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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402_수요일_06:00pm
갤러리 룩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02_720_8488
흔히 사진가는 그의 필름에 예외적인 것, 드문 것, 예견치 않은 것, 결코 재현되지 않을 "사건-이미지(icon)"을 담는다. 이러한 재현은 사진가가 그 곳에 혹은 그 자리에 그리고 그 순간에 있었다고 우리를 믿게 한다. 그래서 좋은 사진은 사진가가 계속 숨어서 지키는 대상과의 좋은 만남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사진가는 보이는 세상에서 가장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암시적인 이미지 즉 특별한 의미를 지칭하는 "상징-이미지(symbol)"를 만드는데 그때 좋은 사진은 변사의 웅변과 같은 표명 적인 사진이다. 이러한 사진들은 반박할 수 없는 분명한 과거 사실을 증언하는 "보여주는 사진"이다. ● 그러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언제나 보이는 세계(인식)에서 자기 과시적이고 장관 적인 것이나 어떤 새롭고 특이한 상징적 의미를 보여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사진은 오히려 심리적 재현 장치로서의 지시적인 역할(index)을 하기도 한다. 사진은 다른 어떠한 재현 매체와는 달리 지극히 평범한 대상을 보여주는 아주 단순한 사진이라 할지라도, 말하자면 어딜 봐도 전혀 특이한 것이 없는 닮음의 극단적인 평범과 진부한 것들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그 이면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일종의 헛소리와 같은 무엇(작가의 극히 주관적 직감)을 은밀히 지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진은 "감추는 사진"이 된다. ● 흔히 우리는 사진을 기억의 시각적 재현으로 간주하는 정신적 이미지로 믿고 있다. 달리 말해 우리들의 기억은 사진 이미지로 쉽게 설명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기억이 직접적인 이미지로 나타나지 않는 아주 특별한 경우도 있는데 예컨대 처음 본 사람에 대한 아주 강렬한 첫인상이라든지 이유 없이 초라해지는 자신 그리고 죽음의 충동, 텅 빈 공간이나 지극히 평범한 상황에서 느끼는 오싹함 등의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기억들을 들 수 있다. 그럴 경우 이러한 기억들에 대한 시각적인 이미지는 간접적으로 그것을 지시하는 상황이나 대상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문맥에서 "감추는 사진"은 근본적으로 과거 일상생활의 평범한 사실이 아닌 아주 특별히 인상이나 강렬한 느낌을 재현하기 위한 일종의 은폐기억(souvenir- cran)으로 간주된다.
프로이드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보고들은 것들은 쉽게 잊어버리는 반면 어린 시절의 특별한 충격이나 사건들은 다소 분명히 기억한다"라고 하면서 의식에 떠오르는 단편 이미지들을 마치 잠상에서 선별되어 이미지화 된 사진 이미지 즉 무의식에 총체적으로 내재된 심층 기억에 대한 시각적 재현으로 간주하였다. 언제나 심리학적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시각적인 모델을 찾고 있던 프로이드는 자신의 이론인 의식과 무의식을 고고학적인 은유와 이중으로 된 사진의 특별한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땅에 완전히 파묻힌 거대한 폼페이를 지속적으로 대상을 녹음하는 사진기 그 자체 즉 카메라의 어둠 상자와 렌즈에 비유하면서 이러한 지각 체제를 곧 우리의 의식으로 간주하였다. 