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장소로서의 얼굴

민미정 개인展   2003_0326 ▶ 2003_0401

민미정_지켜보다_종이에 목탄_101×74×7cm_2003

초대일시_2003_0326_수요일_05: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인간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자 역사이다. 살과 주름, 표정과 머리카락은 그/그녀의 독자성의 표식이자 모든 것들이 단호하게 응축된 기호이다. 자신의 삶의 경험과 추억, 기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장소이자 세계와 타자를 우선적으로 받아들이고 접하는 쓰라린 경계이기도 하다. 우리가 누군가를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생생하게 드러난 그 얼굴을 보았을 때이다. 몸을 감싼 옷의 경계 위로 그렇게 얼굴은 세상과 독대 하듯이 존재한다. 그 얼굴도 시간과 공간 속에서 변화를 겪는다. 시간의 입김 아래 서서히 잠식되어 가는 얼굴을 본다는 것은 서늘한 죽음을 목도하는 일이다. 그런가하면 얼굴은 일종의 화면, 이미지로 작동한다. 사람의 얼굴은 서로 다름에 기반 해 존재하며 그 차이만큼이나 다양한 내용을 저마다 지니고 있다. 얼굴을 온전히 읽기란 불가능하다. 감정의 기복에 따라, 세상과 타인과의 반응에 따라 난해한 심리적 굴곡과 치명적이거나 견딜만한 상처의 내상을 눅눅하게 지닌 얼굴들은 난수표 마냥 미지의 문자처럼 자리한다. 해서 타인의 얼굴을 본다는 것, 읽는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상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의 얼굴을 대하며 산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조차도 너무 낯설고 측량할 길이 없다. 얼굴은 내 몸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그 몸에서 가장 멀고 아득한 곳에서 순간적으로 우리를 돌아본다.

민미정_흐름_종이에 목탄_67×96×7cm_2003
민미정_편린1_종이에 목탄_70×104×7cm_2003
민미정_눈 먼소년_종이에 목탄_109×79cm_1996

민미정은 그런 누군가의 얼굴을 그렸다. 특정한 공간과 시간성, 상황성이 지워진 체 고립된 얼굴만이 확대되어 옮겨진 그 그림은 우리의 시선을 전적으로 얼굴로 한정 지운다. 그렇게 추상화된 대상은 부동과 영원성을 함축하며 기념비적으로 자리한다. ● 익명성과 보편성을 지닌 이 얼굴들은 대중매체에서 임의로 선택한 이미지다. 수시로 접하는 정보, 급격히 폐기되고 버려지는 매체 속에 자리한 무수한 얼굴 사진은 현실과 삶의 여러 정황과 의미를 드러내주는 것들이자 인간 존재에 대한 단상과 감정을 순간적으로 부풀려주고 난마처럼 얽히게 한다. 대중매체에서 접한 인간, 얼굴은 결국 많은 이미지 중에 하나다.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인물을 부분적으로 확대하고 생략과 배제를 거쳐 화면에 올렸다. 그것을 주목시킨 것이다. 작가의 관심을 끌어 선택된 이미지는 다름 아니라 소외나 상실, 고독과 우울을 머금은 이들의 초상이다. 아이와 노인의 얼굴, 원폭피해로 인한 선천적 장애인, 장님이 된 소년, 자폐증과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버려진 아이들의 초상이 그려지는가 하면 이중화면으로 겹쳐진 그림들은 시위를 진압하는 전경의 모습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슬픔에 젖어있는 한 남자의 초상이 오버랩 되거나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아우성치는 현대인들의 군상 위로 아기를 안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엄마의 모습이 올려져있는 식이다. 상반된 상황이 하나의 화면으로 공존하고 그 겹침으로 인한 파열이 다성과 다중의 의미, 갈등과 양면성, 복합적인 상황을 노정한다. 한 눈에 보이기보다는 여러 눈으로, 다시 `또 보기'를 통해 비로소 그 의미들은 조금씩 살아난다.

