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3_0305_수요일_06:00pm
갤러리 라메르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4번지 홍익빌딩 Tel. 02_730_5454
허욱이 그린 띠그림들은 손의 움직임이나 근육의 강약, 또는 호흡과 속도가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특징을 갖는다. 한편으로 그의 작품에는-매체의 불투명성에 근거하는 미니멀리즘과 달리-이처럼 주체의 흔적이 각인되어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물감의 흐름과 정지가 만들어내는 표면의 우연성으로 인해 작가의 육체적 흔적들이-미니멀리즘 조각들의 빤질빤질하게 반사하는 표면들과 달리-보다 수용적인 형태로 중화된다. ● 천의 표면을 팽팽하게 만드는 구실을 했던 물의 장력이 남긴 주름들이나 흘러내린 물감의 형상들, 작업을 하는 패널 틈 사이로 천이 끼어들어가 생겨난 공백 등은 심지어 그의 작품에 표현적 요소와 상상의 차원을 부여하기까지 한다. 그럼으로써 그의 작품은 사물성 그 자체를 육박했던 미니멀리즘 조각의 방향성을 비껴 서서 거꾸로 일상의 사물을 변형시키는 방법들을 탐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에서 시종일관 유지되는 거친 질감을 필두로 해서 재료간의 밀착성, 행위의 반복성, 그리고 작품의 대량성은 내용적 심미화를 거부한다. 궁극적으로 그의 작품은 예술작품을 사물과 시키거나 물건을 예술작품화 한다기 보다는, 그 두 과정을 병렬시킴으로서 양쪽 모두에게 반성적인 시야를 제시한다. 이를테면 그의 변형된 오브제들은 상품의 작품화와 작품의 상품화라는 뒤샹의 공식을-개입, 간섭, 중재의 행위를 통해- 기능의 상실과 새로운 (무)기능의 획득으로 새롭게 변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작업 통합체가 던지는 메시지, 곧 심미성의 형식이다. 어디선가 작가는 이 과정을 '회화의 물질성과 사물의 물질성의 대조' 로 정식화했지만 물질성이라는 개념은 오히려 그의 작업방식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혹은 미니멀하게) 만든다. 작품의 물질성보다는 차라리 그 작업 행위의 연속성이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면서 또다시 형식이 인도하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중략...
아마도 그의 작품이 포착했던 것은 다양한 모순과 대립들, 충돌과 초월들, 서로 상반된 힘들의 복잡한 움직임이 작가의 의지와 물질이 만나면서 발생했던 '화학작용'에 의해 응결된 어떤 순간이 아니였을까. 주체와 대상, 우연과 필연, 성과 속, 순간과 영원의 대립구도가 그의 작품 속에서 일시적으로 균형을 잡으면서, 그 이분법적 축 사이에 순간적으로 펼쳐졌던 무수한 그라데이션의 매혹들을 슬쩍 엿보았기 때문은 아니였을까.... ■ 백지숙
Vol.20030304a | 허욱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