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3_0226_수요일_05:00pm
동덕아트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51-8번지 동덕빌딩 Tel. 02_732_6458
'불안'은 자기에게 닥칠 위험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미래의 가능성으로서 존재하고 있어 자신의 안전이 흔들릴 것이라는 두려운 감정을 의미한다. 프로이드는 불안이 성적(性的) 원인에서 일어난다고 하며, 성적 욕구가 지속적인 욕구로 단순하게 단념할 수 없는 반면, 도덕이나 사회의 관습에 저촉되어 갈등의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 키르케고르는 인간은 무한과 유한, 시간과 영원, 자유와 필연이라는 질적인 모순을 내포하기 때문에 불안하다고 주장하였다. ● 윤기언의 수묵 작품들에서는 인물형상들이 서로 일그러져 있거나 주변 공간과 맞물려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다루는 인물들은 대부분 왜곡된 선들과 함께 「불안」 시리즈로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데 그의 작품은 마치 에드와드 뭉크의 외침에서 볼 수 있는 왜곡된 공간과 일그러진 인물들의 형상으로 대체로 이루어져 있다. 뭉크의 분열증 증세는 공허한 듯하면서도 어떤 의미를 찾으려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인물들의 표정에서 자주 드러난다. 이러한 표현에 관해 분열병심리에서의 표현성, 친화성이라고 규정하나, 이러한 일련의 작품들을 창작토록 한 것은 아마도 불안이라는 정서일 것이라 한다. 윤기언의 인물들과 왜곡된 공간에서 형상들도 뭉크의 불안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윤기언의 수묵화를 뭉크의 작품들과 비교해 보기에는 약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그의 작품은 전통회화의 매체를 수단으로 움직임과 역동성의 기운을 표현해 내고 있는데,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전통회화의 화론(畵論)에서 강조되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은 기(氣)가 생(生)하면 운(韻)이 동(動)하는 이치일 것이다. 기운과 생동이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관계, 전통회화에서 생명의 조화로운 흐름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 작가의 감정과 직관을 직관적으로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은유나 상징을 통해 존재케 하는 것이 윤기언이 현대 수묵화가 뭉크나 반 고흐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감정의 즉흥적 표출이나 역동성이 아니라, 전통한국화에서 볼 수 있는 기운생동의 조형원리이다.
그래서 윤기언의 「불안」 시리즈들은 마치 복선을 읽는 듯하다. 이러한 지점은 그의 「불안-어디로」 「불안-소리치다」 등에서도 읽어질 수 있다. 한지에 그려진 인물은 한 사람이 아니다. 두 인물이 미묘하게 뒤틀려 엉켜붙은 형상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데, 이는 빈 공간에 놓여진 것이 아니라 신문지 위에 위치 지어져 있다. 이 신문지는 언뜻 보기에 마치 콜라쥬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윤기언이 세필로 많은 시간과 노동을 기울여 그린 신문지이다. 보는 이는 이 지점에서 약간의 혼란함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신문지가 '붙여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마치 극사실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려진 신문지는 실제 신문지가 부착된 듯한 눈속임의 공간을 만들어 준다. ● 신문지가 윤기언의 작품들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대중 매체라는 요소를 전통회화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과감한 실험이다. 신문지는 현대 산업사회의 대량생산물로서 일회적이고 대량생산되는, 값싸고 쉽게 폐기될 수 있는 것이다. 일회적이고 일시적인 현대 문명의 산물, 신문지라는 현대적 요소는 수묵이라는 전통적 매체로 윤기언의 작품 속에서 과감하게 실험되어진다.
윤기언의 실험성은 「불안-소리치다」에서도 잘 발견된다. 그가 표현하는 인물의 얼굴들은 소리치거나 고뇌에 찬 얼굴들로 방사선의 구도로 화면을 덮어버리고 있다. 얼굴들은 겹겹이 쌓여 하나의 방사선의 도상을 이루는데 이는 붉은 배경 위의 선들과 함께 화면을 불안하고도 역동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나간다. 「불안-조이다, 2002」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겹겹이 왜곡된 인물들의 형상은 가늘고 긴장감 있는 선들로 에워싸여져 있는데 이는 마치 뭉크의 「외침」에서 볼 수 있는 선들과 마찬가지로 보는 이로 하여금 현기증을 느끼게 한다. 「불안-조이다, 2003」은 중앙에 마치 자화상 같은 인물이 여러 인물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공간은 마치 분열증을 경험토록 한다. ● 현대문명의 상실과 왜곡, 그에 따른 인간 소외와 불안감을 수묵을 통해 실험하고 있는 윤기언의 작업은 또 다른 차원으로 흘러 갈 것을 기대한다. ■ 김형숙
Vol.20030226a | 윤기언 수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