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속에서 발견하는 형과 색

한수정 회화展   2003_0328 ▶ 2003_0409

한수정_LINE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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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328_금요일_05:00pm

갤러리 아티누스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4-26번지 Tel. 02_326_2326

그림자만큼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또 있을까? 영화 섀도우에서 주인공 알렉 볼드윈이 실제 모습을 숨기고 그림자로 활극을 펼친다. 그는 그림자에 화살을 맞고는 괴로워 한다. 그에게만큼은 그림자가 실체고 그의 몸은 그림자를 만들어 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때로는 과장되게 크게 때로는 작게 대상을 변화시키며 실체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며, 시간과 빛의 변화까지 하나의 공간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그림자…역시 호기심을 자극시키기 충분한 소재다. 이번 아티누스 전시에서 한수정의 작업은 이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되고 있다. ● 1+1+1+1=1이다? ● 한수정의 Line 시리즈 작품을 보며 던져보는 엉뚱한 질문이다. 하지만 이 엉뚱한 질문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형상과 추상, 평면과 공간 사이의 방정식을 풀 해법이 숨어 있다. 형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점과 선이라는 추상적 기호를 이용해야 한다. 한수정은 그림과 이를 구성하는 점과 선을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회화의 근본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번 아티누스에서의 Line 시리즈 작품은 멀리 서 바라보면 분명 하나의 이미지를 가진 작품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이내 여러 장의 종이가 중첩되어 만들어낸 환영임을 깨닫게 된다. 내 눈을 속였던 이미지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앞의 두 세 겹의 종이를 들춰본다. 거기엔 또 다른 선들이 놓여 있을 뿐 기대했던 실체는 없다. 작품의 실체는 표면 위를 표류하고 있을 뿐 마치 바람처럼 잡으려 하면 옆으로 빠져나가 버린다. 또 다시 다음 종이를 들춰봐도 의미를 알 수 없는 추상적인 선들이 놓여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일련의 선들이 바로 형상을 있게 하고 눈을 혹하게 하였던 장본인이다. 한 장 한 장으로는 의미를 알기 힘든 추상적인 패턴이지만 이들이 모여 때론 문자를 때론 형상을 만들어 낸다.

한수정_LINE_2003

회화는 눈속임의 역사? ● 선과 선이 만나고 점과 점이 만나서 만들어 내는 선과 점의 구성은 결국 하나의 전체로 다가와 망막에 맺힌다. 이 작은 사실에서 비롯된 회화의 조형원리는 평면의 이미지를 이용한 투시도법과 명암에 의한 환영(illusion)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눈속임을 낳았다. 현대 미술은 공간과 이미지 그리고 관객과의 원활한 소통을 꾀한다는 계산 아래 미디어 아트를 중심으로 동영상 이미지에 집착하며 탈장르화를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탈장르화의 노력도 미술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회화적 이미지의 도움 없이는 영양이 결핍된 절름발이 외침에 지나지 않는다. 한수정은 눈속임의 매력을 즐기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지를 만드는 회화의 기본 구성 요소인 점과 선에 대한 흥미로운 시각을 선보인다. 작품의 제목처럼 그의 작품은 선의 연속성과 완전성을 트레팔트 종이 위에서 실험한다. 20여장의 얇은 종이 위를 흘러내리는 유화물감이 다양한 패턴으로 굽이치더니 화면 하단에 이르러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가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점과 선의 연속이 만들어낸 보기 좋은 환영이다.

한수정_LINE_2003

그림자로 빛을 그린다. ● 한수정은 형상이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근본 원리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의 호기심은 결국 주제와 배경, 중심과 배경 사이의 힘의 균형을 파괴시킨다. 재미있게도 그가 그리고 있는 것은 형상이 아닌 배경이고 물체가 아닌 그림자이다. 이와 같은 물체와 배경 사이의 힘의 역전 현상은 그의 이전 라인 테이프 작업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 전시장 벽면에 음각을 하듯 그림자를 라인 테이프를 이용해 그림으로써 형상을 만들어 낸다. 그의 그림자에 대한 집착이 형상과 그 형상을 가능케 하는 근본을 동시에 보여 주고자 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시각적 역전 현상과 같은 유희적 개념 이상의 이해를 요구한다. 그의 작업을 따라가 보면 전시장 한 쪽 면에 작은 그림자를 그려 넣음으로써 빛을 그리지 않고도 공간 전체를 빛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게 되는 것처럼 형상을 그리지 않고서도 실제 그려진 형상보다 더 강력한 형상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처럼 주제 대신 배경을 그리고 있는 한수정의 전략은 이번 아티누스 전시에서 새로운 형식으로 진화한다. 작품의 형상 대신 점과 선이라는 회화의 핵심 요소를 전면에 드러내 작품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넓히고 있다. 형상이 직접적으로 그려진 것이 아닌 만큼 보다 풍부한 형태와 색상을 머리 속에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전 작업이 주제와 배경 사이의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도발적인 시도였다면, 이번 라인 시리즈 작업은 보다 근본적인 회화에 관한 담론을 끌어내고 있다. 그것은 회화를 회화답게 만들어 보이는 점과 선의 역할이다. 이미지를 제공하고 형상을 아름답게 꾸미는 배경, 점, 선…이들이 바로 한수정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그림자인 것이다. ■ 이대형

Vol.20030330b | 한수정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