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3_0319_수요일_05: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인간은 삶을 통해서 경험을 쌓아가며, 예술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경험의 내부에는 감정이라는 요소가 있는데 이것은 자아와 세계와의 만남이다. 자동적이고 순식간에 일어나서 이내 관찰자는 자신을 그 대상 속에서 느끼고 그 대상을 체험하게 된다. 미적 체험은 우리 삶의 실천과 우리의 자기이해를 밝혀주고 말못함과 표명되지 않은 침묵에 감추어진 세계를 접근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 몇 년 전 방에 걸려있는 달력 속에 고흐가 자신의 방을 그려놓은 그림을 보게되었는데, 왠지 그 안에 여러 사물들이 있었지만 유독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의자에서 나 자신을 보는 듯 했다. 그리고 동시에 또 다른 나로 하여금 그것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은 감정이 일어났다. 누군가에 의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고 스스로는 완전하거나 온전히 설수 없는, 아직은 수동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의자에 대입시켰다. 그런 내 모습이 소심하고 나약하게만 보였고 강해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심리가 나를 지배하고 있을 때 '의자'를 보게 되었다. 의자가 내 작품안에서는 나의 안식처이기도 하지만, 의자가 어떤 표현을 하고싶어 하는지 내가 의자가 되어 그림으로 표현되어진다. 그래서일까 그림에서의 의자는 변형되어 표현된다. 구부리고 해체시키고 집합시킴으로써 변형되는 의자를 보면서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페티쉬즘이란 어떤 형태로든 자기에 대한 불안감과 위기를 느끼는 인간이 어떤 것에 의존함으로 인해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나약한 심리를 방영하는 것이며, 예술가는 페티쉬로서 오브제나 형상을 창조, 발견함으로써 스스로를 위로받고 보상받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의자는 나에게 일종의 페티쉬였던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현실과의 괴리에서 자신의 이상스러움이나 결함을 고치고 바꾸지만 예술가는 오히려 자기의 특수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예술이라는 다른 세계, 즉 자신이 창조해낸 세계 안에 적응하고 그러한 자신을 '표현'이라는 방법으로 작품 속에서 살리려고 한다. ● 선긋기라는 상징적 요소는 나에게 있어 자유의 개념을 잘 드러내주는 표현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자유'라는 개념은 속박과 억압의 부재로서 파악되는 '...로부터의 자유로움'이라는 부정적, 소극적 의미와 스스로 무엇인가를 향해 나아가는 '...를 위한 자유로움'이라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미가 있는데 나에게 있어 자유에 대한 첫 인식은 전자의 의미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나를 둘러싼 상황과 나 자신을 인식하면서부터이다. 내 그림에서의 선은 사물의 윤곽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선 그 자체가 어떠한 율동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적절히 이루어졌을 때 리듬감을 발생시킨다. 두껍거나 가는, 혹은 길거나 짧은, 가볍거나 무게 있는 선들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데 용이하다. 내면세계를 자연스럽게 나타내는데 있어서 반복적인 선긋기는 자아를 상징하는 의자를 표현하는데 있어 더욱 자유롭게 해주었다.
앞으로 나의 작업이 어떠한 변화와 필요를 추구하게될지 모르나 이 전시를 통해서 나 자신의 상태를, 그리고 작업세계를 이해하게 된 것 같이 항상 내부적, 외부적 요인을 침착하게 짚고 넘어감으로서 나의 작품세계를 조금씩이나마 발전시켜 나가야겠다. ● 나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속에서 나는 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비상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대 비약에 의해 공중에 내동댕이쳐진 상태와 같았다. 이 비상의 감각은 내 정신을 매우 고양시켜 주었지만 나는 내 자신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걱정될 만큼 높이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때 나는 상승과 낙하를 호흡의 정지와 내뿜는 것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살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 나 역시 몇 년을 찾고 또 찾아왔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은 없고, 어떠한 목표에 도달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나도 역시 어떠한 목표에 도달하게 되겠지... 나는 살기 위해서 나의 내부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 외에는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었을까?
그 해 겨울 내내 나는 형언하기 힘든 내적 폭풍우 속에서 지냈다. 고독하다는 것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익숙해져 있었음으로 새삼스럽게 고독이 나를 압박하지는 않았다. 나는 데미안과 황금빛 매와 나의 숙명인 동시에 나의 애인인 커다란 꿈의 영상과 더불어 살았다. ... 그러나 이 꿈들 중의 단 하나도, 내 생각의 한 조각도 나에게 복종하지 않았고, 나는 그것들 중의 단 하나도 내 임의대로 불러들일 수가 없었으며 단 하나도 내 마음대로 채색할 수가 없었다. ● 낯설은 영혼이 싱클레어에게 씌워진 것이다. 낯설은 영혼이란 그가 밝은 세계의 온실 속에서는 그 존재를 제대로 의식할 수 없었던 개인 무의식의 어두운 부분 곧 그림자를 가리킨다. "그림자는 자아가 강한 의식성을 띄고 분화해 나가는데 따라서 뚜렷해지는 것과 같다." 즉 그림자는 인간이 자기실현 과정에서 부딪쳐야하는 필연적인 존재이다. 그는 내 꿈속과 현실에서 마치 나의 그림자처럼 나와함께 살았다. ● 가령 우리의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그것은 전혀 새롭다거나 아주 뜻밖의 것을 나에게 부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가장 평범한 것까지도, 나의 내부의 같은 곳을 희미하게나마 끊임없이 두들겼다. 모든 것은 나의 형성을 돕고 내 외피를 벗기고 알의 껍질을 깨는데 도움을 주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들의 대부분을 꿰뚫어볼 수가 있어서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거의, 아니 전혀 그렇게 하려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생명의 작은 부분이나마 살아보고 나 자신 속에서 무엇인가를 끄집어내어 그것을 세상에 주고, 세상과 관계를 맺고, 싸움을 시작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 여러번 저녁의 거리를 산책하다가 끝내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한밤중까지 헤매고 다닐 때면, 이번에는 틀림없이 나의 애인과 마주치리라, 다음 골목 모퉁이에서 그와 만날 수 있으리라, 저 다음 창문에서 그가 나를 부르리라 하고 생각했다. ■ 황현숙
Vol.20030319a | 황현숙 수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