민미정_overlap1_혼합재료_96×57cm_2001
민미정_O±O_혼합재료_60×70×12cm×2_2001
민미정_반세기_종이에 목탄_109×79cm×2_1998_신촌역 프로젝트_기차역내 부착

"나의 작업은 유한적 존재라는 한계를 인지하면서 바쁜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상실감에 젖어있는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한 연민에서 출발한다."_작가노트 ● 모든 예술은 사실 그 연민, 인간이란 존재로서의 필연적인 연민의 산물이다. 그래서일까, 그 얼굴들에 자신의 초상이 슬그머니 겹쳐져 있는 것 같다. 마치 습자지를 대고 눌러쓴 또 다른 복사물처럼 보인다. 그 안에는 자신의 이미지만큼이나 수줍음, 고집스러움과 제한적인 삶을 사는 이미지가 겹쳐져 있다고 말한다. 타인이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 그렇게 선택된 얼굴은 목탄드로잉으로 옮겨졌다. 목탄은 그 익명의 존재를 또 한번 추상화시킨다. 신문매체를 통해 받아들이는 인물의 인상과도 유사한 편이다. 무엇보다도 검은 색이 주는 절대적인 무게감, 무광택의 묵직함 및 먹의 느낌을 닮아 깊이감과 진한 묵선 및 여백의 미, 대담함을 지녔다는 측면에서 선호된다. 덧붙여 섬세한 표현과 수정이 가능한 목탄의 장점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넉넉함과 작업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몸의 생생한 흔적의 가시화, 손가락을 이용하여 화면에 직접적으로 시술하는 매력, 신체의 흔적을 화면에 남기는 그 생생한 시간과 호흡을 새기며 스스로의 위안을 찾을 수 있는 맛이 우선적으로 선호된다는 인상이다. 손가락으로 힘차게 문질러서 그림을 그리고 이를 관객에게 보여주면서 삶과 작업의 연관성을 이야기하고 아울러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세상과 만날 수 있고 작용하기를 원하는 제스처를 보여주고자 한다. ● 아울러 이 인물의 재현은 단순한 극사실주의나 묘사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감정을 불러 넣으며 일정한 절취와 생략, 확대를 통해 세계와 유리되어 있는 불안감이나 한정되고 제한된 소외상황을 암시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그렇게 취해진 다른 이미지들과 병치되고 중첩, 연결되면서 원본과 다른 의미를 창출하는 한편 단일한 회화의 독립된 화면에서 이중, 다중의 화면으로 연결, 서사성과 시간성을 끌어들인 프레임 전략이 구사되고 있다. 동시에 연속적인 움직임이나 이야기,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식의 그 영상적 편집과 함축적이며 강렬하고 웅변적인 몽타주 기법(아울러 프레임을 서로 엇갈리게 걸거나 연속성을 지닌 이미지들을 나란히 배열하는 식)을 통해 서로 다른 상황, 극단적인 삶의 일면이 겹쳐지는 이미지를 보여주며 그로 인해 갈등과 모순된, 양면적인 삶의 여러 정황을 드러내고자 한다. 의도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는 듯이 중첩되게 보이는 것, 자칫 너무 쉽게 읽혀지는 형상 작업이 다중적인 의미로 읽혀지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 이 작가의 회화작업이다.

민미정_공유를 위한 책_혼합재료_5.5×51.5×4.5cm_2000

이는 동시대 영상이미지의 범람과 탈이미지와 개념주의로 치닫는 현대미술에 상대적으로 여전히 손으로 그려지는 회화의 맛과 회화의 여러 가능성에 대한 모색을 추구하는 한편 아울러 여전히 자신의 삶과 세계와 반응하고 그 결과를 정직하게 그림으로 그려나가고자 하는 태도 등에서 주목된다. ■ 박영택

Vol.20030328b | 민미정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