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짐의 평안함

갤러리 썬앤문 기획초대 박민준 회화展   2003_0402 ▶ 2003_0415

박민준_et in arcadia ago_캔버스에 유채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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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402_수요일_06:00pm

갤러리 썬앤문 서울 종로구 관훈동 30-9번지 청아빌딩 2층 Tel. 02_722_4140

『작아짐의 평안함』 작가 박민준은 전시 타이틀을 이렇게 정했다. 나는 그의 작업실에서 전시 타이틀을 들은 후 좀 갑갑함을 느꼈고 곧 항의를 했다. 대체 무엇이 작아져서 누가 평안하단 말인가? 말을 아끼는 작가는 토막토막 말을 이어갔지만 결코 질문 이상의 대답이 넘치지 않았다. ● 그가 설명하는 '작아짐의 평안함'은 어떤 절대적 존재 앞에 선 작은 인간의 형상이다. 절대자 앞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미약한 존재인지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포기나 체념과는 다른, 겸손의 개념에 가까운, 그리하여 평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 그러나 아이러니다. 그는 자신의 어떤 기준에 도달하고자 완벽하고자 했고, 그리고 우리 역시 때때로 끝까지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가.

박민준_아무도 알지 못한다_캔버스에 유채_2002
박민준_거짓의 정의_캔버스에 유채_2002

그의 작품 중 캔버스에 그려진 인물이 인체의 비례보다는 인형에 가깝게 표현된 그림이 있다. 이들은 작가가 인용한 정교한 중세시대의 소품과 함께 고풍스러운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물론 작가가 과거로 돌아가고자 함은 아니다. 그는 그림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보조코자 상황적 분위기를 차용한 것이다.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상황을 설명하고 위해서 자료수집의 과정을 통해 세심하게 골라낸 세월의 디테일을 캔버스에 그려 넣었다. ● 잠시 15세기 네덜란드의 폴랑드르파의 화가, 얀 반 아이크(Jan van Eyck)의 그림 「아르놀피니 부부 초상」과 작가의 그림 「거짓의 정의」를 비교를 해보면 두 작품 모두 냉엄하고 신비로우며 종교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으며, 효과적인 의미의 전달을 위해서 소품을 통해서 암시를 하고 있는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배치된 사물의 이면에는 상징적 의미들이 숨겨 놓은 것이다. ● 그의 작품 속의 인물들은 인간이 생의 매 순간 겪는 고민과 갈등, 번뇌의 본질을 은유적인 도구를 빌리면서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품 「et in arcadia ago」를 보면 역시 작가 자신의 내면에서의 감정을 이미지들을 빌려왔지만 매우 강력하게 담고있다.

박민준_현자의 돌_캔버스에 유채_2003
박민준_크로노스의 시계_캔버스에 유채_2002

평안함을 찾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사랑 받기를 원하는 것만큼이나 기본적인 욕구이다. 이는 종교와 예술의 존립을 지속케 한 이유일 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평안함'을 찾거나, 혹은 그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끊임없이 시험에 들고 순간마다 판단의 기로에 서게 되고, 뿐만 아니라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TV를 켜고 뉴스를 보면 바로 확인 될 것이다. ● 이 섬세하고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그림은 탁한 현실의 공기를 호흡하며 희미한 미래를 응시하는 작가의 자화상이자 우리의 불안한 모습이다. ■ 오형주

Vol.20030402a | 박민준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