설레는 마음 속에 있다. 교묘하게 장치된 수많은 문을 천천히 음미하라. 누리라. 그리고 Fly Together! ■ 성윤진

Vol.20030407a | 김지애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