왜냐하면 거기서 모든 이미지들은 단지 망각(무의식) 속에 그대로 축적되며 어느 순간 우리가 의식하는 이미지들은 언제나 무의식 하부에서 의식의 상부로 표면화된 단편적인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 반면 지금도 발굴이 진행되는 로마는 모든 기억이 내재된 우리의 무의식에 비유되고 있는데 무의식은 언제나 의식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유적 발굴)되어 있다. 거기서 크게 서로 다른 세 가지 심리학적 작용을 들 수 있는데 그것들은 카메라에 내장된 필름 이미지와 그것이 시각화되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 우선 무의식의 기억에 비유되는 필름의 잠상은 연속과 지속작용으로 총체적으로 저장된 잠재 이미지들을 말하며, 어떠한 이유로 해서 무의식의 기억이 의식의 표면으로 돌출 하는 것은 사진에서 화학적 반응에 의해 네거티브 이미지로 인화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선택된(검열과 억압 작용) 네거티브 원본들은 곧 바로 현상되어 시각화되는데 이때 시각화 된 이미지들은 꿈이나 환상 또는 레미니센스와 같이 심리학적으로 대부분이 위장되고 왜곡된 은폐기억들(les souvenirs- crans)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마치 아득한 기억의 앨범을 넘겨보는 것 같은 작가 문제남의 사진들은 정확히 무의식으로부터 위장된 기억의 단편들(로마의 유적)로 간주될 수 있다. 렌즈의 수차를 심하게 가지는 특별한 대중 사진기를 의도적으로 선택하여 만든 빛 바랜 이미지들은 바로 작가 자신이 자신의 무의식에 부유하는 기억들을 위장한 이미지들이다. 언제나 어두운 배경에서 중심부에 다소 단순하고 분명한 윤곽으로 출현하는 수수께끼 같은 것들 예컨대 비둘기, 전등, 기묘하게 생긴 물건, 묘지로 가는 길과 그 주변에 떨어진 꽃잎들과 같은 자질구레한 소품들은 작가가 자신의 경험에서 포착한 극히 주관적 느낌의 흔적이나 자국 즉 상황에 대한 지표(index)로 이해된다.
프루스트의 무의식적 기억처럼 은폐된 이미지로 나타나는 "감추는 사진"은 근본적으로 사진의 지시적인 본질에 관계한다. 이러한 개념은 찍혀진 대상과 그 지시대상(혹은 작가의 의도) 사이의 관계가 논리적인 유사관계가 아닌 물리적 원인관계를 가지는데, 그때 사진 메시지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를 있게 한 상황적 원인성으로 응시자 각자의 경험적 상황에 따라 유추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적 원인들은 대부분의 경우 작가가 포착한 어떤 규명 불가능한 내재적 존재들(시뮬라크르)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그것들은 그 존재의 시각적 재현을 위해 반드시 다른 지시물(지표)로 위장해야 하는 상식 밖의 황당한 것들 또는 거의 직감적 충동과 같은 주관적 느낌들이다. 그럴 경우 사진이 외시하는 수수께끼 같은 대상들은 궁극적으로 의미의 빗장을 벗기는 위장 그 자체이며 동시에 의미의 영역을 벗어난 탈선 그러나 겉은 없고 알맹이만 부유(浮流)하는 무의미(non sens)의 포착을 말한다. ● 전혀 의미의 옷을 입히지 않은 이러한 사진들의 상황을 관객 스스로가 자신의 경험적 상황의 연장선상으로 돌려놓을 때 갑자기 언제부터인가 슬며시 잊혀진 숱한 감정의 애환과 아쉬움이 마치 영화의 장면들처럼 지나갈 것이다. 왜냐하면 평범과 일상은 작가와 우리 모두의 공통된 삶과 죽음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예술로서 사진이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여기 보여진 작가의 사진들은 단순히 무엇의 의미를 보여주는 사진이 아니라 언제나 다른 것을 감추고 있는 진실(작가의 메시지)의 표면일 뿐이다. 다시 말해 사진 이미지로 출현하는 장면들은 작가의 은밀한 기억이 무의식으로부터 의식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미 가변적으로 위장된 기억의 단편들이며 또한 그 단편들 밑에서 뒤에서 또는 근처에서 심리적으로 우리의 공통된 애환을 감추고 있는 이미지 즉 기억의 팔렝프세스트(palimpseste : 씌어 있던 글자를 지우고 다시 글자를 써넣는 양피지.)이다. ■ 이경률
Vol.20030404a | 문제남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