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공유_感覺共有

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 미술관·박물관 경영 전공 기획展   2003_0219 ▶ 2003_0228

김지섭_1번 방_모터, 실, 블렉라이트_가변크기 공간설치_2003_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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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219_수요일_03:00pm_퍼포먼스 공연

참여작가 강신석_김지섭_백연수_심승욱_윤성혜 이창걸_장인석_최두수_최홍구

책임기획_정은영·권남희 전시디자인_김지영·김소희·채송화 / 홍보_윤금진·김현숙·이현정 인쇄물디자인_김남은·임미성·최옥진·홍승희 개막행사_이정은·홍숙경 / 부대행사_김은하·김재희 협찬_정희선·이혜진·이동연 / 진행_김소현 / 홈페이지_남기정

조흥갤러리 서울 중구 태평로1가 62-12번지 조흥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02_738_6806

인간은 태어날 때 5가지 감각을 가지고 태어난다. 처음에는 태어나는 순간 공기와의 접촉,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촉각을 접하게 되고, 어머니의 젖으로 후각과 미각을 느끼며 이것을 통하여 하나의 생명체로 완성된다. 눈에 뜨임을 통해 어머니의 뱃속이 아닌 새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되고 귀가 트임으로 해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게 됨으로써 이 5가지 감각을 통해 아름다움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세상에 대한 첫발을 디딛게 한다. ● 『감각공유_感覺共有』展은 이러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가운데 4개 부분 즉 후각, 청각, 시각, 촉각을 각기 다른 장르의 조형예술로써 표현하고 조형예술로 표현된 각각의 감각들은 비로서 관람자의 감각기관을 경유하여 하나의 감각으로 통합됨을 시도하는 전시이다. ● '감感-느끼다, 각覺-깨닫다'라는 감각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자극이 신체에 수용되면 신체 내의 복잡한 작용에 의하여 중추신경에 전해졌을 때 여기서 일어나는 대응을 감각이라고 한다. 감각이 생기기 위해서는 인간의 신체를 통한 자극이 필요하며 그 자극에 의하여 인간의 뇌에서는 정신활동을 하게 되므로써 감각에 이르게 된다. ● 다시 말해 감각이란 단순히 1차적인 신체상의 반응이 아닌 그 자극으로 인하여 다양한 종류의 정신적 사고를 경험하게 된다. ● 공유는 '공共-함께하다 유有-존재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데, 이는 감각의 네 가지 요소들이 하나로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와 작품과 관객이 전시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감각을 서로 공유한다는 의미로도 확대할 수 있다. ● 『감각공유_感覺共有』展은 신체와 정신, 작품과 작품, 작품과 관람객과의 의사소통을 유도하는 매개체로서 작용을 한다. 그 안에 서로 다른 감각들을 주제로 한 다양한 현대미술작품도 매개체로서 각각 상호 소통을 유도한다. ● 이번 전시의 작가들은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진작가들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또한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감각이 인간의 1차적인 신체활동에서 철학적인 정신활동으로의 영역을 아우르듯이 이번 전시 또한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서 폭넓은 사고와 다차원적인 경험을 공유할 기회를 제공하는 새로운 전시가 될 것이다. 현대미술은 다양한 예술장르와의 교류를 통하여 수용하고 발전되어가고 있다. 또한 여러가지 형태로 미적 경험의 유도를 시도하고 있다. ● 『감각공유_感覺共有』展은 감각이라는 인간의 경험영역을 미의 체험 영역으로 제시한다. 관람객은 네 가지 감각이라는 전시 안에서 각각의 감각을 보고 느끼게 되며 그 경험으로 인하여 통합적인 감각을 유추할 수 있다. ● 네가지 감각들은 각각의 고유영역-즉 '청聽-듣다, 시視-보다, 촉觸-만지다, 후嗅-냄새 맡다' 등의 1차원적 영역에서 발전된 미적 감각의 경험을 관람객에게 제공할 것이다. ■ 단국대학교 대중문화예술대학원 미술관·박물관 경영 전공

