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지평

한담 김순협 회화展   2003_0320 ▶ 2003_0330 / 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김순협_소년_캔버스에 유채_55×28cm_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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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갤러리 고도 서울 종로구 명륜동 2가 237번지 아남주상복합 301-103호 Tel. 02_742_6257

드넓은 영역으로의 확장 : 김순협 회화공간의 기능 ● 1990년 쾰른에서의 첫 개인전 이래로 김순협은 그 동안 여덟 차례에 걸쳐 자신의 다양한 회화적 시도를 1990년대 10년 간을 채워왔다. 그의 시도는 축약되고 상징화된 형태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로 출발하여, 유럽과 극동에서 실험된 치열한 생존의 역사를 목격한 미술가 자신의 시각적 견해를 "장미시대" 연작, 신화와 연관된 테마, 그리고 "I.T.S." 연작에 표현했고 1994년 여섯 번째 개인전에서는 화려한 꿈의 이면을 받치고 있는 폭력성을 희생의 개념으로 드러내었다. 이처럼 양극단을 오가는 변화들을 거쳐 최근 김순협은 고흐를 비롯한 과거 거장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을 자신의 독특한 칠과 결합하는 회화를 제작해 오고 있다.이 번에 걸리는 "문명의 지평"은 2001년에 발표된 그의 "불의 유혹"연작과 대비되는 주제적 특징과 함께 그 이전 것들과도 비교되는 몇몇 외형적 특징이 얼핏 보인다. "불의 유혹"연작에서 김순협의 칠이 과거 거장들에 의해 제작한 인체의 이미지의 복제물 위에 올려진 반면 최근의 것은 먼 지역에 관한 풍토적 이미지나 일상의 환경을 기록하는 현실 대상을 재현 한 사진 위에 그의 몸짓을 기록한다. 김순협의 회화에서 복제물이나 현실에서 유래되는 기성품이 적용된 사례는 훨씬 이전의 연작들에도 보인다. ● 김순협에 의하면 자신이 1990년대 중반부터 즐겨 그려온 나비나 꽃을 닮은 형태들이 실은 태극 무늬의 배열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그것은 또한 태아나 배아의 형태와도 유사하다. 이 형태는 점성이 강한 액체에 혼합된 안료를 붓에 묻혀서 평면에 막 칠해갈 때의 붓자국과 흡사하다. 그러니까 이 것은 미술가의 의지와 화면이 맞닥뜨리는 지점에서 겨우 감지되는 최초의 형태인 셈이다. 이 지점은 육신을 가진 미술가의 현실과 캔버스 공간이 야기할 회화의 환각적 세계가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곳이다. 심지어 김순협은 물감이 내면의 열정을 고스란히 대리하도록 고안된 고흐의 색 점들마저 첫 붓자국의 담담함과 겸손으로 번역해 낸다. 이 점이 표현주의의 화면에서 열정적으로 분출하는 몸짓과 김순협의 칠을 구별되게 한다.

김순협_지평선_종이에 유채_24×76cm_2003

김순협의 회화는 미술가의 손을 떠난 뒤에도 곧장 세상에 나가지 않는다. 점성이 강한 기름을 활용한 그의 칠들은 건조를 위해 오랜 시간 그의 제작실에 머물러야 한다. 캔버스나 종이를 마주하기 이전의 생활 속에서 가졌던 김순협의 의도는 안료를 칠하기 위해 혼합하는 순간 교정을 받고 그것을 화면에 칠할 때 다시금 달라진다. 그리고 그것을 말릴 때 제작의 의도나 제작을 가능케 한 동기는 더 이상 화면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기다림으로 대처된다. 결국 김순협의 제작공정은 미술가 자신의 강한 의지가 다른 것으로 순차적으로 변화되어 가게 한다. 이들 변화는 곧 건조를 통한 화학적 변화를 거쳐 화랑공간에 걸리게 된다. 김순협의 제작과정에서 완성에 가까울수록 미술가의 물리적 기여는 점점 줄어들고 기후와 같은 인간의 영역에서 통제될 수 없는 힘에 나머지 공정을 내맡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김순협의 연작들에서 최근의 것에 가까울수록 바탕에 미술가의 물리적 의지가 미치는 영향력의 흔적은 차차 줄어드는 듯하다. 1990년대 초기의 작품들에서 바탕이 대부분 미술가에 의해 직접 칠로 설정되거나 파피에콜레와 같은 실재물이 적용되더라도 칠된 바탕 위에 소극적으로 올려졌다. 그러던 것이 그 뒤에는 거장들이 제작한 작품의 영상을 전사한 천으로 캔버스를 짜거나 그 영상이 인쇄된 종이를 활용하는 것으로 실재하는 대상을 회화의 토대로 삼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비록 인쇄된 현실의 실제물이지만 회화의 환각적 전통을 암시하는 영상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의 것은 바로 그와 같은 회화적 냄새가 전혀 없는 인쇄물이 칠을 받치는 바탕이 된다.

