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3_0326_수요일_05:00pm
이태호 추천작가_송필 / 강홍구 추천작가_신지선 유근오 추천작가_황인숙 / 백지숙 추천작가_낙원극장 김준기 추천작가_박건웅 / 강수미 추천작가_신민주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는 역학개념으로 인체에 바이러스가 침투한 뒤 일정기간의 잠복기를 거쳐서 발병되는 발화점을 이른다. 이는 흔히 철학이나 사회 또는 예술 등 기타 제분야에서 소수에 의한 어떤 형태의 사고 또는 행동이 수면아래서 진행되다가 하나의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 날로 다원화되는 세계에서 생산되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들을 단일한 그물망으로 포획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티핑 포인트』展은 35세 이하의 신진작가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작업에 내재되어 있는 다기한 발언들을 기존의 작가, 평론가의 눈을 통해 다양하게 들추어내는 작업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 책임기획자 장경호
신지선의 작업은 자신의 등에 있는 남미 대륙을 닮은 점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콤플렉스이자 동시에 작업의 출발점이다. 신지선은 이를 영상, 사진, 드로잉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형상화한다. 물론 그것은 지나치게 사적일 수 있다는 한계는 있다. 하지만 신지선의 작업의 강점은 애매하고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이며 구체적인데 있다. 그리고 그 점이 그의 작품들을 보게 하는 힘이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는 없지만 작업의 기본적인 문법들을 터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추천 이유이다. ■ 강홍구
최근 전시회를 둘러보며 나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화폭에 붓질(거대담론)을 하던 작가들이 뒷전으로 물러나자, 이제는 자기 방에 틀어박힌 채 제 손톱에 매니큐어칠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공업적으로 무두질이 되기 이전의 가죽을 주재료로 하는 송필의 작품에서 나는 새삼 건강한 '손의 맛'과 '노동'의 힘을 느낀다. 그 '손'과 '노동'의 건강함은 습관적이거나 기계적이지 않은 데서 온다. 그러나 나는 '과도한 관념'(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에서 작가가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또한 재료의 특질과 작품에 담고자 하는 내용이 보다 한 몸처럼 느껴졌으면 한다. 작품의 감동은 '재료의 새로움'에서가 아니라, 그 기막힌 '한 몸'에서 오기 때문이다. ■ 이태호
'지켜본다'는 말이 그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는 다소 부담이 되겠지만, 나는 특별한 인연으로 신민주의 생활과 작업을 간헐적으로나마 지켜보게 되었다. 그녀는 한 명의 자연인으로서 '스타일'이 있는 사람인데, 그 삶의 스타일이 자신의 작업으로 문제시되어 나온 것은 다음 몇 가지 것들에 내면적으로 주목하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대중적으로 소비되지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영화'나 '사물', 그 각각의 것들을 담담하게 거리 두고 바라보는 것. 나아가 그것을 반성적으로 '나'와 '문화'로 오버랩 하는 것. 그것이 그녀의 스타일이다. ■ 강수미
황인숙의 작업은 인간의 욕망과 폭력이라는 의미소를 붙일 수 있는 극히 간략한 현대적 아이콘-주먹, 수류탄, 총 등의 스탬프 찍기이며, 그 극간한 형체의 스탬프 집적은 한지 위에서 왕성한 전개력을 지니며 무한한 해학적 형태와 의미를 창출하고 있다. 이 스탬프의 그림은 스스로 복제하는 세포를 가짐으로써 생태조건에 따라 어떤 형태로도 생장 가능하듯이, 우리 세계의 폭력과 인간의 물질적 욕망은 종식되거나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그 형태를 매혹적으로 달리 하면서 우리 내부에 존재함을 적절히 폭로하고 있다. ■ 유근오
근대도시의 젠더는 분명 남성이다. 근대도시의 설계자들이 구획해 놓은 공적 공간은 물론이고, 이른바 어둠의 자식들이 장악하고 있는 비공식적인 영역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여중생 일진들이 뒷골목에 포진하고 조폭 마누라가 스크린을 달구며 여성들 다수가 시청앞 월드컵 광장을 점거하는 이 포스트모던 도시 서울은 근대의 여명기로부터 얼마나 멀리까지 온 것인가. 이제 젊은 여성작가 5명이 한껏 노회한 도시의 정글 속에 은둔해 있는 '낙원'을 포획하러 나선다. 종로 한복판에 숨겨져 있는 종묘, 탑골공원, 삼류극장이 이들의 주무대이며, 식민지 근대의 회한을 안고 사는 노인들이 주된 대화상대자이다. 종묘에 감히 '아방궁'을 설치하려다 여전히 기력이 생생한 노인들에 의해 저지 당한 '입김' 선배들에 비하면, 이들의 접근방식이 확실히 포스트모던 하긴 하다. 그러나 과연 그뿐이기만 한 걸까? ■ 백지숙
박건웅은 목판화 형식의 그림들로 이루어진 장편극화 『꽃』을 출간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4백여 쪽을 이어나가면서 비전향 장기수의 현실과 기억을 오르내린 그의 노작을 통해 오윤 이래 80년대를 수놓았던 판화의 향기를 읽어낼 수 있다는 건, 20여년의 세월을 건너 우리 미술계가 건져올린 행운 가운데 하나이다. 제도미술공간의 프로게이머들이 '검은테 그림'이라고 홀대하며 접어두었던 목판화의 힘과 아름다움을 들추어냄으로써, 우리의 가까운 과거가 남긴 향기를 현재형으로 번역해냈기 때문이다. 당대의 역사를 다듬어 단단한 디딤돌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야무진 티핑 포인트가 될 것이다. ■ 김준기
Vol.20030328a | 티핑 포인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