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에의 초대

플라잉시티 기획展   2003_0228 ▶ 2003_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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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획 및 진행_플라잉시티(김기수_장종관_전용석)

공동작업 참가 정혜정_최은경_윤정미_고승욱_송상희_이진경_전재운_김이태 김성환_조경찬_석관동 돌곶이회 회원_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심리지도를 그린 각급 학교와 학원의 학생들

마로니에미술관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601

플라잉시티는 도시문화와 도시 지리적 현실에 대한 비평 및 연구를 목표로 하는 미술가 그룹이다.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작업해 온 것은 서울의 도시조직 형성 과정이 도시 공동체의 변화에 미친 영향, 그리고 과밀과 집적의 조건에서 도시 성장에 대한 대안적 사유방식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도시의 자연생장을 묘사하는 어휘로 '표류'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특정 장소의 맥락을 드러내는 퍼포먼스, 공상적 도시계획의 단서를 제시하는 심리지도, 그리고 서울 도시풍경에 대한 비평을 시도하는 사진, 포스터 등을 통해 이미지화 한다. ● 서울은 아직도 광란의 질주를 거듭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도시 기반 구조의 취약성은 그대로 남겨둔 채 밀도와 혼잡도는 커져만 간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건축형태와 도시구조, 그리고 행위양식을 창출해 내고 있다. ● 질주라고 표현했지만 결코 서울은 똑바로 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간조직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그렇게 삶의 조건을 마음껏 몽타쥬해버린 현상들의 눈부심(혹은 눈멈)과 속도감(혹은 마비)이 이 도시의 서사를 본질적으로 특징짓는다. 즉, 서울은 중심 이미지가 없는 거대도시이다. ● 그러나 우리는 이 혼돈을 서사의 붕괴로 보기에는 여전히(그리고 영원히) 이르다고 생각한다. 달리 말해 제대로 재현되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이, 자기 삶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고 구축하기 위한 분투들이 위장된 형태로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 표류하는 삶을 이해하고 그것을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출하는 조건으로 다시 바라보는 일, 서울 모더니티의 생산관계를 둘러싼 정신적 지형도를 그리는 이 일은 표면에 드러난 단서를 토대로 세우는 가설, 수차(收差)를 유지하는 근접탐색, 염탐, 위장, 안테나 설치와 고속 광선 등을 필요로 한다. ● 우리는 쓰레기를 치우면서 동네 아저씨의 불평을 주워듣는다. 우리는 비어 있는 집에 들어가 남겨진 물건들을 모조리 부신다. 우리는 놀이터에서 생쑈를 한다. 우리는 주변으로부터 고립된 올림픽 아파트를 향해 절을 한다. 우리는 소년궁전과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표시된 표지판을 세운다. 우리는 화분을 수집한다. 우리는 자유로의 전차방해용 구조물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우리는 공예품 가게에서 주인의 사진을 찍어주는 척 하며 임대업자의 비밀을 실토하게 한다. 우리는 높은 벽에 대고 74남북공동성명을 외친다. 우리는 한밤중에 맴돌고 배회하다 불타며 소모된다(In Girum Imus Nocte et Consumimur Igni). ■ 플라잉시티

1. 심리지리 워크숍 ● 플라잉시티는 도시공간의 특징적인 장소들에서 '노는' 작업을 전개하고 있는데, 심리지리 워크숍이란 그런 유희들을 도시성의 특징적인 측면에 대한 비평이나, 사회적 태도와 결합시키는 시도들이다. ● 여기에는 놀이터나 공터에서의 즉흥연기, 임시공원 설치, (도시공간의 임의성을 반영하는 대사로)중얼거리기, 비틀거리기, 오브제와의 연극 등이 포함된다. 어떤 경우에는 특정 장소의 역사적, 사회적 관련을 강하게 의식하여 미리 준비된 계획에 따라 진행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우연과 즉흥에 의존하여 이루어지기도 한다.

망원동 임시조각_단채널 비디오 영상 ● 놀이터는 월드컵 경기장으로의 진입을 위해 새롭게 넓힌 도로를 앞에 두고 있는 동네의 가장자리에 있었다. 그곳의 심리적 공간감을 규정하는 것들은 이런 요소들이다. 오래된 주택가와 빈 집들, 작은 건물들에 들어선 창고와 공장들, 놀이터 바로 위를 질러가는 강변도로, 건너편의 아파트 공사장, 그리고 맞은 편의 작은 운동장. ● 우리는 동네를 다니면서 버려진 오브제들을 주워 모았고, 그들을 '재생'시켜 보려 하였다. 그 찌꺼기들을, 그들을 낳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분리시켜 놀이터의 심리적 에너지를 즉각 이끌어 내는 발견술의 장치를 만들어 보려 한 것이다.