강신석_종족보존+유희=사탕_혼합재료_100×350×100cm_2003_촉각
이창걸_Gaus_빵_가변크기 공간설치_2003_촉각
최홍구_moon-walk_고무, 솜_가변크기 공간설치_2003_촉각

촉각 ● 우리의 감각을 자극시켜보자. 광선이 망막에 접촉하였을 때 볼 수 있고, 음파가 고막에 접촉하였을 때야 들을 수 있으며, 음식물이 혀와 접촉하였을 때 그 맛을 느낄 수 있을 테고, 물질의 분자가 콧속의 신경과 접촉하여야 냄새를 맡을 수 있지 않은가? 이렇듯 모든 감각이 접촉을 바탕으로 서로 연결되어 자극 주고, 자극 받고 있는 것이다. 물건이 피부에 닿아서 느껴지는 감각 즉, 촉각을 어떻게 자극시킬 수 있을까? ● 색깔은 시각의 영역이겠지만 모양과 상태는 촉각에 많은 것을 의지한다. "둥글다"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둥근 물체를 '만지는'것 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차갑다' '뜨겁다'는 개념을 어떻게 설명해 낼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차갑거나 뜨거운 물질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물질에 손을 대어 보는 것이다. ● 모홀리-나기는 「The new vision」에서 '질감은 우리에게 미적 특질을 전해주는 매체'라고 강조했듯이 이 질감이야 말로 촉각의 자극제이다. 질감에 대해 그 다양성이나 체계에 대해 이론적으로 정리된 바가 거의 없지만 몇 가지 구분되는 질감의 특성인 부드럽고-딱딱한, 매끄럽고-거친, 젖은-마른, 따뜻함-차가움과 같은 질감으로 볼 수 있겠다. 물론 이 양쪽의 극단적인 느낌의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각자가 가진 기억, 즉 이미 인식되어진 정도에 따라 그 차이의 크기는 결정되어 진다. ● 사탕의 달콤함 속에 성과 생명의 이야기를 포근하게 전하고 있는 강신석, 빵이라는 새로운 재료로 흥미를 끌어내고 있는 이창걸, 고무의 탄성으로 공간의 움직임을 받아 안으려는 최홍구, 이들은 보다 가깝게 관람객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강신석, 이창걸, 최홍구는 작품을 통해 자극 받은 관람객들이 촉각의 영역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기억 속의 감각들과 어우러져 자신만의 새로운 경험으로 남게되길 바라고 있다. ■

심승욱_Whisper....like a dog_단채널 비디오 영상_2003_청각

청각 ● 소리란 무엇인가? 물리적 정의로는 '공기의 파동으로 전해져 인간의 청각기관을 자극하여 감각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는 진동수가 16∼2만Hz라고 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각자의 소리를 갖고 있다. 비록 가청범위에 못 미쳐 들리지는 않더라도... ● 이 맘쯤 땅속에서 추운 겨울을 보낸 이름 없는 풀 씨의 속삭임을 들어 본 적이 있던가? 혹은 미루나무 가지 위에서 부화를 기다리는 새알의 소리는... ● 이렇게 모든 생명체가 '소리'를 갖는 이유는 아마도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본능일 것이다. 다섯 감각 중 청각은 인간의 언어가 속해 있는 부분으로 다른 감각보다도 더욱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비중이 크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언어를 포함한 모든 소리를 통해 얼만큼의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언어라는 가장 편리하고 고도로 발달된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들이 과연 다른 생명체들 보다 우월한 의사소통을 해내고 있는가? ● 한 인간의 내면세계에서 그것이 한 언어, 문자, 메시지가 되기까지, 그리고 그런 의사소통이 한 어우름이 되길 기대하면서 심승욱은 관객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전달자로서 영상, 미디어를 선택했다. ● 현대사회의 무관심과 소외감의 해결책으로 인간과 인간사이의 혹은 작품과 관람객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제시한다. ■

