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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321_금요일_10:30am
본전시_현대섬유예술의 새로운 조망 『직물의 비원』 배정순_차소림_장남용_장연순_장영란_최영자_정동림_정경연_정영주_도규희_금기숙 한선주_리치 쟈코비_장동림_강희경_김지희_김정식_김미경_김옥현_김선미_김태희 김언배_김영자_김영순_나오미 고바야시_구덕모_구경숙_권혁_권미세_이정희_이혜주 이정숙_이기향_이명조_이신자_이연희_린 리쳉 _문종숙_남상재_오명희_오순희_박기성 박광빈_류금희_미치코 사쿠마_카렌 서얼_송번수_송계영_송록영_왕경애_웬디 와이스 양상훈_양행기_유정혜_총 54명
특별전_대구섬유예술의 새로운 비상 『미래의 날개』 최주현_주리_임홍_정숙희_정관채_김미식_김나경_김소현_김영은_김유경_구방희 이준화_박화순_서현화_서령희 _손순복_유영선_총 17명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시 달서구 성당동 187번지 Tel. 053_606_6114
1. 이상한 세상-혼성의 물결 ● 오늘날 우리는 혼성混成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잡종들의 출현을 목격하고 있다. 후기산업사회에서의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 맥락들조차도 분화적 혹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교차되거나 혼합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담론들을 창출하는 것이 이젠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한마디로 압축하여 '혼성의 정원'으로 부를 수 있다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전에는 만날 수 없었던 음식, 환경, 문화들을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도 이러한 혼성의 현상을 옹호하고 새롭게 해석하려는 의지는 이미 리챠드 코살렉(Richanrd Koshalek)과 같은 전시기획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개진된 바 있다. ● 사실 혼성(Hybrid)의 개념은 서로 다른 종種이 교배함으로써 나타나는, 즉 형질이 변형된 상태의 잡종을 의미하는 생물학적 용어이다. 따라서 이종교배에 의한 잡종의 출현은 새로운 유전적 조합체가 증식됨으로써 기존의 생태계를 잠식해 나갈 수 있음을 예고하는 진화론적 지표指標가 되기도 한다. 잡종의 형성과정은 자연적인 현상에 기인하기보다는 대부분 인위적인 조작에 의해 시도된다. 특히 이러한 혼성 출현의 문제나 조건들은 단순히 생물학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사회가 다양한 문화나 인종의 혼성적 국가인 것처럼 오늘날 혼성의 문제는 인문학의 시각에서나 예술적 입장에서도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근본적으로 혼성에 관한 개념적 차이가 우리 사회와 서구사회와는 다르다는 역사적 인식은 너무나 필연적이다.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단일민족을 고수해 온 우리에게 있어서 혼성의 문제는 저 바다건너의 낯선 개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사실은 현대사회가 지향하고 요구하고 있는 문제들이 혼성에 관한 문제를 결코 도외시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과학자에게 있어서 새로운 종을 개발하는 일은 지구 에너지의 고갈, 식량과 인구문제 등에 절대적인 조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시도되고 있지만, 예술가들에 있어서 혼성의 문제는 낡은 패턴에서 벗어나 미술분야의 경계를 확장시키려는 혁신적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미술에 있어서 과학과 테크놀러지의 도입, 공간과 상황 그 자체를 하나의 매개체로 설정하는 설치미술, 영상매체를 도입한 시간예술적 표현 등과 같은 새로운 형식들은 하이브리드적 예술개념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볼 때, 현대공예에서 나타나고 있는 혼성적 경향 역시 하나의 주류적 문화적 현상으로 떠오른 지 이미 오래다. 따라서 이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연구와 해석을 요구받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실용적 미술의 대척점으로서의 오브제 공예의 확산, 재료적 영역으로 구분되어 왔던 공예분야 카테고리의 탈영역화, 재료적 혼합과 연계분야와의 접목을 통한 경계의 붕괴 등과 같은 새로운 물결은 이러한 혼성적 맥락을 새롭게 상기시켜주는 필연적 기제基劑들인 것이다.