파괴의 땅에서 할 만 한 일_단채널 비디오 영상 ● 왕십리 2동 일대는 지금 달동네 철거작업이 한창이다. 서울의 마지막 대규모 철거단지라는 난곡 보다는 작지만 여기도 산중턱 전체가 부서지고 파헤쳐지고 있었다. ● 이런 황량한 풍경에 걸맞게 사람들이 이사 간 빈집들은 쓰레기들로 넘쳐나고 있다. 부서진 가재도구, 책장, 이불, 각종 서류며 아이들 장난감, 깨진 유리창에 이르기까지... ● 정상적인 물건의 외양을 한참 벗어난 이런 물건들은 더 이상 물건들이 아니라 '재료'들이었고, 실내는 콘크리트 아래 흙이 노출된 바깥의 풍경에 근접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파괴와 황량한 정서에 맞서서 우리는 그것을 더욱 강화시키고 증폭시켜 보기로 했다. 자르고, 부수고, 찢는 행위는 그에 동반한 소음과 함께 신체적인 감각을 자극하였고, 파괴로 무디어진 감각은 그로써 새롭게 재생되는 듯 했다.

북악산에서 외치다_단채널 비디오 영상 ● 북악산 언저리에는 청와대를 비롯하여 정부기관들이 많다. 보행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만 해도 헌법재판소, 감사원, 공무원교육원, 국군통합병원, 통일부 등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철책이 거의 모든 길들을 둘러싸고 있다. 도로든, 공원의 산책로든 할 것 없이. 권력의 공간이자 이데올로기의 공간인 이 곳은 철책에 의해 보호받고, 또 감시당하고 있는 셈이다. 북악산을 관통하는 관광도로인 북악스카이웨이는 또한 1968년 김신조 간첩사건의 무대이기도 했다. 박정희 정부는 그 사건 이후 북악산 일대를 특권화된 도시의 섬처럼 관리했다. ● 이데올로기적으로 규정된 공간이 지금에 와서는 쾌적한 드라이브를 위한 공간이 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공공 공간의 사유화'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 도시인이 이동하는 공간과 사적 공간 외에는 알지 못하게 되면서 공공 공간은 시각적 쾌락 - 바라보기 - 을 위한 공간으로 변질된다고 말한다. 결국 북악스카이웨이의 쾌적한 드라이브는 엄중하게 공적으로 관리되는 공간이 사유화된 공간사용과 정확히 겹친다는 것을 명확히 증거 한다. ● 우리는 정적이 감도는 이곳의 분위기에 공공적 소란을 가져오고 싶었다. 도화동의 고급주택가에서 7.4 남북공동성명을 외치고, 통일부 앞에서는 영화 쉬리의 한 장면을 연출하였고, 삼청공원에서는 영화 JSA의 몇 장면들을 삽입했다. 물론 우리의 소란은 그 공간들의 어쩔 수 없는 침묵을 궁극적으로 깨뜨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비디오를 본 관객들은 이 공간의 침묵을 과거처럼 편안하게만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타 퍼포먼스 자료 및 심리지리 포스터들 ● 지도, 난곡 화분수집, 왕십리 표지판 등

2. 심리지도 ● 플라잉시티 작가들과 각급 학교 학생들이 공동으로 특정 지역에 대한 기억에 의존하여 지리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거나, 공상적인 도시 공간을 구성해보는 프로젝트이다. 주로 드로잉에 의존하고 모형을 만들기도 한다. 특정한 기한을 두지 않고 수시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이다. ● 심리지도는 심리지리(psychogeography)의 방법론에 따라 제작되는 도시 지리에 대한 정신적 기록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것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에 따른 지도 제작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무목적적으로 산보하면서 특정한 장소가 주는 감각적 사실을 기록하려는 표류(derive), 혹은 기존의 텍스트나 이미지를 차용, 재조합하여 정서적 충격을 발생시키는 동시에 현재의 시공간에서 숨겨진 맥락을 읽어내는 우회(detournment) 등의 방법에 의존한다. ● 심리지도에서는 어떤 지리적 환경의 사실적인 정보보다는 장소의 분위기나 행위의 패턴이 중요하다. 우리는 도시공간에서 건물들이 가지는 스케일과 조망과 같은 물리적 요소에 압도되어 그런 환경이 주는 정신적 충격을 망각하거나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은 대개 감각과 지각 방식의 변형이나 특정한 행위의 유도와 같은 '정신적'인 것이다. ● 심리지도는 기본적으로 그런 정신적 영역을 가시화하려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즉,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정신적 영역에 대한 지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전시에는 각급 학교 학생들과 진행한 지도 총 60여장과 이를 토대로 발전시킨 공상적 도시계획에 대한 모형이 전시된다.

3. 굽어보기 시리즈 - 집적과 주거기계 ● 서울에서는 그동안 많은 달동네들이 불량주택 정비사업의 시행으로 사라졌다. 한때 주요 도시문제였던 재개발 사업은 이제 서울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가며 조용히, 하지만 더욱 왕성하게 대규모로 추진되고 있다. 산 위에 올라서는 아파트들은 그 예각적인 모서리 때문에 풍경을 무척 '납작하게' 만든다. 그 인공적인 풍경은 실로 복잡한 감정을 가지게 한다. 답답하게 시야를 막고 둘러 선 포토제닉한 스펙터클을 두고 어느 순간 어떤 발작적인 아름다움에 경이를 느끼기도 한다. ● 우리는 가장 '납작한 풍경'을 기록하기 위해 대형 디지털 사진 형식을 이용하여 작업하고 있다. ■

Vol.20030228b | 표류에의 초대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