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프로젝트 2003

뮌展 / mioon / video.installation   2003_0402 ▶ 2003_0410

뮌_관광객 프로젝트 2003_DVD 영상, 깃털_가변설치_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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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402_수요일_05:00pm

뮌 mioon 김민선 KIMMIN & 최문선 CHOIMOON

조흥갤러리 서울 중구 태평로1가 62-12번지 조흥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02_722_8493

관광객 프로젝트 2003 ● 여러가지 이유로 짧아진 세상의 물리적인 거리와, 빨라진 정보의 교류로 인한 정보적인 수준차이의 극복이 전세계의 관광객의 수를 증가시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무공해 산업이라는 소위 '관광산업'이라는 단어에서는 부조화의 느낌이 뭍어난다. 본래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명승고적과 풍속등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이라는 뜻의 '관광'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여러가지 재화를 생산하는 사업'이라는 뜻의 '산업'이라는 뜻의 강력한 단어와 만나서, 그 본래의 의미를 잃고 섬유산업이나 자동차산업 같은 '산업'의 한 종류로 전락해 버렸다. ● 현대의 관광산업 안에서 대규모의 관광객들은 다른 문화나 풍속을 보고 느끼는 주체로서가 아니라, 그 '산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소비대상으로서 취급되어지고, 그 산업 안에서의 관광지는 본래 그 지방의 특색을 잃어버리고, 그것의 전통은 단지 관광객에게 보여지고, 판매되기 위한 상품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왜곡되어지기도 하는 더 큰 문제로 발전했다. 방문자인 관광객을 단지 구매 잠재성을 가진 존재로 보는 현지민의 시각은 결국엔 관광지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들게 된다. 관광산업이 생산해낸 많은 관광의 형태는 극히 비정상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며, 많은 경우에 있어서는 관광현지의 사회형태와 구조까지 변화시키는 예로 발전되기도 했다. 소위 세계화 시대에 창궐하는 현대 관광산업의 부작용, 또 관광산업이라는 명칭의 가벼움에 보조를 맞추듯, 그 안에서 빠르게 진동하는 관광객들의 가볍고, 수동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데에 있어서, 깃털이라는 재료와 바람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표현하고자 했다. ● 설치계획_ 깃털로 덮혀 있는 스크린이 어두운 전시장의 천장에 매달려있고, 그 깃털 스크린 위로 영상이 영사되고 있다. 영상의 변화와 시간의 변화에 따라서 스크린은 바람에 의해서 흔들리고, 그 위로 영사되고 있던 관광객의 영상은 흐릿하게 형태를 잃어버리게 된다. ■

뮌_Piazza della Signoria_단채널 DVD 영상_00:04:27_2003

'세계화'된 사회, 또는 '국경 없는' 사회라고 말하여지는 현대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분명히 '세계화' 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국경'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굳이 선진국 주도 하에 진행되고 있는 자유무역주의나, 또는 그런 행사들에 빠짐없이 따라다니는 세계화 반대시위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현 시대의 세계를 뒤덮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들 안에는 어느 정도의 오해와, 또 어느 정도의 폭력성이 담겨있다. ● 한 문화가 전혀 다른 문화를 만나는 일은 역사적으로 볼 때 매우 불안하고,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는데, 그 역사적 전통은 현대에 와서도 그리 많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문화접촉'의 극히 미시적이고 개인적이라고 볼 수 있는, '관광'이라는 부분에서도, 그 '폭력성'은 '관광산업'이라는 변종의 형태로 나타나며, 그러한 대규모의 관광산업을 통해서 새로운 익명성과 여러 문화사이의 다른 형태의 오해 생기기 때문이다. ●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광장 위에 있다. 대규모의 여행객들 속에서 그들은 그들의 익명성을 획득하고 있으며, 이 한장의 사진 위에서 프레임은 사진 위의 사람들 속에서, 바로 사진 위의 사람들처럼 바쁘게 움직이며, 그들의 여행과 배경사운드의 끝을 향해 점점 빠르게 진행된다.

뮌_우리_단채널 DVD 영상_00:04:34_2002

통제, 조절되는 사회_'나'라고 표현되어지는 개인은 외부작용에 의해 '우리'라는 집단인 단체주의로 휩쓸리게 된다. 그리고 집단주의적 정서에 대한 비판의식의 결여는 집단주의적 동원의 메커니즘이 잘 기능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그런 집단주의 의식은 개인의 정체성을 집단주의 정체성으로 변화시켜 자발적 참여를 하게 하고, 집단 광기에 빠지게 하며, 그 광기에 빠진 대중들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쓰여지는 수단이 된다. ● 이 무비판적 대중이 전체주의적 동원 기제에 포섭된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단채널 영상작업 「우리」는 화면 전체에 객석을 채우고, 관객들의 반복되는 등장과 사라짐이 사물놀이 음악에 서로 동조하게 하여, 마치 음악에 의해 집단동화되는 단체주의적 특성을 나타내게 했다. ● 부연하면, 사물놀이 음악은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흥쾌한 리듬으로 점점 관객들을 음악에 동화시키고, 클라이맥스에서는 숨조차 쉴 수 없게 고조시키는 특성이 있다. 이에 이 음악은 이 작업의 집단을 동화시키게 되는 모티브 역할이 되고, 그에 따라 화면에 나타나게되는 관객들은 그에 장단맞추어지는 집단주의의 특성을 나타내게 된다. ● 그리고, 이 집단주의적 특성을 더욱 시각적으로 치밀하게 표현하기 위해 예전 전제주의국가들에서 많이 보여졌던 경기장의 숙련된 카드섹션의 표본과 유사하게 차용하여 완벽하게 짜여진 집단주의적 질서를 표현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개인의 자율과 자유 의지의 소중함을 역설하였다.

뮌_Oscilloscope_DVD 영상설치_00:03:00_2002

음악에 의해 조율되는 시각적 유희의 세계. ● 이전의 작업 「우리」에서 의도되어지던 사회적인 담론을 벗어나, 좀더 순수한 시각적 변형에 의한 유희에 매달리고자 이번 작업 「오실로스콥」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타는 장면을 마치 오디오나 라디오 등에 부착된 오실로스콥의 작동처럼 형상화 시켰다. ● 「오실로스콥」과 「우리」는 음악에 의해 조율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의 사물놀이 음악과 객석의 군상은 좀더 집단주의적 특성을 강조한데 비해, '오실로스콥'은 미끄럼틀이라는 아이들의 놀이기구의 형상과 오실로스콥라는 기계와 동일화를 시켜서 음악에 의한 시각적 유희를 강조했다. ■

Vol.20030406a | 뮌展 / mioon / video.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