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바라보기

박상미展 / PARKSANGMI / 朴相美 / painting   2003_0326 ▶ 2003_0401

박상미_the woods-city_한지에 수묵_45×45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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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326_수요일_06:00pm

삼정아트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02_722_9883

도시 숲 ● 박상미의 작업실 문을 열자 마자 내 시선을 끄는 스틸 사진이 한 컷 있었다. 그가 찍었다는 아파트 담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나무 두 그루였다. 화면을 가득 채운 아파트 담이 서광을 받아 반짝이고 그 앞의 앙상한 나무들이 그윽하게 서 있는 자태가 매혹적이었다. ● 박상미의 화면은, 실은 내게 이 스틸사진과 오버랩 된다. 그는 나무와 숲을 그린다고 한다.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자연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화면은 자연스럽다기 보다는 인위적이고, 전원적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도시적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작품의 호흡이 시작된다.

박상미_into the woods_한지에 수묵_72.7×90.9cm_2001
박상미_into the thought_한지에 수묵_26.2×36.5cm_2001

계속적인 수직선의 반복, 그 먹빛의 미묘한 조화 속에서 각각의 먹선은 나무이고 그래서 숲이 된다. 동시에 박상미의 화면은 도시의 빌딩 숲으로, 뜨거운 아스팔트 옆 우두커니 서있는 바로 그 나무들로 다가온다. 화려한 도시의 풍경이 먹빛의 무게로 침잠되어 있다. ● 화려한 도시의 빌딩 숲 사이로, 각자의 방향을 향해 바쁘게 걸어가는 도시인들 사이로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매연에 찌들었지만 우울하지 않은, 모두들 그 앞을 그저 스쳐지나가지만 외롭지 않은, 어쩌면 그것을 즐기며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지키고 있는 도시의 나무. 그들이 만들어내는 숲은 풍요롭진 않지만 먹빛이 품어내듯 당당한 깊이가 있다. 그래서 그의 감수성은 당당한 도시인이다.

박상미_숲-woods in the city_한지에 수묵_130.3×162.2cm_2003
박상미_생각의 숲속에서 헤메다_한지에 수묵_162.2×391cm_2003

그는 숲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그의 화면에는 옛 도시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고향에 대한 향수가 묻어나지 않으며, 가고 싶으나 일상에 쫓겨가지 못하는 전원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없다. 그가 직시하고 있는 것은 도시인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나즈막한 뒷동산, 높디높은 아파트 담벼락 앞의 듬성듬성한 나무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도시 공간에 대한 향수이다. 먹과 먹 사이에 의도적으로 비워놓은 하얀 여백은 공간에 대한 그의 애착을 드러낸다. 즉 그의 화면은 도시에 대립적인 산수 이미지가 아니라, 도시라는 공간 안에서 숨쉬고 있는 숲에 대한 애정이라는 점에서, 그는 지독히 도시적인 감수성을 지닌 요즘 세대인 것이다. ● 그러나 그의 화면에는 요즘 젊은 화가들이 그려내는 튀는 감수성, 자극적인 언사, 과도한 자기 정체성의 분출이 투사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극도의 자기 절제성이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화면의 긴장감이다. 이러한 긴장감은 그의 화면을 회화와 디자인과의 경계에 위치시켜 놓는다. 회화와 디자인의 정의에 대해 다시 묻게 만든다. 극도로 절제된 그의 화면은 디자인적이라 할 수 있지만, 작업 과정이 하나 하나 배어 나온다는 점에서 회화적이다. 그 경계에 서 있다는 점에서 위태롭기도 하지만 그 지점이 그의 작품을 주목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 경계의 긴장을 앞으로 어떻게 지속해 나갈지 지켜보고 싶다. ■ 박계리

Vol.20030326b | 박상미展 / PARKSANGMI / 朴相美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