본 전시는 이러한 혼성의 문제를 섬유예술에 대입하여 재맥락화하려는 첫 시도이다. 어떤 측면에서 섬유예술(Fiber Art, Art Fabrics, Textile Art) 혹은 직물공예(Hand-made Fabrics)는 그동안 우리 사회의 한켠에서 그 본격적인 거점을 마련하지 못하고 소외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것은 섬유라는 재료적 속성, 즉 내구성, 보존성, 수공예성 등의 한계와 함께 예술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승화시키지 못한 이유 즉, 산업직물로서나 의상소재, 패턴디자인(Pattern Design) 차원으로 접근해 온 사회적 인식의 편협성에 근거한 바 크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섬유의 예술적 발전은 차치且置하고 섬유산업적 측면을 진단해 볼 때, 섬유예술의 경제적, 문화적 가치를 새롭게 제고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놓여 있다. 그것은 대구를 중심으로 이미 세계적 기반을 갖춘 섬유산업의 하드웨어적 인프라와 외형적 기반을 내용적, 기획적, 마케팅적 맥락으로 전환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현실화하는 일 즉, 대구시에서 추진해야 할 섬유산업의 발전적 방안은 세 가지 측면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브랜드 이미지 창출을 위한 국제적 규모의 섬유비엔날레의 창설, 둘째는 고부가가치의 직물디자인을 완성품으로 생산하기 위한 소재개발 및 패턴디자인을 위한 유능한 인재의 양성, 셋째는 하나의 전략적 문화단지와 같이 전통염색과 직물공방을 운영하는 섬유예술가들의 집단창작스튜디오 건립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과제라는 점이다. ● 이 세 가지는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섬유예술도시 프로젝트로서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입안하여 추진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교육, 행정, 산업, 건축적 차원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소가 되도록 디자인하여, 이러한 섬유예술도시로서의 제 조건들이 격년제로 개최될 국제섬유축제에 종합적으로 결집됨으로써 문화적, 경제적 창출가치를 세계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여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모든 대상이나 기존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바라보고 재반성하는 노력이 가시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미지의 새로운 길을 향해 혁신적인 시도를 지속해 나가야 한다. ● 이러한 차원에서 구상한 본 전시회의 가장 큰 테제는 '혼성의 미학'이다. 섬유예술纖維藝術만큼 조직적인 체계로부터의 탈출과 변화를 꿈꾸는 장르도 드물다. 나는 이 섬유예술을 혼성의 지평에서 작가마다의 개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찾고자 한다. 직조(Tapestry), 염색(Dyeing), 예술의상(Art to Wear), 의상디자인(Costume Design), 퀼트(Quilt), 자수(Embroidery), 패브릭 디자인(Fabric Design) 등 모든 분화된 섬유예술의 영역들을 혼성의 정원으로 초대해서 하나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교류시키고자 한다. 나는 가능한 시간과 공간의 경계까지도 넘어서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전통과 현대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전통은 박물관이나 전통공예로 박제화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모든 예술과 공예품들 속에서 현대예술의 논리로 재구성되어야 하고, 현대의 숨결로 재디자인(Redesign)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공예와 순수미술(Fine Arts)이 상호교차하고, 순수미술이 공예로 전이되는 그런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자 한다. 생각해보면, 현대미술은 모든 음습한 자본의 논리 속에서 환금적 가치를 상위개념으로 위치시킨지 오래 되었다. 순수미술이 순수하려면 돈으로부터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하고 그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기를 고집하여야 한다. ● 본 전시기획의 개념은 이러한 사회 속의 한 부분으로서 응용과 순수미술의 구분을 거부하고 있으며, 나아가 그런 분화된 장르화의 벽을 철거하고 하나의 통일된 지평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그 통일의 땅, 초입에는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의 철학과 바우하우스(Bauhaus)의 창립선언문이 지향했던 정신들이 깃발처럼 나부끼고 있다. 즉 이들의 공통점은 조각, 회화, 건축, 공예와 같이 분화된 모든 조형예술 분야를 통합하여 협동작업으로서 종합예술을 구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또한 중세 길드(Guild) 체제처럼 공예가 다른 분야와 결속하면서 예술과 생활, 수공예 기술과 조형정신을 통합시키고자 한 것은 나의 오랜 관심사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바우하우스의 창립선언문 말미에 "미술가는 지위가 상승된 공예가이다.....미술가와 공예가 사이에 장벽을 이루는 계급구분을 없애고 새로운 공예가 길드를 조직하자!"라는 주장은 21세기 예술의 비전을 모색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지침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 이번 '직물의 비원'전은 '혼성'이라는 개념과 '종합'이라는 정신을 테제로 하여 섬유를 매체로 한 모든 장르들을 '숨겨진 정원'으로 불러들여 직물의 원초적 가치에 기대어 다양성의 꽃을 피워보고자 한 것이다. 