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3_0305_수요일_05:00pm
갤러리 도올 서울 종로구 팔판동 27-6번지 도올빌딩 Tel. 02_739_1405
이진원의 최근작에 대한 단상 ● 이진원의 작업만 봐서는 그가 예고 시절부터 근 20여 년 동안 동양화를 그려온 작가임을 알아채기가 힘들다. 동양화라고 부를 만한 특징들이 화면 어느 곳에서도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은 문인화적인 수묵의 전통적 방법론과도 거리가 멀고, 동양적 채색화라고 부를 수도 없다. 그렇다고 수묵과 채색을 적절히 혼융한 구성주의적 작업도 아니다. 화면 속에 여백이라 부를 만한 것도 하나 없고, 수묵과 운필의 상호 작용에서 오는 일필휘지(一筆揮之)의 긴장이나 속도감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동양화의 우성적 특징으로 열거되는 이러한 요소들이 모두 제거되어 있으니 '寫意'니, '一劃'이니, '氣'니 하는 동양 미학의 범주로 그의 작업을 재려는 모든 시도들은 수포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이러한 점들은 지금 준비하고 있는 세 번째 개인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95년의 석사청구전을 겸한 개인전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작업이 모두 동시대의 주류적 경향에서 일정정도 벗어난 것들이다. 이는 이러한 가치들에 대한 작가의 의식적이거나 최소한 무의식적 거부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진원의 이러한 거부감이 잘 드러난 것은 1996년에 관훈미술관 전관에서 개인전 형식으로 치러진 기획전 '일상의 힘, 체험이 옮겨질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떻게 보면 이진원의 작업은 다른 5명의 작업과는 이질적이다. 모두들 수묵을 바탕으로 채색을 혼융한 형상작업인 반면 유독 이진원 만이 그 어느 것(수묵, 채색, 형상)도 아닌, 비정형, 비전통적이고 대단히 개인적인 경향의 작업을 선보였다. 이는 이진원이 동시대 동료 작가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시점에서 동양화의 방향성에 대해 사고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동안 동양화라는 관념의 틀이 항상 동양화의 적극적인 실험을 제어해 왔으며 여러 세대에 걸친 고민의 진원지였음을 상기할 때, 동양회화의 우성적 가치로 열거돼 오던 여러 관념들의 해체로부터 출발하는 이진원의 작업은 신선하고 고무적이다. 동시대 주류 양식과 동료작가들로부터의 일정한 거리두기, 추상에의 유혹에 빠진 거대 담론의 거부는 동양화를 휘감고 있던 많은 관념적 꺼풀을 벗긴 체 작업을 첫 출발선으로 돌려놓았다. 이번에 선보인 최근작에서도 이러한 고민들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움은 그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출발점을 맴돌 뿐 마음처럼 나아가지 못한 듯 하다.
그러나 나는 이진원의 최근작을 보면서 어쩌면 서양의 화가들이 갖지 못한 행복한 고민에 쌓여 있는 것이 동양화 작가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동양화니 서양화니 하는 구분을 접어두고 본다면, 동양화를 그 재료적, 표현적, 미학적 근거로 사용하는 동양의 작가들은 서양의 동시대 작가들에 비해 훨씬 폭 넓은 재료적 경험과 회화의 정신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여타 지역, 여타 장르의 작가들에 비해 동양화가들만이 누리는 엄청난 혜택이며 현대 동양화가들에게 열려있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엄밀히 얘기해서 아시아에서 현대 동양화의 고민은 채 50년을 넘지 못하지만,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과 갈등은 거꾸로 아시아 현대 미술이 발전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토양이며 에너지였다. 개인적으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현대 미술은 이러한 폭넓은 재료적 경험과 고민들, 미학적 근원들 속에서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 앞에 놓여있는 가능성이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그 전체가 보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진원의 앞으로의 작업에서 이러한 가능성이 한결 한결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 윤재갑
Vol.20030307a | 이진원 채색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