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3_0402_수요일_05: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혼돈과 제어, 그 이중 프로세스 생(生)의 단면에 대한 성찰 ● 문유선의 「HAZE」, 「FABRIC」, 그리고 「MATRIX」 등의 근작들은 우리의 삶이 갖고 있는 갈등과 대결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 「아지랑이」, 「직물」, 「행렬」과 같은 작품 명제의 내용부터가 이를 잘 말해 준다. 그가 근작들을 제작하는 절차는 크게 표면과 배면이라는 두 가지 층으로 이루어진다. 표면은 점착성 안료를 떨어뜨리거나 뿌리는 즉흥적인 행위들이 각인되면서 마치 직조인들이 자유분방하게 한올 한올씩을 짜 겹겹이 중첩시킨 것 같은, 복잡 미묘하게 교차되는 색선들의 행보를 보여 준다. 이에 비해, 배면은 미세하고 균질적인 수평선, 수직선, 나아가서는 그리드(격자)가 견고하게 짜여진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작품의 정황은 작가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체제는 물론 그가 삶을 살아가면서 전개하는 여러가지 응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 가령, 배면의 균질한 질서는 작가를 제어하고 압박하는 사회의 체제·무게· 속박의 질량을 상기시킨다면, 표면의 분방한 색선의 궤적들은 그러한 체제의 속박 가운데서, 작가가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전개하는 기투(企投)의 이러 저러한 곡절·갈등·혼돈을 시사한다.
그의 근작들은 혼돈과 제어라는 삶의 두 가지 프로세스를 작품의 등가물로 전치 시키려는 데서 이루어졌다. 혼돈의 상황을 실천하기 위해 작가는 캔버스의 표면을 드리핑 기법으로 5색의 미세한 선들로 다루되 특히 선들을 섬세하고 미묘하리 만큼 교란시킴으로써,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혼미에 이끌려 마치'아지랑이(haze)'를 보게 하거나, 혼미한 분위기가 크게 제어됨으로써 직물(fabric)같거나 행렬(matrix) 같은, 이를테면, 강화된 질서를 보게 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처음부터 직물과 행렬의 체제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추진함으로써 격자구조가 투명하게 드러나도록 하였다. 후자의 격자구조는 규격화된 직선의 색띠와 정사각형의 모티브가 만드는 역학의 구조가 매력적이라면, 전자의 격자에서 혼돈에 이르는 구조는 혼돈(카오스)과 제어를 적절히 중첩시킴으로써 보다 유연한 현실감을 자아낸다. 근작들은 인내와 열정이 가득한 우리네의 한 여인이 엮어낸 타피스트리 같은 맑은 서정과 숨결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인상은 그가 자신의 생의 국면들에 응전하는 감회를 작품으로 표출하고자 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를 두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이번 작품들은, 경사와 위사를 교차시키는 방법에 따라 직물의 조직이 이루어지듯이, 얽히고 설킨 수다한 관계와 갈등, 그리고 혼돈을 내재한 현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가운데서 나 자신을 제어하고 다듬으며 성찰하고자 한다. 이를 투영하고 조형적으로 다듬어내기 위해, 한 올 씩 겹겹이 쌓은 수많은 색실들이 중첩된 것 같은 화면의 질감을 만들어 보고자 하였다. 수평·수직구조의 색띠들이 만들어내는 정렬된 구조는 바로 이러한 결과라 할 수 있다." ■ 김복영
Vol.20030403a | 문유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