국내작가 48명과 외국작가 6명 총 54명을 초대한 본 전시는 이러한 기획자의 의도와 합치되는 작가들로서 적어도 현대섬유예술의 주요한 단층을 명료하게 보여 주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이들 작가마다 서로 다른 개성적인 예술개념의 단편들이 전시의 전체적 구조 속에서 하나의 통일된 우주처럼 공존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특별전으로 구성한 '미래의 날개'는 대구지역의 출신 작가이거나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17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대구의 미래를 조명하여 보고자 하였다. 이 특별전의 근본적인 틀 역시, 본전시인 '직물의 비원'전에서 설정한 전시개념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음은 전시를 통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2. 변이(變異)된 직물의 숲 ● "나는 현대미술이 적어도 한 방향에서는 뚜렷한 진보를 이루어 오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술은 점차 소유할 수 있는 작품의 성격이 줄어들고, 관람자 내면의 생리적, 심리적 변화의 연속적인 움직임에 부응하는 단순한 매개체로 변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보면, 미술의 성격은 '모든 감각의 교란'이라는 낭만적 교조와 기술공학에 대한 숭배로서, 결국은 낭만적인 것과 공학이 서로 손을 잡으려는 새로운 시도라고 볼 수 있다." _에드워드 루시 스미스(Edward Lucie-Smith) ● 1962년 스위스 로잔느에서는 현대섬유예술사에 있어서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로잔느 국제현대타피스트리비엔날레(Biennale Internationale de la Tapisserie Contemporaine de Lausanne)가 창설되었던 것이다. 사실 현대섬유예술의 회화적, 예술적 뿌리는 이미 바우하우스에서부터 태동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바우하우스의 직조공방에서는 추상미술의 한 지류로서, 이미 새로운 추상형태의 구성과 기하학적 포름의 문제를 직조에 시도했었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후 이러한 직조의 새로운 경향성은 2차 세계대전이후 유럽에서 커다란 물줄기를 형성하게 된다. 특히 밀라노트리엔날레(Milano Triennale)를 통해 쟈고다 뷰익(Jagoda Buic)과 같은 작가가 등장하면서 건축이나 디자인과의 결합에서 탈피하여 예술적 표현의 자율성을 추구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반영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1950년대 말부터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공예전반에 걸쳐 공방공예운동(Studio Craft Movement)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산업직물에 관여하는 디자이너로서의 공예가(Craftsman as designer)와 예술가적 공예가(Craftsman as artist)가 확연히 구분되었고, 본격적인 예술가로서의 섬유예술가(Fiber artist)라는 개념이 창출되었다. 1960년대는 순수미술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섬유예술의 독립적 장르화가 전개되었고, 이 시기에 창설된 로잔느 타피스트리 비엔날레는 현대섬유예술의 전개에 커다란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었다. 마그달레나 아바카노비치(Magdalena Abakanowicz)는 이 비엔날레를 근거로 섬유예술을 하나의 조각적 개념으로 승화시킨 작가이며, 1963년도 뉴욕의 미국현대공예박물관에서 열린 『직물조형(Woven Form)』전에 선보인 르노어 타우니(Lenore Towney), 쉘라 힉스(Sheila Hicks), 클레어 자이슬러(Clare Zeisler)와 같은 혁신적인 섬유예술가들의 작품들은 기존의 섬유공예에 대한 인식을 미학적 차원으로 전환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러한 섬유예술의 현대적 전개에 있어서 미국의 교육적 업적과 작가지원은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특히 전후에 설립된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Cranbrook Academy of Art)와 블랙 마운틴 칼리지(Black Mountain College)와 같은 미술학교에서의 실험적인 예술교육과 조형이념은 현대미술 뿐 만아니라 섬유예술의 전개에 있어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이번 '직물의 비원'전에 출품하는 리치 자코비(Ritzi Jacobi)나 고바야시 나오미(Naomi Kobayashi)는 1970년대 이후 직물이 담보하는 물질적 공간과 표현개념을 회화, 조각을 통합하는 차원으로 전개시킨 대표적인 작가인 것이다. ● 1945년 이후 현대섬유예술의 조류를 되돌아 볼 때, 크게 세 가지 물결이 존재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재료와 기법의 확장이며, 둘째는 표현형식의 다차원화, 셋째는 전통에 대한 재해석의 기류 등으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섬유예술", 송번수 편저, 디자인하우스, 1993 참조.) 우선 재료와 기법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현대섬유예술가들은 종이, 열대식물, 가죽, 해초류 등과 같은 천연재료는 물론 합성섬유나 필름, 금속, 로프, 그물 등과 같은 인공재료나 타 분야의 재료까지도 표현의 매체로 다루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러한 재료의 확장은 다시 기법과 결부되면서 전통적인 직조(Weaving)나 자수(Embroidery), 꿰맴(Stitching), 누빔(Quilting), 염색(Dyeing) 등에 얽매이지 않고 엮기(Plaiting), 펠팅(Felting), 접합(Joining), 종이제작(Paper Making), 바스켓트리(Basketry), 입체적 구조화(Cubic Structure) 등을 다각적으로 시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기류는 현대섬유예술이 전통적인 직물공예의 평면성과 실용성에서 벗어나 예술의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구가하려는 시대적 흐름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라 하겠다.