김순협_수평선_종이에 유채_24×67cm_2003

나는 김순협의 회화에서 화면의 토대가 되는 이 바탕이 삶의 실재하는 현실과 밀접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최근 연작에서 채용되어 물감으로 뒤덮여지나 부분적으로 노출되는 바탕의 인쇄물은 일상의 물리적 조건에서 목격되는 측면의 깊이 공간을 재현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이는 그 이전에 적용된 과거 거장들의 그림이 복제된 바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복제물들은 죄다 땅을 디디고 살아가는 인간의 키의 높이에서 관찰된 원근법의 세계에 의존된 영상들이다. 더 소급해서 훨씬 이전에 제작된 바탕은 비록 그와 같은 조건이 재현된 것은 아니지만 벽이라는 현실의 환경에 부착되는 회화의 토대로 기여하도록 칠이 실감 있게 층져 있다. 김순협 회화의 바탕에서 감지되는 이미지들은 일상에서처럼 그것들 간의 긴밀한 관계로 결속되어 있다.

김순협_지평선_종이에 유채_23×78cm_2003

그와 같은 화면 바닥의 배경에 대비하여 표면 위에 반복되는 색점의 형상들은 측면의 깊이 공간으로부터 자유롭다. 그것은 우물의 수면 위를 가득 떠 있는 개구리밥을 보는 관람의 조건을 제공한다. 이와 같은 형상의 설정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다 봤을 때 점점이 있는 지상의 사물과 흡사하고 혹은 큰 나무 아래에 누워서 하늘을 봤을 때 무수히 떨어지는 늦가을 낙엽들이 포착되는 조건과 유사하다. 그 낙엽은 무한한 깊이의 공간 혹은 뻥 뚫려진 채 비어 있는 하늘을 이웃으로 한다. 역시 높은 곳에서 지상을 내려다 봤을 때 지붕들은 서로간에 아무런 연관 없이 점점이 떨어져 있거나 붙어 있다해도 지붕의 윗면들만 보일 뿐 그것의 측면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들 공간에서 시각은 막힘 없이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다.

김순협_홍도_종이에 유채_28×55cm_2002

1990년의 개인전 이후 지금까지 김순협의 회화의 전개에 면면히 유지되는 흐름은 형상들의 중첩으로 묘사된 측면의 공간이 무한한 깊이의 공간을 야기하는 형상들로 점차 가려지려는 방향을 향해 있는 점이다. 이런 특징은 이 번에 걸리는 회화들에서 더욱 확연하다. 그럴수록 화면의 스케일은 장대해지고 회화의 가장자리는 까마득히 먼 곳의 경계로 다가온다. "문명의 지평"연작 중 몇몇은 두 개 이상의 화면으로 구성된 것들이 있다. 여기에서 바탕에 채용된 사진들은 각각 다른 시각에서 보이는 장면들이 동일한 수평선을 이루며 조합된다. 그랬을 때 관람자의 시각은 점점 더 높은 곳에서 대지를 보는 원근법을 가능케 한다. 이를 때 수평선은 화면의 가장자리와 함께 더 넓은 영역으로 확대되어 보이게 한다. 곧 김순협의 "문명의 지평"은 개방된 공간의 조건에서 관람자를 향해 돌출하는 칠의 형태들과 현실의 공간적 조건에 흡사한 배경의 구축물들간의 증폭되는 충돌을 통해 관람자 스스로 그의 회화를 통해 일상의 규모로 가늠 불가능한 드넓은 지평을 확보하게 한다. "문명의 지평"연작에서 점액질의 안료로 칠된 형상과 그것에 의해 거의 가려지거나 간간이 드러나는 바탕간의 마찰을 통해 관람자는 확장된 지평의 스케일뿐만 아니라 시각이 음향으로 번역되는 회화의 화학적 변화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 변화는 현실과 가까울 것으로 간주되는 재현적 이미지가 회화의 표면 너머로 밀려가고 현실의 것과 전혀 닮지 않은 미술가의 몸짓이 앞으로 다가오는 반전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화학적 변화의 구체적 단서가 되는 강한 점액질의 흔적들은 머물지 않고 항상 변화하는 세계속에 한정된 물리적 조건으로 대응하는 인간의 땀처럼, 마찰하고 충돌하는 화면에서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는 듯하다.

김순협_서울역_종이에 유채_34×51cm_2003

김순협은 1980년대, 10년 간에 걸쳐 국내와 유럽에서 각각 수학하고 자신의 예술적 기상을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왔다. 다양한 문화적 충돌이 한꺼번에 몰아친 역사를 유지해온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제작된 그의 회화들은 인간에 대한 그리고 문명에 대한 치열한 시험관으로 미술가 스스로 간주해 왔다. 사랑, 죽음, 창조, 부조리와 같은 인간의 실존적 상황과 사물의 외관을 통해 목격되는 시각의 순수성간의 첨예한 대립을 종합하는 그의 회화는 최근 무분별한 디지털 매체의 병리적인 몇몇 현상들에 대해 시각예술의 건전한 대응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에 걸리는 연작들을 통해 김순협은 미술가의 제작실에서 완성되는 회화가 인간의 생존에서 비롯된 문명의 폭을 담아 낼 정도의 넉넉한 매체임을 제작의 공정, 회화공간의 설정과 같은 회화적 전통의 방식을 새롭게 복구해 보임으로써 증명한다. ■ 이희영

Vol.20030320c | 김순협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