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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401_화요일_05:00pm
박영덕 화랑 서울 강남구 청담동 79-13번지 Tel. 02_544_8481
경외심과 자각, 동파이프들의 코스모스 ● 상당히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질문이기는 하지만 이길래의 작업은 문명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이다. 지난 1991년 처음 전시에서부터 줄곧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한 이 화두는 『默示의 땅』 시리즈와 같은 작업에서 이미 다양한 시도를 한 바 있다. 폐허의 현대문명에 대한 시각과 과거로의 회귀가 갖는 이중적인 갈망이 숨쉬고 있는 이후의 작업들은 1997년 『흙에서 땅으로』 2001년 박영덕 화랑 『점에서 선』으로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미니멀적인 함축성을 머금은 일련의 원형질과 같은 변화에 이르기까지 테라코타나 녹슨 철, 석화껍질 등을 매개로 하고 있다. ● 마치 역사의 증언으로 발굴되는 미이라나 석관의 이미지처럼 그의 작업은 언제나 인위적으로 다듬어 지기보다는 오랜 동안 묻혀져서 발굴되어지는 느낌이 강한 자연적 형태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이길래의 이번 박영덕 화랑의 전시는 일거에 색다른 국면을 제기한다. 2001년 개인전에서 보여준 조개껍질이나 옹기파편, 다슬기껍질 등을 통해 선보인 모처럼 정제된 이미지의 형상들이 집합을 이루었던 추상성에 반하여 이번 작업은 수많은 파이프의 단면들을 조합하여 이루어진 구체적인 형상이 등장한다. ● 전구, 사람의 발, 감, 호두, 고추, 수세미, 박, 양파, 사과, 배 ,마늘, 애호박, 늙은 호박 등이 다양하게 등장하는 이번 전시의 형상성이나 작업의 의도는 지난번 전시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원형적 형상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반하여, 과일이나 채소 등의 구체적인 형상성을 바탕으로 하여 생명의 존엄, 자연의 회상 등을 의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 금속과 식물의 결실, 전혀 이질적일 것 같지만 인간이 조작해내는 금속매체를 전체적으로 붙여나가면서 수확의 상징이나 식물의 결정체라고도 볼 수 있는 생명의 결실에 대한 이미지를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이길래가 의도하고 있는 새로운 언어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 일종의 기념비적인 의미로, 그것도 인간이 만들어낸 세포조직으로 이루어진 형상으로 우리 앞에 물성화되어 놓여진 이 생명이 아닌 생명의 결과물을 바라보면서 그간 이길래의 언어와는 상당히 궤를 달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의외의 눈빛을 보내면서도 한편 우리는 잔잔한 단상에 머무른다.
"이것은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나에 생활에 소산일지도 모른다. 『생성에서 응집으로』가 갖는 의미는 우선 전 단계의 추상적 형태에서 구상적 형태로 바뀐 것에서 찾아야 한다. 점과 선이라는 상징적 도구를 시간과 역사의 개념 속에서 설명한 것이 지난 전시라면, 이번에는 생명의 탄생과 응집이라는 물성화 과정에 주목하였다."● 『생성에서 응집으로』 라는 명제를 부여한 이번 전시는 그가 증평에서 생활하게된 최근 몇 년 사이에 자신이 틈나는 대로 조금씩 심고, 기르고, 수확 해 가는 과일이나 채소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단상들에서 포착된 체감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거짓없이 자연의 순환대로 변화해가고 성장해 가는 자연의 섭리를 뒤로하고 주마다 서울로 강의를 다니면서 느꼈던 이중적인 단상은 고속도로에서 질주하는 어느 화물차가 동파이프를 가득 싣고가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도시와 시골을 동시에 넘나드는 자신의 이중적 생활에 대입하여 오버랩 한 작업이기도 하다. ● 즉 그 트럭에 실려진 수많은 규칙적인 동그라미들을 바라보게 되면서 마치 자신이 길러왔던 과일이나 채소들의 세포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수세미의 경우는 더욱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단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고 말하고 있다.
동파이프라는 인위적 세포를 쌓아서 만들어내는 자연의 결실로서 이길래는 이 단순한 소재를 조형화고 있다. 그와 같은 과정에서 동파이프라는 차가운 재료에 의하여 제작된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일루전적인 현상이 스며든다. ● 즉 그의 수많은 동그라미 세모로 이루어진 이길래의 결실로서도 인상되어지는 이번 시리즈는 하이퍼리얼리즘에서 볼 수 있었던 재인식의 사실성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물성적인 변인과 이중적인 성찰을 내포한다. 전반적으로는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생각될 만큼 미니멀의 한 경향을 보여주면서도, 하나의 자연현상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집중적으로 드러나 보이게 되는 작업과정의 변화는 물론 그 간결성이 의도된 작업으로서 이해되어지고는 있지만 그로 말미암아 이렇다 할 장식이나 형용적 가식이 없이 명징스런 상태로 드러나는 대상의 본질에 대한 의미론적인 단상들로 이어진다. ● 다양한 과일이나 채소들의 열매들을 그의 동파이프를 통해 상징화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모두가 원융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어서 대상의 이미지로 보다는 생명체의 작은 코스모스를 만들어가려는 작가의 잠재적인 본능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여타의 조형적 격식을 버리고 단순히 과일이나 채소들만을 덩그라니 드러내고 있는 명징성에서 더욱 자신의 접근방식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번에는 문학적이거나 역사적인 거창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자신이 바로 연희하고 있는 바로 현실의 체감에서 체득된 자각으로부터 발굴된 언어들이라는 점에서 잔잔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 최근의 작가들이 대다수가 그러하듯이 브레이크가 없는 치열한 담론의 언어체계에서 문득 자신의 본질을 되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굽이를 갖는 다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찰라를 선사할 수 있다. ● 이길래의 이번 변화는 무척 가벼운 공간과 공간의 이동과정에서, 시간과 시간의 이중적인 변화에서 깨닫기 시작한 생성의 과정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 최병식
Vol.20030401b | 이길래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