다음으로 표현형식의 다차원화 문제는 현대섬유예술의 조형적 개념과 인체공간을 벗어난 비현실적 경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섬유는 더 이상 벽면이나 집안을 장식하는 직물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립하는 입체물로서, 개념적 표현의 대상물로서 이른바 오브제성(Objectivity)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섬유예술가들은 이제 주변공간과 환경조차도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표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하나의 대상공간으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섬유작품은 궁극적으로 설치될 건축공간이나 미술관의 조건에 의해 가변적 형태를 띠게 되거나, 그러한 상황에 놓여진 상황오브제(Situational Object) 혹은 순수조형물(Pure Artefact)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섬유예술의 표현형식이 고정적 화면이나 입체물이 아니라 다층적 해석이 가능한 열려진 개념을 추구하는 것은 보편적 현상의 하나이다. 나아가 극단적으로 관람자와 상호작용하려는 예술적 의지를 반영하는 하나의 물질적 형태를 지향하는 것조차 탈장르화의 시대적 조류에서 보자면 비단 섬유예술만의 국한된 문제는 아닌 것이다. ● 끝으로, 전통에 대한 재해석의 기류는 자국의 문화는 물론 다른 나라의 문화적 요소들을 도입하거나, 이미 사라진 기법이나 소재들을 다시금 해석하여 현대적으로 변용하는 경향을 지칭한다. 이러한 대표적인 경우는 일본이나 한국, 중국과 같은 아시아권의 국가에서 전통섬유직물의 염색이나 기법들을 예술적, 산업적으로 재현하려는 시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원시미술의 원류로서 아프리카의 프리마티비즘(Primitivism)이 입체파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듯이, 오늘날과 같이 전지구화된 시대에 전통직물을 생산했던 고유한 기법이나 소재는 문화적 차원에서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 예술적 유산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산업디자인의 대량생산체제가 지닌 획일적 매카니즘에서 벗어나 노동의 신성함과 수공예의 가치를 현실공간에서 구현하려는 예술가적 입장과 착근着根되면서, 섬유예술의 미래적 전망을 제시하는 하나의 이정표이기도 하다. ● 생각건대, 현대섬유예술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태동의 빛을 드리운 것은 1950년대 이후의 일이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의 참화를 딛고 지난 반세기동안 현대섬유예술계 1세대들의 활동과 교육적 역할에 의해 수많은 후진들이 배출되었고,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이제 21세기의 초입에서 우리는 섬유예술에 관한 기존의 역할과 가치에 관한 새로운 반성과 도약의 계기를 다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나날이 첨예하게 글로벌화 되어가는 국제적 무대에서 국가적 생존력은 섬유예술의 미학적 가치가 직물로 전이되는 세계 즉, 경제적 가치창출의 가능성에서 찾아져야 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어쩌면 '섬유예술'은 직물의 숨겨진 정원이 아니라 직물의 거대한 원시림이 되어 개인과 사회, 순수성와 실용성, 과학과 예술, 전통과 현대가 혼성적으로 접목된 한국의 대표적 유전적 변이체變異體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3. '일상(日常) 속의 직물'을 꿈꾸며 ● 「그리이스 로마 신화」에는 아테나(미네르바) 이야기가 나온다. 아테나는 오늘날로 말하면 공예의 여신인 셈이다. 그녀는 실용적인 기술이나 장식적인 물건을 관장하는 제우스의 딸이었다. 이 여신이 어느 날 아라크네라고 하는 길쌈과 자수의 명수인 인간이었던 처녀와 경쟁을 하게 된다. 아라크네는 다양한 제재題材의 변주와 함께 신들의 과오過誤를 풍자적으로 표현하여 타피스트리에 담게 된다. 