백연수_Playing in my memory_사진과 오브제에 아크릴 채색_12×15×1.2cm×25EA 벽면설치_2003_후각
최두수_무제_사진, 설치_2003_후각

후각 ● 우리는 기억 속에 산다. 움직이는 공간마다 기억을 머리 속에 담고 쫓아가며 생활한다. 인간은 다섯 가지의 감각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태어나 듯 이러한 다섯 가지의 감각을 통해 기억을 만든다. 공간 속의 기억·시간 속의 기억 - 기억이란 우리 삶에 있어서 떨어질 수 없는 불가피한 것이다. ● 후각 PART의 작업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기억의 순간 순간을 표현하고자 한다. 한 가지의 감각만을 느끼는 것보다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 더 효과적이듯, 시각적인 작품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냄새를 자연스럽게 유도해내어 기억 속의 느낌을 표출하도록 유도한다. 직접적인 후각의 표현이 아닌 간접적인 후각의 표현으로 우리를 기억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우리는 기억 속에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 최두수와 백연수. 이들의 작품 속에는 오감(五感)적인 요소와 공간적인 면을 느낄 수 있다. 만지고 싶고, 맡아보고 싶고, 보고 싶어하는 부분들이 공간이라는 커다란 덩어리 속에서 보편적으로는 시각적인 부분으로 먼저 느껴지나 좀더 세밀하게 관찰하면 작품 속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또 다른 기억 속의 잊혀진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이들의 작품 속에 들어가 보물찾기하듯 이 안에서 하나 하나씩 찾아냄으로서 또 하나의 작은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윤성혜_연극적 무대_나무, 우레탄, 사진_330×360×220cm_2003_시각
장인석_생명의 숨결_한지에 채색_각 33×40cm / 전체 105×125cm_2003_부분_시각

시각 ● 인간은 사물이나 현상을 꼭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한다. 인간의 눈이 기능면에서 카메라의 렌즈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지만 "백 번 물어 보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 하다(百聞而 不如一見)"는 말이 함축하듯이 인간은 자신의 시각에 대한 철저한 신뢰감을 갖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각에 대한 믿음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예술가들의 작품에 의해 도전 받아왔다. 1950년대 옵 아티스트들은 시각적 환상을 중심으로 한 작업으로 우리의 눈을 교란시켰으며 그에 앞서 후기 인상주의 점묘법 화가들은 무수한 점으로 인물이나 물체를 형상화함으로써 우리 눈의 착시현상을 부추겼다. 또한 실제 像을 담아낸 사진보다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더 사실적인 극사실주의 작품들도 착각을 야기시키는 대표적인 사조중의 하나이다. ● 이러한 일련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그동안 철저히 믿어왔던 시각이 완벽하지 않음을 깨닫게 해준다. 장인석은 극사실적 표현으로, 김지섭은 겉으로 보기에는 레이저나 디지털 이미지로 보여지지만 실제는 실이 모터에 의해 빠르게 돌아가게 함으로써 우리의 눈을 교란시킨다. 그러나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게되는 착시, 환각현상은 우리들에게 낭패감이나 배신감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마치 퍼즐게임이나 진실게임을 하는 것 같은 작은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 한편, 시각은 사물의 인지(認知)에 있어서 협동하여 작용해야 하는 여러 감각중의 한 요소임에도 불균형적으로 팽창해버렸다. 시각매체의 범람으로 인해 현대인들은 '보는 것'과 '지각하는 것'이 동일하지 않게 되었으며 오히려 매체가 재현하는 가상 이미지를 실재와 동일시하게 되었다. 윤성혜는 재현으로 위장된 현실과 시각의 맹신에서 오는 문제를 보여준다. ■

Vol.20030219b | 감각공유展

2025/01/01-03/30