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漆)로 그린 그림

정채희 회화展   2003_0312 ▶ 2003_0322

정채희_마음의 정원_나무판에 칠화 종합기법_200×120cm_2003

초대일시_2003_0312_수요일_05:00pm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종로구 관훈동 170번지 Tel. 02_725_1020

1990년대 전반에 국내에서 두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었던 화가 정채희는 지난 7여 년 간 중국에서 다양한 벽화 기법을 배운 후 우리에게는 생소한 칠화를 가지고 귀국전을 연다. 칠화란 옻나무의 수액을 주매제로 하여 그것을 다른 여러 재료들과 혼합하여 그린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생소한 첫 번째 이유는 옻칠이 장르들 사이의 경계와 순수미술과 공예 사이의 위계가 사라졌다고 믿는 오늘날에도 우리나라에서 옻칠이 공예품이나 생필품에 주로 사용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전통적 기술이나 기법 전수를 위한 노력이 질적으로 양적으로 모두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정채희_나무판에 칠화기법_91×72cm_2003

밑판을 만들어 그 위에 밑그림을 그리고 그 판 위에 올려지게 될 칠액과 다른 재료들의 흡착력을 돕기 위해 천이나 종이를 붙인 후 농도가 다양한 칠액을 바르고 말리고 갈고 덫칠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고 그리기, 뿌리기, 갈기, 뭍기, 씌우기, 파내기, 상감하기 등등 여러 기법들을 혼용하는 칠화는 작가의 신체적·정신적으로 대단한 노력과 참을성을 요구한다. 정채희는 이러한 작업을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설명하고, 그것의 결과물을 "마음의 정원"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채희_나무판에 칠화기법_91×72cm_2003

그녀의 칠화 화면은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된 지층처럼 부피감과 은은한 색감을 지니고 있다. 칠액과 다른 재료들의 물리적 특징들을 따라가면서 그녀가 만들어 낸 이미지들은 퇴적토에서 자라나는 식물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나 성격이 오랜 시간동안 경험과 생각 그리고 감정이 쌓이고 섞여서 이루어진 것이라서 한 사람의 외양과 말에서 그의 삶의 궤적을 짐작할 수 있듯이 정채희가 오랜 시간동안 붙들고 만들어 낸 칠화에서도 그녀의 몸과 마음의 흔적들이 읽혀진다. 그것은 부는 바람에 따라 흔들리고 무게에 따라 늘어지는 가녀린 줄기 식물의 모습이나, 지형에 따라 굽으면서 흐르는 물결의 모습이다. 사계의 흐름에 따라 식물을 관찰하고 돌보는 농부처럼 그녀는 칠액의 변화를 살피고 그것에 따르면서 질감과 이미지들을 키워낸다. 이를 통해서 그녀의 "마음의 정원"은 은유이자 실체가 된다.

정채희_아크릴판에 칠화기법_61×50cm_2002

이러한 자연의 원리에 따르는 자연물의 생태는 "하나의 영역 안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서 모든 것을 "상반된 개념"으로 나누는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는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형태라고 할 수 있고, 관목보다는 풀에 가까운 식물들의 모습은 그러한 삶의 의인화라고 할 수 있다.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색채와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듯이 생생한 느낌을 주는 식물이미지가 어우러진 그녀의 작품들에서는 지지난 세기말과 지난 세기초에 멀리 유럽인들이 바랬던 이상향인 조화와 화합의 세계가 상상되기도 한다. ■ 김정희

Vol.20030313a | 정채희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