아테나는 이 아라크네의 표현능력과 솜씨에 감탄하면서도 분노를 삭이지 못한 나머지 여신으로서의 능력을 빌어 이 여인을 거미로 만들고 만다. 아라크네는 결국 자신의 놀라운 기량과 비판적 지성으로 인해 몸에서 평생 실을 자아내야 하는 거미의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신화의 내용에서 직물이 단지 인간의 신체를 보호하는 의복의 차원을 넘어서 비판적 지성을 담는 표현의 수단으로 역할하고 있었음을 엿보게 된다. 비록 신화라고는 하지만, 신화시대부터 이미 직물의 창조적 표현이 존재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 궁극적으로 섬유예술 혹은 직물공예는 우리 삶과 가장 밀착한 예술의 한 형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섬유, 그 원초적 의미로의 '철학적 귀환歸還'을 전제로 한다. 수평과 수직의 만남, 인간과 자연의 교직交織, 원초적 노동과 창조적 정신의 교류交流, 직물 속에 담긴 개인사와 사회적 상황의 축적 속에서 그 본질적 의미들이 새롭게 일어서야 하는 것이다. 텍스타일, 그 직물의 꿈속에 교직된 인간사의 흔적들이 우리의 몸과 생활과 사회를 감쌀 수 있는 하나의 정신적, 예술적 피막皮膜으로 승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돌아보면, 오늘날 우리 삶의 공간은 너무나 견고하고 메마른 콘크리트의 울타리 속에서 부드러움을 상실해 가고 있다. 섬유는 굳어져 가는 우리 삶의 환경을 가장 부드럽게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매체이다. 공기와 먼지와 빛이 활보하는 자유로운 유동의 공간에서 정서적 안식의 깊은 사유思惟를 매개할 수 있는 매체. 이제 우리는 이 매체(직물)를 삶의 공간 속에, 건축 공간 속에, 예술적 사유 속에 적극적으로 유입시켜야 한다. 섬유는 시간을 직조하는 부드러움의 미학이다. 사고思考가 부드러울 때, 우리 사회는 평화와 존중과 상생의 미덕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 그 뿌리는 우리의 인체와 생활공간과 건축적 구조를 다시금 포옹抱擁하면서 어머니의 품과 같은 안식의 빛을 드리워 주게 될 것이다. ● 이러한 맥락에서 섬유예술은 공예의 여신 아테나가 질시해 마지않았던 아라크네의 창조적, 풍자적 표현능력을 일상 속의 직물에 다시금 전이시켜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의상과 직물은 결코 예술과 산업, 순수조형과 실용으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일정한 외형-그것이 인체든, 일상의 공간이던 간에-을 대상으로 한 부드러움의 조형인 것이다. 나는 창조적 매개로서의 수평과 수직의 화음, 그 직물의 비원秘苑은 이제 더 이상 숨겨진 정원이 아니라 일상을 위한 열린 정원으로 우리 앞에 새롭게 펼쳐지기를 희원希願한다. 이번에 초대된 54명의 본전시 초대작가들과 특별전 17명의 작가들은 직조, 염색, 자수, 예술의상, 섬유조각, 혼합매체, 설치적 표현 등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기량들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는 대표적 섬유예술가들이다. 그들은 직물의 비원에 각자의 예술적 개념을 머금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공존共存의 화음과 불일치의 원시적 향기들을 발산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텍스타일로 교직된 예술적 표현의 감성이 산업적 직물과 창조적으로 교류하는 세계, 그 혼성混成의 지평을 바라보고 있다. ■ 장동광
■ 부대행사_국제섬유예술세미나_현대섬유예술의 흐름과 동향 2003_0322_토요일_10:00am~06:00pm_대구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장 발표 1. 카렌 서얼_"미국의 섬유예술 및 나의 예술세계" 발표 2. 사쿠마 미치코_"예술로서의 섬유 및 나의 작품세계" 발표 3. 린 리쳉_"시대를 초월하는 문화교류시대-중국섬유예술의 발전상황" 발표 4. 리치 자코비_"유럽 섬유예술 및 작품 성향" 발표 5. 나오미 고바야시_"나의 작품세계" 발표 6. 장경희_"한국 현대섬유예술의 동향"
Vol.20030322a | 대구 텍스타일 아트 프레 도큐멘타 2003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